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28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51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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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땅에 핀 꽃

사마리아는 BC 876년 오므리왕이 세운 나라로 세겜 북방 11㎞에 있으며 지금은 세바스티에로 불리는 작은 동네다.같은 핏줄이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원수가 된 것은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면서부터였다.포로생활 중 사마리아인들은 정복자인 앗시리아인들과 혈통적으로 혼합된데다 귀환하여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 협력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도중 강도를 만나 가진 걸 전부 빼앗기고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제사장이나 레위인 등은 모두 그냥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만이 그를 구해 주었다.자자손손 증오심을 대물림하는 땅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날마다 사실상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요즘 아득한 전설로만 여겨지던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살아나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그 지역 주민들은 물론 전세계인의 타는 가슴을 적셔주고 있다.6시간의 폭우로 물난리가 난 텔아비브에서 유대인 엄마가 3명의 어린 자식과 익사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웃 아랍인들이 구해 준 것이다.얼마 전까지도 이스라엘과 아랍인들이 서로 불을 지르고 죽이던 증오의 땅에서 피어난 꽃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본 심성에 이처럼 아름다운 면이 있음을 증명해주고 아울러 기대를 갖게 해주는 희망의 근거라 하겠다.그러나 지구 곳곳에서는 이런 희망은 싹도 트기 힘들게 깊이 묻어버리고 편견과 오해로 다른 지역사람,타 민족을 미워하는 증오심이 날로 팽창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이웃인 발칸반도에서는 세르비아,코소보,보스니아,몬테네그로 등 여러 나라와 민족이 대대로 물려온 증오심으로 전쟁을 치렀거나 대치 중이다.아프리카 일부에서는 종족간 싸움이 끊이질 않으며 유럽에서도 신나치주의가 맹위를 떨쳐 동양인을 비롯한 다른 대륙 사람들에 대해 핍박을 가하고 있으며 미국,캐나다 등 북미 지역 역시 소수인종,유색인종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뿐만인가.우리나라 내에서도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증오심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말로는 치유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럴 생각은커녕 더욱 부채질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물론 유럽,미국 또는 우리나라의 그런 와중에 말없이 조용히 궁지에 몰린 상대를 구해주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없는 건 아니다.그러나 그 정도로는 이미 팽배한 불신과 증오감을 씻어내기에는 부족하다.

이번 텔아비브 지역의 미담은 중동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숨은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선은 비록 작은 것이라도 악을 누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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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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