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1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36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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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 바르게 쓰려면

한글날인 지난 9일 검사 40여명을 포함한 400여명의 직원이 ‘우리말 바르게 쓰기 시험’을 치른 법무부 청사에서는 한숨과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고 한다.띄어쓰기,맞춤법,표준어,외래어 표기법,어법 등의 분야에서 50문항이 출제되었는데 고시보다 더 어렵다,우리말이 이렇게 어렵나,국어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결과라는 등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문제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모두 맞는 말들이다.고시보다 어렵다고 했지만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법자 붙은 것 치고 어렵지 않은 것이 없지만 한글맞춤법,국어문법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33년에 제정된 한글맞춤법이 지난 88년에 개정,발표되면서 당국의 의도와 달리 수많은 사람이 준 까막눈이 되어 버렸다.반세기 동안 과거의 맞춤법통일안에 근거한 교육을 받아왔는데 너무 큰 폭으로 바뀌고 나니 글과 말로 먹고 산 사람들마저 초등학생도 아는 것을 헷갈리는 일이 많아졌다.한 예로 과거의 ‘있읍니다’ ‘없읍니다’가 ‘있습니다’ ‘없습니다’로 바뀌었는데 왜 ‘있음’ ‘없음’은 ‘있슴’ ‘없슴’으로 하지 않고,예전의 ‘더우기’ ‘일찌기’는 왜 틀리고 지금은 ‘더욱이’ ‘일찍이’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띄어쓰기에 이르면 이것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여서 한숨부터 나온다.신문을 보면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김대중대통령과 이회창총재가 뒤섞여 나온다.이름과 직책을 띄어 쓰는 신문,붙여 쓰는 신문 등 어느 것이 맞는지 정신이 없다. ‘저자 이성욱 씨는 이씨이다’에서 같은 씨인데도 앞에서는 띄어 쓰고 뒤에는 붙여 썼다.그렇지만 이는 바른 표기이다.분간하기 어려운 것이 그 밖에도 많다.

이런 사례에 대한 원칙과 규정이 있지만 역시 이해가 쉽지 않다.기자가 쓰는 이 글도 한글맞춤법의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면 틀린 곳이 셀 수 없이 많이 나올 것이다.언어대중이 숙지하기 어려운 규정이 너무 많으면 그 법은 현실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말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는 비명이 나오게 되어 있다.게다가 초·중·고교에서의 국어교육마저 다른 과목에 밀려 기초가 부실하고 사회 전반의 국어 경시 풍조는 이를 부채질해 대다수 국민의 우리 말과 글 구사 능력은 부끄러운 수준이 되어 버렸다.하지만 맞춤법,띄어쓰기는 문장 구사 능력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낱말이 집을 짓는 각 부분의 재료라면 문장은 건축과정에 해당된다.이에 따라 글 한 편은 여러 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지고 한 문단은 보통 3∼4개 문장으로 구성된다. 같은 문단 안에 든 문장끼리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핵심 문장이 나타내려는 뜻을 다른 문장들이 뒷받침하여 한 문단의 내용을 일관되게 한다.또 문단들은 핵심 문단,즉 서론이나 결론 부분을 보강하고 강조해 글 한 편의 완성도를 높여 준다.반드시 자로 잰 듯 기계적으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낱말,문장,문단이 모여 글을 이룰 때의 일반적 과정이다.

낱말과 낱말,문장과 문장,문단과 문단을 이어주는 역할은 접속사,대명사 등의 지시어나 연결사들이 한다.이것이 매끄럽지 못하면 글 전체가 지리멸렬해져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즉 부실건물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이같은 문장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므로 맞춤법,띄어쓰기 틀린 것보다 더 한심한 글이 나오게 된다.문장이 문단처럼 모두 단락으로 나뉜 글이 있는가 하면, 한 문장이 서너 줄이 되고 단락이 없는 글도 있다.유명 문인,학자의 글 가운데서도 그런 경우가 심심치않게 보인다.

과거의 국어수업이 시나 소설을 쓰려는 문학도들의 감상적 글짓기 시간으로 오도된 탓이 적지 않다.그러다 보니 기초 구축에 필요한 실용국어는 뒷전이 되었다.

법무부에서 국어 시험이 실시되던 날 서울대가 대학 국어교육 방법을 대폭 수술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런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서울대는 내년 1학기 교양국어부터 읽기,쓰기,말하기 등 실용성 위주로 완전히 바꿔 대학을 졸업해도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데 미숙한 문제점을 시정해 나가겠다고 했다.한글날이 되면 너도 나도 한글 사랑만 외치는 풍토에서 구체적인 대안이 나온 것으로 기대가 크다.다른 학교에서도 보조를 맞추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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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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