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1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22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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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

한국의 공중화장실에 감명받은 싱가포르에서 이를 본받아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스트레이츠 타임스가 그 나라 환경차관부의 말을 인용,보도했다.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 중의 하나인 싱가포르가 인정할 정도의 화장실이라면 긴 설명이 필요없을텐데 그것이 한국의 것이라니 자랑스럽기 이전에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사대주의적 발상에 의한 자기비하가 아니다.

싱가포르 환경부차관이 시찰한 수원의 어느 화장실은 디자인이 뛰어나고 공기도 맑을 뿐만 아니라 너무 깨끗해 어린이 놀이터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내부의 여러 시설도 매우 잘 되어 있으며 화장실 바로 옆에서 미술전시회를 열 정도라고 했다.따라서 싱가포르도 한국처럼 훌륭한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의 모범이 되어 칭찬을 듣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나 어딘지 켕기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지하철 역 화장실 가운데 정말 깨끗하고 편안하여 아늑한 휴게실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 상당히 있다.그러나 그런 곳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청결한 화장실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종교,시민단체 봉사자들이 매일 가꾸고 청소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환기나 배수시설에 문제가 있는지 악취가 진동하고 지저분한 물기가 가시지 않은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기기가 고장나거나 파손된 곳도 숱하다.

고속도로 휴게소,버스터미널,각 역의 화장실들도 비슷하다.그래도 이런 곳들은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공원이나 행락지의 공중화장실들은 이 정도도 드물다.사람들의 발길,눈길이 덜 닿기 때문일까.아예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한 곳도 널려 있다.

싱가포르 환경부차관이 이런 곳까지 보고서도 한국의 공중화장실을 그토록 극찬했을까.그건 아닌 것 같다.만약 보았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싱가포르의 칭찬이 오히려 두렵고 부끄럽다.

한국 공중화장실의 문제점은 또 있다.얼마 전 김포공항 화장실에서 일을 보던 독일인이 질겁해서 말을 잃었다.남자화장실에 사람이 있는데도 여자가 청소하는 것에 기겁하며 이런 비문명국가가 다 있느냐고 개탄한 것이다.남자화장실 청소를 왜 남자가 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공중화장실뿐만 아니라 대다수 건물 남자화장실 청소를 여자들이 한다.우리도 어색해 난처할 때가 많지만 외국인들은 더욱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이런 점도 개선되어야 한다.그런 다음에라야 남이 한국의 공중화장실을 칭찬하면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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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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