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2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45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메르쿠리와 정옥자

멜리나 메르쿠리는 ‘페드라’‘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유명한 그리
스 영화배우다.나중 문화부장관이 된 후 그는 영국 등을 상대로 그리
스 문화재 반환운동을 펼쳐 더욱 주목을 받았다.파르테논 신전의 기
둥을 비롯,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엘진마블’ 반환운동이 아
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전세계적인 문화재 반환운동의 촉매가
됐다. 지난 1994년 그가 타계한 이후에도 그의 뜻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메르쿠리 재단은 유럽의회 등을 상대로 엘진마블의 반환을 주장
하고 있고,그리스를 찾는 관광객들은 지금도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엘진마블의 귀환을 주장하는 탄원서를 메르쿠리의 이름으로 받게 된
다.

19일 한·불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오는 2001년까지 반환하
기로 합의했다.정상회담에 앞선 실무협상에서 협의된 반환방식은,프
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중인 외규장각 도서 191종 297책을 모두 돌려
받고 그에 상응하는 문화재를 우리가 프랑스에 장기교류 임대 전시하
는 것이라 한다.

외규장각 도서는 왕의 등극,세자책봉 등 조선시대 왕실행사를 기록
한 의궤들로 이루어져 있다.조선시대 의궤는 국왕이 친히 열람하기
위한 어람용(御覽用)과 일반 보관용으로 만들어진 비(非)어람용으로
나뉘는데 프랑스가 반환할 외규장각 도서는 대부분 어람용이며 그 가
운데 64책은 국내에 복본(複本)이 없는 유일본이다.이런 귀중한 문화
재가 돌아온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과 학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에는 없으나 국내에는 여러권의 복본이 있는 비어람용
의궤를 프랑스에 있는 어람용 유일본과 바꾼다는 것은 프랑스가 주장
해 온 ‘등가(等價)교환’ 형식을 사실상 받아들인 셈이라는 것이다.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우리가 무조건 돌려받아야 할 ‘반환’ 대상이지 다른 문화
재와의 ‘교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비어람용 의궤를 다수 소장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의 정옥자(鄭玉
子)관장은 “절대로 내놓지 않겠다”고 아예 선언했다.“프랑스에 있
는 의궤는 해외반출된 우리 문화재 전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
과한데 앞으로 일본 등 다른 나라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무얼 내주고
가져 올 것이냐”고 그는 물었다.“미테랑 대통령의 반환약속이 프랑
스 국립도서관 사서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그 역할을
맡겠다”고도 말했다.

정관장의 선언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협상에 새로운 국면을 조성해
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그러나 우리에게도 메르쿠리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외교적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지만 문화재 반환협상에서는 후손을 위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다음 실무협상에서 지혜로운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
任英淑 대한매일 논설위원실장
대한매일 2000.10.21
-------------------------------------
http://columnist.org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