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2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47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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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자잘한 부패도 무섭다

큰 권력의 큰 부정부패 못지않게 미미한 권력이나 보통 사람들의 자잘한 부정부패 총합도 사회를 위태롭게 한다. 오히려 보통 사람의 보통 사람에 대한 위해는 더 직접적이어서 더 무서울 수 있다. 또 사회 구석구석 틈새마다 박혀 있다면 그것을 쓸어내기도 큰 부정부패보다 어려울 것이다.

지난달인 9월 군산 대명동 윤락업소에서 불이 나 윤락녀 다섯이 타 죽었다. 화재로 5명이나 죽었으면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남긴 일기장 내용을 신문에서 보니 너무도 비참했다. 그 젊은 여성의 소원 한 가지가 혼자 마음대로 동네 목욕탕에 가 보는 것이었다.

쇠사슬에 매이다시피한 노예가 그것도 성노예가 엄연히 이 시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인권을 외치는 수많은 인사들과 단체가 관심 둘 만한 일은 아닌가 보았다. 경찰은 그보다 더 급한 일들 때문에 아마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보도매체들도 한 신문을 빼고는 단 한 번 기사화하고 시선을 거두었다.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은 데도 있었다.

감금하고 성을 착취하여 젊은 여성을 절망에 빠뜨린 것은 어떤 권력기관도 아니다. 보통 사람이 한 짓이다. 그 보통 사람은 제 자식을 귀여워하고 이웃과 어울려 술도 마시며 노래방에 가서 가창 솜씨도 뽐낼 것이다. 인간을 짓밟는 보통 사람이 대명동 한 군데만 있겠는가.

또 지난달에는 사지 멀쩡하고 돈이 있는데도 생활보호대상자로 위장하여 나랏돈을 타 내는 얌체들이 많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짓거리가 다른 가짜 행세보다 더 미운 것은 정말 딱한 사람들이 저들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좀도둑질이 이보다는 덜 악질적일 것이다.

그래서 생활보호대상자 선정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는데 그렇게 되면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의 기회를 줄이는 결과가 될 것이니 섣불리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역시 지난달 일인데, 내 가족 가운데 하나가 경미한 차량접촉사고를 당한 뒤 겪은 씁쓸한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사소한 것이지만 사회 저변의 탁한 흐름을 볼 수 있었다.

퇴근 러시아워에 서울 강남 신사동 네거리 부근에서 택시 한 대가 내 가족의 차와 또 다른 택시를 받았다. 경찰서에 당사자 셋이 갔더니 담당 경찰관은 경미한 사고니까 사고 조서 꾸밀 것 없이 서로 보험으로 해결하라고 했다.

경찰관은 받은 택시의 기사와 받힌 차의 내 가족이 쌍방과실이고, 또 다른 피해 택시 기사에게는 과실이 없다고 일러 주었다. 혹시 사고 조사가 일방에 치우칠까 우려돼 내가 따라갔지만 서로들 불만이 없어 원만히 해결되는 듯해서 안심하고 그냥 왔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이튿날과 그 다음날 두 택시 기사가 각각 입원했다고 알려 왔다 한다.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알아보니 택시 운전사들이란 으레 그렇게 하니까 걱정 말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고 당일 저녁 경찰서 교통사고조사반을 나올 때 경찰관이 농담처럼 던진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가 한 말은 "자, 입원하고 싶으면 하든지 아니면 말든지 알아서들 하시오" 였던 것이다.

택시 기사가 경미한 접촉사고라도 나면 몸이 말짱한데도 얼씨구나 하고 입원해 병원 침대에서 며칠 푹 쉬고 그 동안의 치료비에다 사납금과 일당까지 보험회사에서 타내는 것이 "으레 그렇게 하는 일"이라?

나는 수첩에 적은 두 기사의 이름을 다시 들여다 보며, 사람이 다치지 않아 정말 피차 다행이라고 말하던 두 기사의 순박해 보이던 얼굴 밑에 어찌 그런 비열함이 숨겨져 있었을까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그 아버지들, 제 자식들만은 바르게 길렀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 기사들은 착한데 곁에서들 "야, 수 났는데 그만 둬?"하고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행티가 얄미워 정식 사고 조사를 경찰에 요구할까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우선, 시간을 내어 경찰서에 출두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웠다. 또 사고 현장에 스프레이도 해 놓지 않았고 우그러진 차체는 이미 수리해 버린 뒤라 경찰이 제대로 조사할지 알 수 없었다.

택시 기사, 보험 회사 직원, 경찰관, 병원 의사가 함께 "으레 그렇게 하는 일"이라고 일을 처리해 나갈 때 늘어나는 것은 보험회사의 지출이고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며 헛된 병원 진료비와 시간 낭비, 그리고 노동 손실이다. 그렇게 해서 쌓이는 국가 전체의 경제적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능률과 합리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나라들하고 경쟁할 수 없다.

작은 부정들이라도 그것이 퍼져 있으면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은 흰개미떼처럼 우리 사회의 밑둥을 갉거나 바이러스처럼 사회 전체를 중환에 이르게 한다.

목조 가옥이 많은 나라에서는 홍수나 돌풍보다 더 무서운 것이 흰개미다. 흰개미들이 1~2년 동안 기둥 속을 파 먹으면 집이 무너진다. 흰개미 퇴치법을 연구하느라고 미국의 많은 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우리나라서도 국보와 보물이 포함된 문화재 목조건축물 40여채가 흰개미의 공격을 받아 피해가 심각하다는 조사 보고가 있었다.

고래나 코끼리를 길들여 부려먹는 인간도 보통 현미경으로는 볼 수도 없는 미세한 바이러스 때문에 죽는다. 바이러스로 말미암은 인명 손실은 태풍이나 교통사고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심대하다.

흰개미나 바이러스 같은 작은 부패와 부정이 없거나 적어져야만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위해와 그에 따르는 심리적 불안이 만연하면 그 사회는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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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대한매일 DB팀장

200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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