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22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46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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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공중전화와 우체통

“공중전화를 보면/동전을 찾는다/그냥 무심히/그 앞을 지나갈 수가 없다/해가 진다/어두워 오는 마음에/불을 켠 듯한 이름 하나 없을까”

“우리 서로/잊었다가 문득 생각나는 날/식지 않게 살아온 이야기 몇 줄/엽서를 꺼내 쓰자/바람 든 골 깊을수록/울림은 깊고도 멀리 여운지리니/우리 살아가는 길목/우체통은 어디 있는지/가끔은 찾아볼 일이다”

앞의 것은 신달자씨의 시 ‘공중전화’ 앞 부분이고,뒤는 유희씨의 시 ‘우체통이 있는 길목에서’의 중간 부분이다.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편지로 정을 나누는 것이 허전한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를 뭉클하게 전해주고 있다.

공중전화를 통해서 어찌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만 듣고,편지에 정답고 따뜻한 소식만 오가겠는가.슬프고 마음 아픈 사연도 숱하지만 사람들은 가슴 벅차도록 흐뭇했던 것들만 깊은 감동으로 간직한다.세월이 지나면 과거 속의 일들이 아름답게만 기억되듯이.

이처럼 시민들의 한 식구로서 사랑을 받으며 애환을 함께 해오던 공중전화와 우체통이 관리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되어 속속 퇴출되고 있다.휴대전화와 E메일이 그들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설 자리가 줄어든 탓이다.

공중전화는 지난 8월말 현재 55만3000여대로 1년 전에 비해 1만1000대나 줄었고 연말까지 6000여대가 더 사라질 예정이다.우등고속버스 내에 설치된 공중전화도 언제부터인가 철거되었다.공중전화 앞에 장사진을 치며 차례를 기다리던 장면도 이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1954년 첫 선을 보인 뒤 매년 증가했던 공중전화 기세가 46년 만에 내림세로 돌아선 것이다.

우체통은 공중전화보다도 더 빨리 쇠퇴하고 있다.공중전화 보급에 이어 1가구 1전화 시대가 열리고,곧바로 휴대전화 바람이 불면서 이용자들이 점점 편지와 우체통을 멀리 하게 된 것이다.숨가쁘게 긴급한 사안은 전보를 치고,구구절절 사연은 편지에 써서 보내던 시절이 급속히 과거 속으로 파묻혀 들어 가면서 우체통도 할 일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각 지역 우체국은 이용 빈도가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관리비만 잡아먹는 우체통들을 가차없이 철거하고 있다.이대로 가면 공중전화나 우체통의 실체는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 퀴즈프로에나 등장할지 모른다.소식과 관련된 옛날의 물건과 제도가 사라지고 오늘날 기별,파발마,역참,봉화 같은 낱말만 남아 있듯이.

그렇다고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무릇 세상의 모든 것은 세월 따라 변하고,태어난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휴대전화,인터넷도 어떻게 달라지고 뭣에 밀려날지 아무도 모른다.그게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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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mib.co.kr
국민일보 200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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