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1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40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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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화려한 이력보다 내실을

각 업체의 신규채용인원이 매우 적어 대학졸업자의 취업이 상당히 어렵던 어느 해였다. 한 명문대 졸업생이 그룹의 막강한 고위층 줄을 타고 산하 회사에 특수채용될 기회를 얻었다. 초중고교 시절은 물론 대학에서도 우수한 학생이었기에 굳이 낙하산을 타지 않아도 될 인재 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잇점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실패했다. 이력서 때문이었다. 몇 줄 적을 것도 없는 나이였는데 자그마치 16절지(지금의 A4 정도) 4장이 모자랄 정도로 빼곡히 기재했다. 아예 '자서전'을 써 온 것이다. 통념을 뛰어넘는 긴 이력서가 비상식적이긴 하지만 기인에 가까운 천재들의 행태 정도로 이해 못할 바 없었다. 그러나 그처럼 탈속적이고 비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우수하고 훌륭한가를 알리고 싶어 안달하는 속물 근성으로 시종 일관했다.

낙하산을 타고 온 자체를 대놓고 반대할 용기가 없던 월급장이들에게 그 해괴한 이력서는 좋은 시비거리가 되었다. 직원들간의 인화와 단결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발한 것이다. 그를 밀었던 실세도 이력서를 본 뒤 부서원들 지적에 일리가 있다며 채용을 취소했다. 그는 젊고 머리가 좋았으므로 나중에 그의 잘못을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달리 한 평생 전혀 고칠 가망이 없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사람과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체면을 중시하는 폐습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개개인들의 허세, 과시욕, 불공정한 승부 풍조 등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장편의 이력서를 쓴 그 청년처럼 어디 에 내놔도 꿇릴 것 없는 자랑스런 학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가능하면 많이 기재하고 싶어 한다. 대부분 학력난이 대학부터 시작하는 것에 불만이다. 고교 뿐만 아니라 초중학교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류다. 그래서 그런 제약이 없는 저서 같은 것에는 맘껏 쓰고 과시한다. 그들은 또 자신보다는 동문회, 모교를 더 내세우고 시도때도 없이 등에 업고 다니며 패거리 짓기를 좋아한다.

이들과 반대인 이들은 이수여부가 수상한 대학원부터 적기 일쑤다. 하는 일도 분명치 않은 각종 단체, 희한한 조직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며 줄줄이 엮어 놓는다. 이런 이들일수록 대개 저서가 많고 역시 책의 약력난은 한 페이지로도 부족하다. 저서 많아 흠될 것 없고 이력 화려해 나쁠 것 없지만 그 내용의 질과 수준이 의심스런 경우가 많다.

갓 쓰고 박치기를 해도 제 멋이더라고 자화자찬 자서전을 쓰건 세상 중요한 일은 혼자 다 했다고 자랑하건 혼자 자기 집 안방에서 그러면 나무랄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공적으로 활동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할 때 많은 부작용과 폐단을 불러오니 문제다.

이들은 대체로 우월감과 열등감이 앞뒤를 이루며 자기보다 못하다 싶으면 깔아 뭉개려 들 고 그렇지 않으면 아첨하고 빌붙기에 바쁘다. 이력서 내용에 부합한 내실을 기할 노력은 하 지 않고 함량 미달의 역량만 과시하려다 보니 그런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내뿜는 유독성 거품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건전한 인간관계는 차츰 실종되 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귀중한 가치들은 왜곡되거나 폐기될 위기에 놓인다. 그런 이들이 사회지도층이나 권력층에 많으면 국가와 시민이 나아가야 할 길 즉 의식개혁은 명절 때 고속 도로 차들처럼 지체와 서행을 반복하거나 아예 멈춰버리고 만다.

이력서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 장문의 경력을 쓰는 시간의 100분의 1만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길 권하고 싶다. 그걸 보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자기 생각대로 훌륭하다고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빈정댈 것인가. 답은 스스로 알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물어 보는 일이다. 그 이력에 걸맞는 생각, 행동을 하고 있는가. 실력은 충분한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마저도 속이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마저 속이고 살다가는 인생, 한번쯤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비참함을 깨달을 것이다. 의식마비가 치료하기 힘든 중증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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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2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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