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1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05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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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수위에 이른 사이버 훌리건들의 난동

축구경기가 끝난 뒤 일단의 성난 관중들이 길거리에 뛰쳐나와 상대팀 응원단을 집단폭행하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관들에게도 돌팔매질을 하는 모습을 TV에서 가끔 보게 된다.

어떤 경우는 아예 경기장안에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면서 난장판을 만들기도 한다. 급기야는 진압경찰이 동원되고 미친 듯이 난동을 부리던 몇몇 관중은 경찰관에 의해 질질 끌려 관중석 밖으로 내몰린다. 이 때문에 경기는 한동안 중단되고….

이렇게 운동장 안팎에서 집단적으로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훌리건」이라고 부른다. 훌리건이라 하면 우리는 유럽관중을 떠올리게 된다. 그 중에서도 영국훌리건들은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나있을 만큼 극렬하다. 그래서 유럽 각국은 나라대항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리스트에 올라있는 훌리건들의 경기장 입장은 물론 외국인의 경우 입국자체를 막고 있다.

그런데 사이버공간에서도 현실세계에서처럼 이 같은 훌리건식 난동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 걱정이다. 수백명씩 떼를 지어 특정사이트를 마비시키고,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매도함으로써「사이버세상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현실세계에서는 경찰관이 즉각 출동해 훌리건들을 진압할 수 있지만 가상공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데 고민이 있다.

한 일간지가 최근 사이버 훌리건들의 사이버난동이 매우 심각하다는 내용의 기획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보도된 일부 내용을 훑어보자.

연세대는 지난 6월말 홈페이지 게시판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훌리건들이 "모 대학보다 성적이 낮은 학교"라는 등의 비방글을 한꺼번에 수백건이나 올리는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 또 동국대는 지난 몇 달간 학교와 특정교수들에 대해 훌리건들이 무차별 공격을 하는 것을 참다못해 오는 20일부터 교내 모든 컴퓨터에 신분증을 꽂아야 게시판접속이 가능하도록 했다.

의사들의 집단폐업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의사와 약사간의 분쟁과 관련해서도 의사와 약사들이 인터넷게시판이나 PC통신을 통해 집단적으로 서로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현실공간으로 옮겨놓으면「집단 논쟁」이라기 보다는「집단 패싸움」이라고 해야 옳을 정도이다.

얼마전 경찰관들이 경찰비판기사를 쓴 특정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비난의 글을 집단적으로 올린 것도 같은 유형에 속한다. 올 초에는 중국훌리건들이 난징(南京)대학살사건과 관련해 일본의 과기청과 총무청 등의 홈페이지에 일본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필자도 이와 비슷한 사이버행패를 당해본 적이 있다. 지난번 4·13총선 때 어느 후보의 홈페이지를 관리할 때였다. 16대 총선은 15대 총선과는 달리 선거사상 처음으로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필자도 16대 총선을「사이버선거」라고 규정짓고 선거 2개월전에 입후보자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에 들어갔었다.

어느 홈페이지든 다 마찬가지지만 독자게시판이나 투고란 같은 것을 두고 누구든지 자신의 의견을 개진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관리하던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들이 처음에는 비교적 순수한 내용이었으나 선거전이 중반에 접어들자 악의적인 글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막바지로 치닫게 되면서 「저쪽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이쪽 후보」를 매도하거나 음해하는 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입에 담지 못할 내용의「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정신질환자가 발악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 그런 글을 올리면 올릴수록 자신들이 지원하는 후보자에게는 그만큼 감표요인이 될텐데도 마치 경기장의 훌리건처럼 행패를 부렸다.

물론 필자는 그들이 올린 글이 아무리 사실과 다르고 참기 힘든 욕설투성이라 하더라도 단 한건을 지우지 않는 아량(?)을 보였다. "비록 비난 ·비방·매도성 글이라도 그 자체가 네티즌의 고귀한 의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여러분의 글을 삭제하지 않겠다"고 설명하고는 "더 이상 입후보자에 대한 비난을 삼가달라"고 여러차례 당부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하소연은 허공의 메아리가 될 뿐이었다.

현실공간에서 주먹을 휘두르거나 남을 괴롭히는 사람을 「깡패」라고 한다. 깡패는 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법당국에서 끊임없이 단속하고, 범죄행위를 확인했을 때는 장본인을 붙잡아서 형사처벌한다. 경기장에서의 훌리건도 깡패와 같은 범주로 인정하고 정도가 심하면 연행해서 관련법에 따라 조치한다.

사이버공간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의식 있는 네티즌들은 사이버난동이나 행패에 대해 적극으로 법적 대응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일반인에게 다가온 것이 이제 겨우 6년 밖에 안되고 그 부작용이 수면 위에 떠오른 것도 불과 1∼2년 전부터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이버훌리건의 난동에 관한 기사 보도되자 경찰당국은 집중단속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조직적인 게시판 공격과 근거 없는 비방, 특정인을 괴롭히는 스토킹 등에 대해 형법상 업무방해(제 314조), 명예훼손(제 307조), 모욕죄(제 311조) 등을 적용해 형사처벌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기존법률로는 대책이 없다고 하더니 관련조항을 잘 활용하면 처벌이 가능하다고 하니 다행이다.

이 신문은 또 정보통신업체와 연계해 인터넷 자유게시판을 회원제·실명제로 운영하도록 권유하는 한편 음해성 게시물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사이트운영자에 대해서도 형사처벌과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병행토록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경찰의 방침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인터넷게시판에 폭력형 글이 여과 없이 실리는 것은 익명성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거리낌없이 남을 비방하거나 욕설을 퍼붓기가 쉬워진다. 외국에서는 익명게시판을 운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각 사이트가 회원확보와 방문건수 늘리기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아무나 방문해서 무슨 글을 올려도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이버훌리건들의 난동을 막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실명을 쓰도록 하는 일이 우선 시급하다. 그래도 난동을 부리면 관련법에 따라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위반자는 처벌해야 한다. 물론 제도나 법이 사이버난동을 근절하는 완벽한 대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정한 룰이 있어야 그 룰을 지키려는 인식과 노력이 생기게 마련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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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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