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29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31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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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21세기 문화 문화인] 평양교예단 서울공연 성사시킨 김보애 NS엔터프라이즈회장


  지난 5월 평양교예단의 묘기는 즐겁기보다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자동차로 두어 시간 거리인 평양에서 그 교예단이 서울까지 오는 데는 또 다른 '교예'가 숨어 있었다.

대북사업체 NS엔터프라이즈 회장인 김보애(金寶愛.61)가 10년간 갈고 닦은 교예였다.

  남북 분단은 비무장지대에 생겨난 천연동물의 낙원 같이 한시적 공간들을 만들 듯 한시적인 직업도 만든다.

김보애도 그렇다.

공연사업가는 개화기부터 있었으니 그는 '21세기 문화인'은 아니나 분명 '21세기 한국 문화인'이다.

  원래 그는 너무 유명한 20세기 문화인이었다.

1960년대의 톱스타 김진규의 부인으로 부부가 함께 은막을 장식하기도 했다.

권력층들로 성업을 이루던 음식점 세보(世寶)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 김보애가 요즘은 남북문화교류로 바쁘니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다.

  "부끄러운 기독교인이지만 저는 거듭난다는 말이 좋았어요.

여러번 그런 것을 체험하기도 했으나 대북사업에 뛰어들고서야 그 말이 집힐 듯 와닿는 기분입니다."

  신앙과는 거리가 먼 북한 사람들의 눈에 그는 더 거듭난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그의 삶에는 북한이 지난날 남한을 비방할 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악'이 응축돼 있다.

  일찍이 배우가 돼 스무살에 17세 연상의 이혼남인 김진규와 결혼해 13년만에 이혼한 이후 세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면서 숱한 염문을 뿌린 것은 사생활이자 '자본주의 퇴폐문화'의 피해자라고 해 두자.

  그러나 음식점 '세보'는 바로 '자본주의 퇴폐'의 본바닥 같았다.

권력자들은 주인인 인기배우를 찾아 몰려 오고,그 뒤에는 돈주머니를 싸든 재벌들이 권력을 찾아 몰려 왔고,이를 뒤쫓아 정보부원들이 찾아와 시시덕거리고 소근거리고 눈을 번뜩거리는 곳이었다.

  "차라리 그래서 더 쉽게 북한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들이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 따로 둘러댈 수도 없었고 그래서 저의 속내를 믿었지요."

  물론 김보애는 50줄에 접어들던 10년전까지 북한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가 부잣집딸이어서 만은 아니다.

태어남은 그랬으나 자라서는 온갖 파란을 겪으며 '도둑질 빼놓고 다해본' 김보애였으나 북한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학교의 반공교육에서 스쳐간 어둡고 살벌한 인상이 전부였다.

  굳이 북한과의 인연을 찾자면 '세보'에 중앙정보부장 같은 이들이 드나든 정도지만 그들이 세보를 찾은 것은 국가안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런 권력자들의 눈길을 피해 드나들던 김지하 등 운동권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선전과는 달리 그들 대부분은 북한과 거리가 멀었고 더욱이 그를 찾아올 때는 가난하고 고달픈 군상들로서였다.

  그러나 김보애의 오늘은 그런 속에 숨어 있었다.

그가 친하게 지내던 반체제 인사들 가운데 소설가 황석영이 있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그는 91년 황석영의 '장길산'을 남북합작 영화로 만들기로 함으로써 북한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불쑥 발을 디딘 것이다.

  "황석영씨를 알고 지냈다는 것보다는 덜컥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저의 성격이 더 크지요.

스무살에 아이 둘 달린 17세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 것도 그런 것입니다.

부모들의 허락을 받아서 결혼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지요."

  자식 이긴 부모 없다는 말은 있어도 일단 저질러 놓고 나서 자살소동까지는 가야 했다.

북한 일도 그랬다.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뛰어든 이래 10년 가까이 됐으나 지금도 무슨 전문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황석영 등과 친했던 사실을 그렇게 간단히 지나칠 일은 아니다.

권력층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반체제 인사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소설에서나 볼 수 있다.

김보애는 소설처럼 가난한 반정부인사들은 물론 야당인사들을 거저 먹여주고 용돈을 주며 때로는 숨겨주었다.

그래서 정보부원이 찾아 와 "야당 사람들에게 준 외상값을 전부 받아다 주겠다"는 말에 시달리기도 했다.

  황석영과의 '장길산' 계약으로 그가 북한밀입북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는 증인으로 피고를 변호해 주기도 했다.

