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9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58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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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21세기 문화 문화인] 사이버공간의 인터뷰전문기자 권은정



"평범한 삶에 감춰진 진실을 캔다"

'인터뷰 전문기자' 권은정(權恩淨.38)을 만나기까지는 좀 망서렸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지천인 인터뷰기사를 쓰는 사람을 만나 또 '인터뷰'기사를 쓴다는 것이 멋쩍어서다.

그가 특정한 매체에 묶이지 않고 기사를 쓴다고는 해도 '프리랜서'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사이버공간의 프리랜서'라는 '21세기의 문화인'이기에 컴퓨터로 그가 쓴 글을 검색하자 또 다른 걱정이 앞섰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대형'이 텔레스코프로 사람을 감시하듯 대상의 표정과 옷차림이나 동작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꼬집는 듯한 글은 야무지기도 하고 되바라지기도 했다.

  막상 만나 본 권은정은 그런 걱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드럽게 쌍꺼풀진 눈이 날카로움을 가려 주었고 글의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조심스럽고 수줍은 모습이었다.

  "모범주부 같다고요? 감사합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쓰고 싶기에 우선 좋은 주부가 돼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렇기에는 모자란 데가 많지만요."

  말과는 달리 그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머무르던 7년간도 그랬지만 지난해 귀국한 뒤에도 화제의 인물만 만난다.

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에서 정신대 할머니까지 계층은 여러 층이나 하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정 그렇게 꼬투리를 잡으면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해 두지요.

너무 현실생활에서 잘 나가 이름을 떨치는 사람은 아직 만날 기회도 없었지만 만나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더니 평범하게 묻혀 지내는 삶도 뒤져 보면 너무 많은 진실이 숨겨 있다고 주석을 붙인다.

너무 흔한 소리인데도 군더더기로 들리지 않은 것은 권은정의 '평범한 삶'이 다소 특이해서다.

  그는 영국에 머무를 때 동티모르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아일랜드의 버스운전기사를 만나려 더블린까지 갔었다.

추운 사무실과 공원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셔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온 것이다.

동티모르 독립운동 전반에서 보면 평범하다 못해 미약한 존재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그 고행에 비해 너무 싱거워 보였다.

그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운전기사라는 평범하지 않은 평범에 끌려서일 것이다.

  그가 초등학교 청소부이자 역사학자인 로버트 모렐을 만나러 노팅엄에 간 것도 그렇다.

그의 '평범한 사람'은 상류층이 아니거나 상류사회에 낄 수 있으면서도 하류층에 마음을 주는 사람을 말하는 모양이다.

  권은정의 글쓰기도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아래인 '평범한 동물'로 시작된다.

초등학교 시절 월간 '어깨동무'의 산문현상모집에 '워리의 죽음'으로 입상했는데 '워리'는 지난날 '워리 워리'하고 부르던 집안의 개 이름이다.

  "집안에서 키우던 워리를 무척 예뻐했는데 아버지가 어느날 잡아 먹은 거예요.

개가 너무 불쌍하고 아버지가 너무 미워 그 슬픈 마음을 그대로 글로 썼지요.

독서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어려서부터 책만 읽었지요."

  남과 섞이기 싫어하던 권은정이 2남5녀가 법석을 떠는 집안의 넷째딸로 태어난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무도 그를 챙기지 않아 창고 같은 방에서 책만 읽을 수 있었다.

그 창고에는 창문이 없었으나 나무 문틈으로 햇빛이 들어왔고 그 빛으로 그는 에밀리 디킨슨의 '한줄기 빛이'라는 시를 읽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서가를 뒤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도 읽었다.

'설국'을 읽은 것은 조숙해서가 아니라 우연이었으나 갑자기 주위의 눈치를 보게 됐다니 책속에서 사춘기를 맞은 셈이다.

  "'워리의 죽음'은 무심결에 써서 입상을 하고도 당시는 그 의미를 몰랐어요.

그것으로 학교에서 글을 잘 쓰는 아이로 통하게 되어 안동 지방의 분식장려 글짓기 대회에 학교대표로 나간 뒤에야 알게 됐지요."

  권은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지만 '열심히' 글을 썼다.

중앙무대에서 수상한 그가 지방의 글짓기 대회에 나갔으니 학교측도 자신도 장원은 떼논 당상이라고 믿었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한동안 낭패한 순간이 지나자 어린 마음에도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워리와 밀가루 음식을 보는 그의 눈이 달라서였다.

