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1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03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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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화 문화인] 채희승 '미로비전' 대표


  얼마전까지도 '영화광'은 불효이자 문제학생이었다.

  학교서는 학생주임이 불러서 야단치는 단골손님이고 집에서도 공부는 뒷전인채 영화값이나 빼낼 궁리에 바빴다.

  영화에 미치다 못해 영화판에 뛰어 들어 돈과 이름을 얻는 수도 있으나 가물에 콩나기고 부모의 속이 탈대로 타버린 뒤다.

  이제 영화광은 학교서 모범생일 수 있고 일찌기 돈과 이름을 얻을 수도 있다.

  영화판매회사인 '미로비전'대표 채희승(蔡熙承.26)이 그렇다.

  수출과는 담을 쌓다시피한 한국영화를 1년여 사이에 세계시장의 유력한 상품으로 끌어 올린 주역이니 효자를 넘어 충신의 반열을 넘보게 됐다.

  사업의 성패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가 영화광이었기에 우수한 학생시절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

  "세살때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극장을 드나들면서 엉뚱하게 한문을 깨우쳤어요.

그래서 우리 또래로는 드물게 한문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어도 영화를 통해 저절로 알게 됐구요."

  애기적에 영화가 재미있다보니 그 시절의 한문이 섞인 신문광고도 재미있었다.

그가 처음 깨우친 한문은 하늘 천(天) 따 지(地)가 아니라 명보극장의 명(明)이나 국제극장의 국(國) 등 어려운 것들이었다.

  한문실력보다 더 고마운 것은 영어실력으로 그가 세계를 내집처럼 휘젖고 다닐 수 있는 밑천이다.

  "사업가인 아버지가 해외에 나가시면 수입불가판정을 받은 영화 비디오를 사오로록 졸랐어요.

자막이 없어도 여러번 보자 스토리도 영어도 저절로 들어 오는 거예요.

그래서 AFKN영화도 봤지요.

고교시절에 이미 외국서 살다 왔냐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극성스런 조기교육을 받지 않고도 한문을 깨우치고 국민학교에 들어 갔고 영어를 알고 중학생이 되는 '준비된 학생'의 길을 걸은 것이다.

  학생입장 가와 불가를 가리지 않고 영화관을 기웃거리면서도 우등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영화 이외의 다른 인생은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으나 무슨 일을 할지는 막연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시절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일하면서 한국영화의 해외보급에 뛰어들기로 작정했지요."

  채희승이 영화기자로 해외에 나가서 본 한국영화는 모두 '등급외'영화였다.

홍콩 등 외국의 판매상이 다른 영화에 끼워 파는 '부록 영화'기도 했다.

  가장 분한 것은 한국영화가 다른 아시아영화보다 수준이 높으면서도 서자취급을 받는 점이었다.

  지구촌시대의 영화는 시나리오작가에서 연기자까지의 제작진이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장'해서 마케팅함으로써 완제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대학졸업을 한해 앞둔 98년 8월 '미로비전'을 차림으로써 영화광에서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미로비전'은 전형적인 벤처기업이었다.

우선 창립과정이 벤처의 속성인 학력불문과 연령불문에 충실했다.

  벤처사업에 나서는 최적기는 언제인가 하는 말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기업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뒤, 졸업한 직후, 대학졸업전....

  채희승은 그 정답인 세번째 싯점을 택한 셈이다.

  연세대시절의 영어신문 동료 4명과 함께 개업했는데 그 가운데는 선배도 있었다.

  그 뒤 선배들은 나갔으나 이제 20명으로 늘어난 사원 가운데는 완전히 한 세대 위의 상무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원이 연상이다.

  영화시장의 속성도 모른채 사업을 벌인 것도 벤처(모험)적이다.

  물론 그는 스스로도 장사꾼 소질을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영화도 그 예술적인 측면 못지않게 흥행면에 관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나면 그것이 얼마나 수지맞았는지 궁금했다.

처음엔 극장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세어보다가 나중에는 극장의 객석수를 세었다.

서울 개봉관들의 의자수를 꿰게 됐다.

  때로는 극장에 전화를 걸어 손님이 얼마나 들어 왔는지도 물었다.

극장사람들에게 그가 귀여운 아이로 보였을지 이상하거나 무서운 아이로 보였을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한국에서 영화수출의 노하우를 배울 수는 없었어요.

