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33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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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국경일로

민주당 신기남 의원 등 여야 의원 30여명이 현재 기념일로 지정된 한글날(10월9일)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국경일법 개정안 제출을 추진중이다.우리 문화를 담는 그릇인 한글 생일을 국경일로 승격시켜 민족문화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이 움직임의 취지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제라도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이번 한글날은 촉박했으니 그냥 지나가더라도 내년부터는 반드시 국경일이 되기 바라는 여론이 높다.

세계에서 창제 일자와 창제자가 분명한 문자는 한글밖에 없다.이 점만으로도 국경일로 기리기에 충분한데 우리는 홀대하고 있는 것이다.한글이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핍박은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일제는 민족정신 파괴를 위해 한글을 아예 없애버리려고 했다.

이런 질곡을 견디고 해방되자 정부는 10월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1949년부터 공휴일로 지정했다.미흡하지만 민족과 고난을 함께 한 한글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우였다. 하지만 1990년에는 10월에 공휴일이 편중(국군의 날,개천절,한글날)돼 산업생산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에 따라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함께 각종기념일로 격하시켜버렸다.일제의 망령이 너희는 별 수 있느냐며 비웃을 노릇이었다.

우리는 본래 자기 것 소중한 줄 모르다가 남이 언급해야 인정하는 못난 습성을 가지고 있다.따라서 부끄럽지만 한글을 나라 밖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볼 수밖에 없다.그렇지 않으면 귀기울이지 않을테니 말이다.

외국인들은 문자를 창제한 날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한글을 부러워한다.그 우수성을 인정해 유네스코는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했다.또 세계적으로 문맹퇴치에 공적이 큰 사람에게 세종상을 수여하고 있다.미국 시카고대의 매콜리 교수는 한글날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가 축하해야 할 날이라고까지 하고 있다.하버드대의 라이샤워,네덜란드 라이덴대의 포스,영국의 언어학자 샘슨 등 세계 저명학자들도 한글은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라고 지적한다.언어를 혁명의 도구로 삼고 있는 북한도 1월15일을 ‘한글창제일’(우리와는 다른 기준에 따라 정함)로 지정하여 정부 차원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남들이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데도 경제논리 일방통행에 밀려 공휴일에서 쫓아내버렸다.모든 국경일,공휴일,기념일 가운데서 문화와 관련한 유일한 기념일이라는 것만으로도 다른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데도 말이다.한글을 우리가 박해하는 어리석음을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더 이상 남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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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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