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2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55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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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관광버스 참사

1984년 6월에 개통된 대구∼광주(183㎞)간 88고속도로는 지역간 갈등이 심한 영·호남을 잇는 첫 고속도로라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고 기술상으로는 국내 처음의 콘크리트 고속도라는 특성이 있다.콘크리트는 아스팔트보다 시공비가 적게 들고 내구 연한도 20∼40년으로 아스팔트보다 더 길다는 장점을 높이 산 것이다.

개통 당시 우리는 눈만 뜨면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을 위해 세상을 사는 것처럼 온갖 매체가 떠들고 모든 것은 여기에 준하여 가늠했다.아니 5공정권은 국민을 그렇게 내몰았다.대구∼광주가 고속도로 명칭이 왜 88고속도로여야 하느냐는 단순한 질문도 불경스럽다고 할 정도로 86,88이라는 말이 거의 신성시되던 시절이었다.영·호남 화합과 올림픽을 기념하는 것이니 그 뜻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그런 가운데 건설되는 고속도로이니 어련히 잘 만들겠느냐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개통식 날 일부 지역의 절개지가 산사태로 엉망이 되었다는 소식도 이 도로의 의미에 흠이 갈까봐 쉬쉬하여 보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왕복 2차로로 개통된 도로는 기대에 너무 못 미쳤다.울퉁불퉁한 노면 굴곡현상이 전구간에 걸쳐 아예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고 개통하자마자 주저앉은 곳들을 때우느라 1년도 못돼 누더기 도로가 되어 버렸다.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도 콘크리트 도로의 효과적인 보수방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는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인 결과 승차감이 떨어지고 보수비로 아스팔트 도로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산악지방을 관통하는 길인데도 급경사지가 많고 중앙분리대가 설치돼 있지 않아 위험요소도 곳곳에 많은 편이다.예상했던 동서 교류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그렇게 10년이 넘으면 이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27일 오후 전북 장수군 88고속도로 상의 관광버스 참변은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과속으로 달리던 화물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로의 관광버스와 무쏘 승용차를 들이받은 것이다.열악한 도로 여건에 달리는 흉기라는 별명이 붙은 화물트럭의 안전불감증이 합쳐져 일어난 참사다.

바꿔 말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도로관계 당국의 사전 대비와 화물트럭의 횡포에 철저한 단속이 있었으면 대형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 사회의 모든 참사처럼 사고 당시만의 반짝 관심과 곧 이은 망각 속에서 또 무고한 생명들만 어처구니없이 희생된 것이다.똑같은 원인에 판에 박은 듯한 타령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끝이 날 것인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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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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