'워리의 죽음'은 진정으로 슬픈 것을 그대로 썼고 밀가루 음식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 썼다.

  "그 후로 글의 생명이 정직이라고 봤지요.

사람을 만날 때도 주의 깊게 보고 귀를 기울이려 한 것도 그래선데 그것이 습관이 되자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겨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권은정은 '대형'처럼 사람을 샅샅이 뜯어보고 여러가지 꼬투리를 잡는 듯해도 애정을 가지고 쓴다.

젊은 연인들이 상대의 옷차림이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새롭다는 듯 들여다 보고 있는 것도 같다.

  그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당연히' 지망하는 국문학과 대신 안동대 영어교육과에 가야 했다.

당시 안동대에는 국문학과가 없었고 그는 고향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서울로 가고 싶다고 했으나 초등학교 교감으로 일곱 자녀를 거느린 아버지가 "네가 서울로 가면 동생은 공장에 가야 한다"고 한마디하자 주저앉았다.

  그러나 대학은 경향과 학과가 따로 없었다.

대학신문 기자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캠퍼스안의 사람들은 물론 소설가 이문열의 아파트를 찾아 서울나들이도 했다.

졸업 후 대구의 적십자사 경북지사에서 일하면서 지방신문에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바탕에서였다.

  1993년 치과의사이던 남편 조효제(성공회대 교수.NGO학)씨가 옥스퍼드대 의료사회학과에 유학하자 사람들은 그를 '엉뚱하다'고 걱정했고 권은정은 글쓰기 인생이 끝날까봐 걱정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한 신문이 통신원으로서 글을 써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글을 써야 했으나 그는 되도록 사람 이야기를 썼고 처음에는 마뜩치 않게 보던 신문사측도 점차 반기게 됐다.

  "사람은 하나하나 나름의 '경치'를 가진 섬이지요.

더러는 무섭고 더러운 섬이 되기도 하지만 내면에는 아름다운 면이 있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비롯해 많은 인사들을 만났으나 노팅엄의 청소부 역사학자에게서는 또 다른 경치를 보았어요."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이 학자를 찾았을 때는 학교청소부로 정년퇴직한 직후인 데다 얼마전 어머니마저 돌아가 집은 쓸쓸하기만 했다.

노인이 커피를 끓여주고 노팅엄성을 안내해 구경하고 돌아왔으니 너무 쓸쓸한 여정이었다.

무슨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욕심도 허영도 없이 살아온 노인을 가까이서 보니 즐거웠고 그런 이들을 존중해주는 영국이 새삼 아름답고 부러웠다.

  지난해 귀국으로 권은정의 글쓰기는 전기를 맞았다.

사람을 만나 글을 쓰는 것은 다름없으나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이다.

보다 큰 변화는 무대가 활자미디어에서 사이버세계로 바뀐 것이다.

  신문사의 녹을 먹은 적이 없이 중년부인으로 귀국하고 보니 그것이 최선이었다.

지난날 글을 쓰던 신문사의 간부들과는 여전히 친하고 원고청탁도 받지만 자기 나름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글을 쓰기는 어려워서였다.

  그러던 차에 참여연대와 인연이 닿아 사이버 참여연대에서 '파워 인터뷰'를 쓰게 된 것은 그에게 너무 행운이었다.

참여연대가 요구하는 사람이 바로 그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어서다.

  "원고료요? 참여연대를 잘 아실 텐데….

저는 글쓰기 이전에 '참여'하는 기분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목표는 '직업적 사이버 기자'이고 희망도 보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회원들처럼 무보수로 일하던 그가 작은 액수나마 원고료를 요구해서 받게 된 것도 그런 직업의식에서였다.

요즘 들어 사이버 세계의 원고청탁에 응하는 것도 그렇다.

요즘 들어 자주 활자매체의 원고청탁을 받게 된 것도 결국은 사이버 세계에서 필명을 날린 덕으로 본다.

  "'사이버 기자'라고 하니 '사이비 기자' 아니냐고 한 이가 있었어요.

경희대에 있다가 지금은 오슬로대에서 한국학을 강의하는 러시아인 박노자 교수지요.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아는 그의 농담이니 불쾌한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이버 기자는 지금까지의 '기자'의 통념인 활자매체의 기자와 달라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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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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