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17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63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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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산 1조원 시대와 출판계

2001년도 문화예산이 사상 최초로 1조원(전체 예산의 1.03%)을 넘어섰다. 문화예산이 2000 년도에 정부예산의 1%를 돌파한데 이어 두 번째 경사가 아닐 수 없다. 2001년도 정부예산 이 총액규모에서 6조원이 증액되었으나 법정지방교부금 확대, 국민기초생활보장 등 필수 증액 요소가 10조원에 이르러 대부분의 부처가 마이너스 예산편성을 해야 할 때 문화예산은 2000년에 이어 계속 1% 이상을 확보했으니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하겠다.

문화관광부의 지적대로 문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가를 보여준 증거라 할 수 있다. 각 분야의 문화예술인들도 이 점은 인정할 것이다. 세부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전체로 보아서 정부의 의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서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흔히들 말하듯이 정권의 실세가 문화관광부장관이 되면서 두 해 연거퍼 1% 이상을 확보했는데 그 장관이 그만 둔 다음에도 과연 그렇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지속이지 못하면 그건 문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권력 실세의 의지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 문화예산이 증액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수렁에 빠진 출판산업의 앞날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 점이다. 내년도 문화관광부 예산 1조 404억원 가운데 출판관련 사업에 들어갈 돈을 보면 국립중앙도서관 210억원, 도서관 정보화 498억원, 공공도서관 도서구입지원 59억원, 잡지박물관 건립 10억원, 공립문화기반시설(문예회관,공공도서관,공립박물관 등) 482억원, 출판 유통 현대화 지원 11억원 등이다.

출판관련이라 하여 억지춘향격으로 갖다 붙여서 그렇지 출판계와 직접 관련된 것은 공공도서관 도서구입지원과 출판유통현대화지원 등 몇 가지에 불과하다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는 전체 문화예산 가운데에서도 출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적 낮다는 뜻이다. 모든 문화예술계가 다 어려운 판에 출판계 비중만 높여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로는 출판계의 현안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출판계의 어려운 점은 10년전이나 30년전이나 마찬가지다. 좀 더 과장하면 해방이후 여태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더 악화된 부분도 있다.

서점에 가면 각 분야의 책이 넘쳐나고 잠재적 독서인구라할 고학력층도 급격히 늘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외양만 보아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책을 별로 읽지 않는데다 사회의 구조와 인식마저 이를 부추긴다. 책 읽는 사람이 사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안 읽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되지 않느냐는 통크고 대범한(?)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는 누구든지 입만 열면 들먹이는 국가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지 않고 계속 선진국의 머리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노예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겉 모습은 멀쩡하게 자기 것이지만 속은 남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기형적인 양상이다.

머리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뭐가 그릇되고 어떤 일이 부끄러운지 분간조차도 못한다. 단적인 사례가 각종 도서관의 도서구입 양태다. 대부분 도서관을 설립하고 난 뒤 장서를 공짜로 채우려 하는 것이다. 도서구입비가 워낙 적게 책정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책에 대해서 가장 잘 알아야 할 도서관까지 그 모양이니 한심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책을 사 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출판사에 대고 무료중정을 청하니 남의 나라 사람들이 알까 두렵다.

대기업과 언론사 조사부는 민간이 운영하지만 공공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이런데서도 책 구입비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곳이 적지 않다. 아니 조사부를 구색 갖추기 위해 있는 기구 정도로 알고 여기저기서 들어온 별 볼일 없는 책들로 서가를 채운다. 즉각 돈이 되지 않으면 적자라는 천박한 논리가 횡행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400여개의 공공도서관도 사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대다수가 80%는 인건비, 10%는 운영관리비로 지불하고 나머지 10%로 책을 구입한다. 어느 출판사가 학술서적 한 가지를 펴냈을 때 공공도서관을 비롯한 각급학교 도서관에서 한 권씩 몇천부만 구입해도 계속 양서를 출판하여 국가와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할텐데 도서관들부터 이 모양이니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개인들 역시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조금도 지장이 없는 사회다. 너도나도 책을 읽지 않는 무뇌(無腦)사회가 되다 보니 스스로 천박해지고 야만스러워진 것 자체를 모른다. 최근에 부쩍 거론되는 문화의 상품화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즉 문화라 해도 유형의 이익이나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쓸모 없다는 오해가 여러 가지 폐단을 낳고 있다.

문화를 상품화해 돈을 버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당연하다. 그러나 당장 수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긴 안목에서 보존하고 육성해야 할 것들이 있다. 예컨대 학술서적 출판 같은 것은 최대 비용을 들여서 최소 비용을 건지는 완전히 반경제적이다. 문화상품화 측면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러나 학술서적은 국가의 근간을 이룬다. 문화예산이 이런 부분에 집중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국립극장도 마찬가지다. 작품마다 관객이 많이 들어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보존하고 육성해야 할 전통문화 공연 등을 손님이 적다는 이유로 기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작품들을 자주 공연해야 한다. 이 역시 문화예산이 맡아야 할 몫이다.

그럼에도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서적이나 전통공연물 등은 비경제적이라 하여 홀대한다. 선진국들이 정부 예산 또는 국민의 기금으로 자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1년에 몇 권밖에 팔리지 않아도 꼭 있어야 할 책을 내는 출판사, 적자가 쌓이지만 반드시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작품을 공연하는 단체와 극장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런 출판사와 공연단체들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우리 문화의 파수꾼으로 정당한 대우를 하고 경제적으로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문화예산 1조원 시대의 나아갈 방향이요 올바른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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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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