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14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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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시위」에 무릎꿇은「온라인보안법」

「인터넷정보내용 등급 자율표시제」의 도입을 추진하던 정보통신부가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한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쳐 문제된 조항들을 수정 또는 삭제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로써 사이버검열에 대한 논란은 일단 네티즌들의 판정승으로 끝난 듯이 보인다.

논란의 발단은 정통부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만으로는 개인정보나 청소년들을 보호하는데 미흡하다고 보고 이 법에 인터넷에 올리는 내용에 등급을 매기도록 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조항을 삽입키로 하면서였다.

이에 네티즌들은 국가권력이 사이버세계까지 법으로 지배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정통부홈페이지 게시판에 하루에도 수배건씩의 항의글을 올리는 등 온라인시위를 거세게 벌였다.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고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인터넷검열을 정당화하는 인터넷내용 등급제는 당연히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인터넷검열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하기보다는 네티즌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난 26일에는 이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해 10시간이상이나 마비되는 일까지 벌어지자 사태는 더욱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날은 을지훈련의 마지막날로 정통부가 「사이버테러방지 모의훈련」까지 실시했는데도 해커들의 홈페이지공격에 그대로 당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국가기관이 이처럼 해킹에 속수무책이라면 보안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통부는 28일 낮 12시를 기해 2차 온라인시위를 벌이겠다고 한 진보네트워크 측의 말대로 홈페이지가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자 부랴부랴 인터넷내용 등급제를 수정·보완하겠다고 이날 발표했다. 네티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터넷 내용등급을 청소년유해정보에 한해 의무적으로 표시토록 하고 나머지 정보에 대해서는 정보제공자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개별 서비스업자가 표시한 청소년 유해정보 등급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과 정보제공자에게 불법정보처리 담당자를 지정토록 한 조항을 삭제키로 했다. 그러나 인터넷내용 등급제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어서 논란의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는 셈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정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내용 등급제를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개정에 불만을 품은 네티즌들의 의도적인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정통부 홈페이지가 접속과부하로 다운된 것일 뿐 자신들의 온라인시위가 서버에 허락 없이 침투하는 해킹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해커들이 여러 곳에서 특정 사이트로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전송함으로써 해당 홈페이지 서비스기능이 마비되는 분산서비스거부공격(DDos: Distribute Denial of Service)을 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방식은 지난 2월 초 미국의 야후, 아마존닷컴, e베이, CNN, ZD넷 등의 서비스를 마비시킨 것과 수법으로 「가상연좌시위」로 불리기도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과연 어떻게 손질될지 지켜봐야겠지만 「인터넷내용 등급 자율표시제」가 어떤 것이기에 네티즌들이 그토록 강력하게 반발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인터넷내용 등급제란 정보제공자가 직접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정보내용에 등급을 표시하고, 인터넷이용자는 원하는 등급의 정보만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게 정통부의 설명이다. 따라서 인터넷내용에 대한 통제와 책임이 규제기관으로부터 정보이용자로 전환됨을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검열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터넷내용 등급제를 실시하려는 정부로서는 인터넷이 가상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이미 우리의 생활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이상 법이나 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법이나 제도만으로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불법정보유통 등에 따른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네티즌들과 시민단체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정부가 법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정보화사회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이 같은 발상은 군사정권, 독재정권 때나 가능하다며, 새로 개정되는 법에 대해 네티즌들의 입과 귀를 막는「인터넷국가보안법」「온라인상의 유신헌법」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정보의 독점, 표현자유의 제약, 통제와 감시, 권력집중 등은 지난 세기에 우리들이 겪었던 경찰국가의 모습이다. 그러나 21세기는 사정이 달라졌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정보화사회에서는 타율적 통제란 거의 불가능하다. 인터넷에 의해 언로가 사통팔달로 열려있는 탓에 통제가 강화되면 될수록 반발은 몇 십배, 몇 백배로 증폭되기 마련이다.

인터넷사용이 본격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개인정보 보호문제, 청소년보호문제, 윤리문제 등 갖가지 사회문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좋다 하더라도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곤란하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는 네티즌윤리강령을 제정하는 등 인터넷시대를 맞아 불거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것을 법이나 제도로 다스리겠다는 사고방식은 인터넷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갖가지 부작용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당국도 문제가 된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겠다고 하니 퍽 다행한 일이다. 다만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국가통신의 충추신경 역할을 맡고 있는 정통부의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했다는 사실은 씁쓸한 기분과 함께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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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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