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2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26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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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양궁 5연패(連覇)

옛날 중국에 활 잘 쏘기로 유명한 비위(飛衛)라는 사람이 있었다.어느 날 기창(紀昌)이라는 젊은이가 활을 배우러 왔다.그러나 비위는 활을 가르치기 전에 기창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지극히 작은 것을 크게 보고 매우 가는 것을 굵게 보는 연습부터 하라.그리하여 네 눈에 작은 것이 확실히 크게 보이고,가는 것이 아주 굵게 보인 다음에 내게 오면 활쏘는 법을 가르쳐 주마”

기창은 집에 돌아와서 이 한 마리를 가는 머리카락에 묶어 문지방에 매단 뒤에 정좌하고 바라보았다.그렇게 하기를 3년,마침내 작은 이가 커다란 수레바퀴처럼 보였다.활쏘기를 따로 배울 필요가 없게 되었다.그것이 스승의 훈련방법이었던 것이다.

활쏘기는 원래 정적인 운동이라 강인한 체력 못지않게 이같은 정신집중이 절대 필요하다.강한 정신력은 어느 종목에나 없어서는 안 되지만 여기에서는 그 비중이 유달리 높다.10여년전 미국 양궁의 대부 데이브 케기씨는 선수훈련 특별프로그램에서 피로를 모르는 기계에 가까운 체력단련,잡념이 들지 않도록 빨리 쏘는 법,이왕 쏜 화살에 대한 미련 버리기 등을 집중적으로 주문했다.

활쏘기는 사실상 도를 닦는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그래서 바로 궁도(弓道)라고 하는 것이다.양궁선수들이 담력강화와 정신집중훈련을 위해 참선,유격훈련,깊은 밤 공동묘지 지나기,뱀굴 들어가기 등의 과정을 밟는 것은 옛날 제자들이 산 속의 스승을 찾아가 도를 전수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그렇다고 ‘하산(下山)’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 경기장처럼 수많은 관중과 함성 속에서 기량을 겨뤄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훈련을 해야 한다.야구장,축구장처럼 격렬한 경기장을 찾아가 활쏘기를 하고 감정절제를 위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로시니의 ‘윌리엄 텔’서곡 등 음악감상도 빼지 않고 해야 한다.

한국 여자 양궁이 시드니 올림픽 개인전에서 윤미진의 금메달을 비롯 은·동메달까지 휩쓸며 LA대회 이후 5연패(連覇)를 달성한 것은 바로 이런 노력의 결과다.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래도 한국 여자 양궁이 막강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한국이 제패하기 전까지 세계를 양분했던 양궁 강국 미국과 러시아가 특히 그렇다.

유교와 불교의 전통,한민족 특유의 손끝 감각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등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유다른 비법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감독과 선수들의 남모르는 노력만큼 확실한 비법이 어디 있겠는가.바로 그 대목을 우리는 치하하고 같이 기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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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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