배우고 나서 뛰기보다는 뛰면서 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수출에 관한한 이론부터 스스로 만들기로 작정했지요."

  반년 가까운 준비기간을 지나 99년 2월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에서 독자적인 부스를 차린 것도 모험이었다.

  영화에 관한한 한국보다 한수위로 치는 일본이나 홍콩 등 어느 아시아 영화사도 그곳서 독자적인 부스를 차린 적이 없었다.

  무턱대고 뛰어 들었으나 '미로비전'은 '소년기'(감독 임필성)와 '동창회'(감독 최진호) 등의 세일즈에 성공했다.

보다 큰 성과는 프랑스 최대의 영화배급사 'MK2'와 협력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 때나 5월의 칸느영화제에서 부스를 차렸을 때나 거들떠 보는 외국영화사는 없었고 그걸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그것이 오히려 힘이 됐지요.

우선 도시를 도배하듯 포스터를 붙이고 봤습니다."

  당국이 포스터를 떼내면 다시 붙여서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이름 없는 회사의 이름 없는 사장을 만나려는 영화사 대표는 없었다.

  채희승은 영화사의 사무실위치부터 알아내 근처의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어 사장을 찾았다.

예상대로 사장이 없다는 대답이고 그는 사무실위치를 묻고 나서 마침 근처에 있으니 자료라도 두고 가겠다면서 사무실에 진입했다.  그래서 실무자라도 만날 수 있었고 더러는 없다는 사장과 마주쳐 상담할 기회도 잡았다.

  "그래도 비굴하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화가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만 설득시키면 그만입니다.

그 통로를 열기가 어려울 뿐이지요."

  1년여 동안 '미로비전'의 전사원은 토요일도 일요일도 모른채 뛰었다.

국제감각에 빠른 회사여서 사규에는 주5일 근무제로 돼 있으나 어느 사이에 그것은 '주5일 야근제'로 돼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세계 영화시장의 이 골목 저 골목이 보이고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처음엔 외국 상인이 우리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Interesting)고 하는 말에도 감격했지요.

그것이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것을 알기까지도 꽤 걸렸어요."

  요즘은 그 다음 단계인 "우리가 살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 처럼 감격하지 않는다.

마지막 단계인 '얼마냐'는 말이 나와야 움직이는 찌를 지켜보는 낚시꾼처럼 긴장한다.

  나라마다의 상담관행은 물론 같은 나라도 영화사마다, 같은 영화사도 담당자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사나 담당자의 취향에 맞지도 않는 홍보자료를 보내는 것은 쓰레기를 돈들여 보내주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그처럼 한해를 보내고 나자 한국영화는 국제시장에서 '상품'이 됐다.

외국의 배급사가 헐값에 가져가면서도 선심이라도 쓰듯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의 흥행실적에 따라 받을 것을 받게 됐다.

가격이 저절로 올라 갔으나 인기도 따라서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우리 수출실적은 80만 달러였어요.

전사원이 세일즈맨으로 뛴 결과로는 적지만 그것은 4.4분기 실적입니다.

더 반가운 것은 이제 외국에서 거꾸로 상담을 걸어 오고 국내의 영화계가 '미로비전'의 존재와 가치를 알고 있는 점입니다."

  채희승이 지난해 한국영화의 수출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그는 7월말 '소풍' '집행' 등 단편영화 7편을 묶어 코아아트홀과 동숭시네마텍에서 '한국단편영화의 힘'이라는 기획으로 상영했다.

  그 때까지 영화제나 특별전에서만 상영되던 단편영화가 일반극장에 진출한 것은 단편영화계를 넘어 한국영화사의 한 전기로 기록될 일이다.

  채희승의 욕심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영화관을 만들고 싶고 그것도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복합적인 영상공간이다.

  그것은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 자신이 대학시절 LG 21세기 선발단으로 미국과 유럽의 복합영상공간을 탐방하고 논문을 쓸 때부터의 구상이다.

  "거기엔 돈이라는 벽이 가로 막고 있어 지금 서두르는 사업은 전세계의 영화정보를 으는 인터넷사업입니다.

사업을 하다보니 상당수준의 정보를 쌓아 두었는데 이를 독자적인 사업으로 발전시키고 싶고 전망도 있다고 봅니다."

  그처럼 부지런하고 욕심많은 채희승이 소림사영화의 주방장처럼 장난스런 표정에다 토실토실 살찐 것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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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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