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2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44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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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디지털 격차가 빚은 월드컵 홈페이지 사건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오는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되는 월드컵 축구대회 지역별 예선경기가 한창이다. 인류 최대의 스포츠축제로 불리는 월드컵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국가와 민족에 관계없이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달 초에는 대회일정까지 확정되어 월드컵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개막전은 5월31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결승전은 6월30일 일본 요코하마경기장에서 벌어지고 한국의 예선 첫 경기는 부산에서 치른다는 내용 등이 발표되어 축구팬과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월드컵축구가 올림픽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음도 인종과 이념을 초월한 세계 최대의 스포츠잔치라는 점 때문이다. 올림픽은 일부 경기종목을 제외하고는 유색인종을 위한, 못 사는 나라보다는 잘 사는 나라들을 위한 잔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월드컵축구야말로 잘 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간극이 없다. 그저 동그라한 축구공만 잘 차면 되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과 함께 월드컵을 공동개최키로 한 것은 국가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도 자부심을 갖고 월드컵행사를 착 착 준비하고 있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문제는 남북통일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2002월드컵 영문홈페이지가 나라 망신시키는 글들도 차있는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민주당 심재권의원(沈載權.강동을)이 지난 16일 국정감사자료를 통해 "국가 공식사이트라고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는 부적절한 내용이 많다"고 지적한 것이다.

홈페이지 내용을 보면 「방문시기」에 관해 "월드컵이 개최되는 기간인 5∼6월은 일본 관광객이 붐빌 때이므로 호텔은 예약이 안된다. 여름은 무덥고 태풍이 불 수 있으니 월드컵이 끝난 뒤인 9∼10월 방문해 달라"고 되어 있다.

「건강상 주의사항」에서는 "특별한 위험은 없으나 장티푸스, 소아마비, 파상풍, 디프테리아 접종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해 한국을 위생 상태가 극히 나쁜 후진국으로 묘사했다. 또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일본을 「혹독한 지배자」라고 표현하고 「한국에는 반일 감정이 여전히 강하다」고 소개함으로써 일본측의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마저 안고 있다.

이밖에 미국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전쟁영화인 「매시(Mash)」를 거명하며 "매시의 재방영 횟수를 따진다면 한국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라는 등 최근 남북 화해무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자료도 부정확해 무비자 체류기간도 30일을 15일로 적었으며, 시·군 단위 지역 전화번호가 시·도 단위로 통일됐는데도 수정하지 않았다. 연간 경제성장률도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당시의 「-2%」로 표기돼 있다.

이와 관련해서 월드컵 조직위원회 사무총장과 홍보담장자가 사표까지 제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조직위는 "인터넷 운영업체인 엑스무로스가 홈페이지를 관리해 오던 중 미국계 업체에 의해 해킹을 당한 것 같다" 며 곧바로 관련 내용을 영문 사이트에서 삭제했다.

조직위는 홈페이지 운영을 맡겼던 인터넷 업체 엑스무로스사가 새로운 내용들을 추가하면서 문제된 부분들을 넣었을 가능성과 홈페이지가 의도적으로 해킹당했을 가능성 두가지를 조사중이라고 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는지 궁금하다.

저간의 사정이 어떻든 조직위가 인원과 예산에서 홈페이지 부분을 너무 소홀하게 취급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중요한 행사인데도 홈페이지 담당직원을 한명만 두었다든지, 하청업체에 맡겨 두고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다소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인터넷공간의 홈페이지 내용이야말로 현실공간의 상점에 진열한 상품의 질과 같다. 상품의 질이 좋아야 상점이 신뢰받고 물건도 잘 팔린다. 마찬가지로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이 좋아야 믿음이 가지 엉망이라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이번 「사건」을 지켜보는 필자로서는 인터넷시대를 맞은 상황에서 기성세대가 안고 있는 디지털격차가 문제의 발단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젊은 세대는 홈페이지에 익숙해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성세대는 인터넷을 만사형통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 그저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으면 되는 줄 알았지 관리가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것인 줄을 모르는 것이 인터넷을 멀리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다. 조직위를 이끌어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두 인터넷의 실체를 잘 모르는 기성세대여서 이 같은 실수를 빚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런 인식은 오늘 아침에 들은 라디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18일 막을 내린 제 81회 부산 전국체전에 대해 일부언론과 시민여론이 고생도 많이 했지만 대회운영상에 문제점도 많았다고 지적하는데 대해 체전관계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하면서 "홈페이지를 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체전이 어디 네티즌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인가. 남녀노소, 컴맹·넷맹 가릴 것 없이 전국민을 위한 행사가 아닌가. 그런데도 그는 홈페이지를 들먹이며 잘못된 데 대해서는 반성을 하거나 양해를 구하려는 의지가 없는 듯 했다.

필자는 부산에 살면서 하루에도 여러 시간 인터넷을 이용하는데도 체전관련 홈페이지주소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하물며 일반시민은 말할 것도 없다. 체전관계자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은 인터넷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으로 볼 수 있다.

월드컵홈페이지와 관련한 이번 사건은 홈페이지 관리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홈페이지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 모두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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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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