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18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23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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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지상주의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 우리 나라에 첫 메달을 안겨준 강초현양은 금메달을 놓친데 대해 어머니가 실망할까봐 위로했고,어머니는 딸이 상처 입을까봐 걱정했다.올림픽에서 은메달 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따라서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도 모자랄텐데.

모녀는 기뻐하고 싶어도 금메달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내색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올림픽이 전쟁터도 아닌데 우리는 1등이 아니면 패배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애틀랜타 올림픽 때 한국의 어떤 은메달리스트가 금메달을 놓치고 우는 것이 지나쳐 외신의 화제가 되었다.금메달 아닌 은·동메달은 우습게 생각하는 한국의 스포츠문화 낙후성을 꼬집은 것이다.

모든 경쟁에서 지면 누구든지 억울하고 분하게 마련이다.그러나 거기까지 간 과정도 중요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노력하는 그 자체 역시 메달 못지않게 값진 것이다.18세의 어린 나이이지만 다행히 강양은 눈물과 패배의 덫을 훌훌 털고 시상대에서 맑은 웃음으로 스포츠 정신을 실천했다.정상에 오르면 다음의 목표가 사라지기 때문에 은메달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어른스런 말과 함께.

같은 날 남자 유도 정부경의 은메달과 펜싱 남자 이상기의 동메달도 마찬가지로 깊은 의미와 높은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본인은 물론 국민들도 그 기쁨을 진정으로 함께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올림픽에서 첫 은메달을 딴 것은 1956년 호주의 멜버른 대회에서였다.복싱의 송순천 선수가 동독선수와 치열한 결승전 끝에 은메달에 그쳤지만 당시 국민들의 감격은 대단했다.금메달은 20년 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처음으로 따내 그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선진국 선수들은 은·동메달은 물론 올림픽 참가만으로도 기뻐하고 즐긴다.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승부욕은 비정상적이다.언제부터 스포츠 강국이 되었다고 금메달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가.남들이 비웃을 만도 하다.

메달리스트들의 연금규정이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는데 큰 몫을 한다.올림픽 은메달의 평가점수는 금메달의 3분의 1이고 동메달은 4분의 1도 안 된다.이러니 선수들이 금메달을 놓치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이를 개선해야 한다.

국민들도 스포츠를 사생결단식으로 보지 말고 경기과정을 감상하며 즐기는 쪽으로 안목을 바꿔야 한다.여행은 목적지 도착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스포츠도 그렇다.그러면 선수단이 귀국할 때 금메달리스트를 제외한 선수들이 무슨 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공항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비인간적이고 반스포츠적인 장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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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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