황석영은 전부터 김보애를 '누님'이라고 불렀으나 과연 그런 사건에 걸려든 '동생'을 보살필 누님이 어디 있을까.

  그것은 김보애 특유의 저질러 놓고 보는 성격에다 '여린 마음'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의 첫 남편 김진규와의 재결합도 그렇다.

김진규는 그와 함께 살던 시기를 포함해 평생을 치마폭에서 살았으나 70대의 지병환자가 되자 둘째 부인에게 돌아 왔고 김보애는 당시 사귀던 '애인'을 버린 채 그를 맞아 가는 길을 지켜봤다.

  "'장길산'은 영화화되기는커녕 법정에나 끌려 다녔으나 그것으로 북한과의 문화합작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피바다'니 '꽃파는 처녀'니 하는 북한 문학도 제대로 읽어 볼 기회가 없었으나 얼굴을 맞대는 것은 문학 이상이지 않습니까.

직접 대해본 그들이 너무 순수해 마음이 끌리면서 새삼 분단이라는 문제가 아프게 다가 왔지요."

  꾸밈 없는 북한 사람들에게 호감이 갔고,한다면 하는 김보애의 기질에는 나이가 없었다.

유부남과 결혼할 때 집안과 주위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아랑곳않듯 '빨갱이'라는 소리도 지나쳤다.

그의 사업체도 처음에는 '남과 북'이라는 뜻의 SN으로 시작했으나 그 뒤 적자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무심히 순서를 바꿔 NS로 고치자 그것도 시빗거리가 될 판이다.

빨갱이라는 손가락질보다 사업이 빨갛게 적자가 나는 것이 더 심각하나 그것도 특유의 '배짱'으로 이겨내고 있다.

  "저는 이상하게 돈 복도 따르고 손재수도 많이 겪었지요.

잘 나가던 '세보'도 사건으로 사흘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세보'에서 벌었던 돈도 그 뒤 사업에 실패한 애인의 빚을 갚는 데 전부 날리고 집도 없이 됐지요.

그래도 그 뒤에는 또 돈이 따르대요."

  돈은 있다가도 없다는 김보애기에 지금 궁핍해 보이는 북한 사람들과 만나서도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지 모른다.

  요즘 김보애의 관심은 영화 '아리랑'을 남북합작으로 내놓는 것이다.

95년에 계약은 됐으나 그 동안 진척이 없다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여건이 바뀐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와 '아리랑'의 제작을 재계약했다.

  "'아리랑'도 상업성은 기대하지 않고 있어요.

북한쪽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남한에서도 관객이 몰릴 것 같지는 않거든요.

97년부터 조총련계 사업체인 '서해무역'을 통해 북한영화 '안중근' '사랑사랑 내사랑' '홍길동' '꽃파는 처녀' 등을 수입했으나 실패했어요.

모두 TV에서 상영하고 극장에서 상영된 것은 '불가사리'뿐이었으나 그것도 관객이 200명이 드는 정도였지요."

  그래도 나운규 이래 한국영화의 기념비적인 '아리랑'만은 남북합작으로 내놓고 싶다.

그는 지난 평양교예단의 공연이 성공했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흥행은 정상회담의 일정과 겹쳐 실패했으나 이를 통해 남북간의 벽이 뚫리는 느낌이었고 자신의 막혀있던 기분도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남북문화교류를 떠맡고 있는 관리들에 대한 불만은 많다.

많은 관리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사명감이나 소신은 별로 없이 권위만 내세워 일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국 관청 특유의 번문욕례만 강요하니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불만 때문인지 북한 관료들에게는 평이 후하다.

  "이런 말 써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그곳 고위층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유식하고 뭣보다 멋이 있어요.

고위층과 사귀는 일이라면 제 전공 같은 것 아닙니까.

세보를 경영할 때 만났던 이 쪽 고위층과 문화사업으로 만나는 그 쪽 고위층을 정면으로 견줄 수야 없으나 우리 관료들도 좀 소신과 사명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보애는 그래서 그 쪽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편하다.

이제 허물없이 친하다 보니 곧잘 "나 혼자 살고 있으니 좋은 홀아씨(독신남) 한명 소개해 주라"고 농담도 한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면 우리 민족은 '휴전선'을 잃게 되고 그는 '21세기 문화인'이라는 호칭을 잃게 될 것이다.

  평생 연예인답지 않게 검은 머리를 한 김보애의 마음에는 이미 휴전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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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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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역사 들쑤시기 '그해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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