인포메일과 이지페이퍼가 통합함에 따라,
이지페이퍼를 통해 [칼럼니스트]를 받아 보시는 분들도
앞으로는 인포메일을 통해 받으시게 됩니다. -- [칼럼니스트] 발행인

2000년 11월 2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66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11월23일 [그해오늘은] '주석'아닌 '선생'으로



1945년 오늘 환국하는 김구(金九) 등 임정 요인들을 맞는 우리 사회는 이념도 색깔도 없어 보였다.

"이승에서 다시 보게 되니 기쁠 뿐이다"고 벽초 홍명희(碧初 洪命熹)는 감격했다. 임정 초기에 함께 일했던 벽초로서는 가족상봉이기도 했다.

공산주의자 박헌영(朴憲永)도 "우리 조선공산당으로서는 해외 혁명투사로서의 임시정부 김구 주석 이하 요인 일행의 입국을 쌍수를 벌리고 환영한다"고 했다.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해방정국의 풍속도였고 상하이 임정의 위상이었다.

그 환영열기가 너무 뜨거워선지 김구가 상하이 임정의 '주석'이 아니라 '선생'으로 돌아온 사실에는 본인도 국민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백범은 "내가 혼이 왔는지 몸뚱이가 왔는지 분간할 수 없는 심경"이라며 감격했을 뿐 앞날을 크게 걱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 상하이 임정을 인정하지 않아 그가 조국의 통치를 떠맡는 신분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지도자'로 돌아온 것은 비극이었다.

그에 앞서 10월 16일 이승만(李承晩)이 국내에 '골인'한 사실도 당시는 주목을 끌지 못했다. 지도자들이 해방을 맞아 돌아오는 것이 마라톤 시합일 수는 없으나 이승만이 미군의 비행기로 먼저 오고 김구가 장제스(蔣介石)정부가 마련해준 비행기로 늦게 도착한 것은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

출발선상의 이처럼 사소한 차이는 그 뒤 민족의 지지층을 업은 김구가 미국과 자주 충돌하면서 점차 멀어지고 이승만은 미국과 협조하면서 반쪽짜리 대권을 차지함으로써 두드러졌다. 김구의 암살 배후로 미국이 거론되기도 해서 그날의 환국을 보는 마음은 반가움보다 슬픔이 앞선다.

-------------------------------------------
양 평
yangp@sgt.co.kr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0.11.23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친구나 친지께도 권해 보십시오.


Email 구독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