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2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97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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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중학생의 죽음을 가져온 사이버 테러

인터넷에서 자신을 비방한 글을 본 중학생이 고민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오늘(24일) 아침 조간신문 사회면 기사가 매우 충격적이다. 사이버테러문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아는 일이지만 한 소년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라는데 대해서는 할 말을 잃을 정도이다.

보도내용은 대전 S중학교 2한년인 유모군(15)이 대전시 교육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사이버토론방에 자신이 "귀고리를 하고 머리를 염색하고 다닌다"는 글이 올라있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다가 끝내 자살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 홈페이지에서는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학생들의 용모,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학생과 교사들이 토론이 벌어졌는데 적지 않은 내용이 욕설이나 험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에는 「프로야구선수협의회」결성을 둘러싸고 반대입장을 취했던 이승엽선수에 대해 엄청난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양심을 판 대가는 어떤 것으로도 용서 안 된다" "국민선수로 부를 수 없으니 은퇴하라"며 무자비할 정도로 사이버테러를 가했던 일이 있다. 별 생각 없이 팀동료의 의견을 따랐다가 뭇매(?)를 맞았던 이승엽선수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휴대폰도 꺼놓은 채 잠적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었다.

또 앵커출신인 어느 이혼녀는 자신이 기르고 있는 아이가 전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아닐 것이라는 소문이 인터넷상에서 퍼지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녀는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감식을 통해 시중의 소문이 거짓임이 밝혀져 누명(?)을 벗긴 했지만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당한 명예훼손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이버상의 언어폭력은 상대방의 입장과 관계없이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인테넷공간에 띄움으로써 순식간에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그 내용이 전달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피해당사자에게는 전혀 해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번 비난을 받거나 매도를 당하게 되면 명예를 회복하기 힘들어진다. 사이버세계에서도 현실공간에서처럼 「군중심리」가 작용해 남들이 믿으면 나도 믿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인구는 이미 1천5백만을 넘어섰고, 도메인 보유자수도 50만명 가량이나 될 정도로 「선진국 수준」이다. 하지만 네티즌이 지켜야 할 에티켓, 즉 네티켓은 지극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인의 네티켓이 엉망이라는 사실은 외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졌을 만큼 우리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예사로 그려가고 있다.
 
이미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한국인의 사이버세계는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병에 걸려있다. 사이버토론장에서 어떤 주제를 놓고 찬반양론을 벌이면, 「말의 쓰레기장」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토론은 온데 간데 없고 비난과 욕설로 범벅이 되고 있다. 저쪽에서 이쪽의 신원이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특정인이나 단체에 대해 온갖 비난과 폭언을 퍼붓거나 명예를 짓밟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우리들이 인터넷과 가까이 하게 된 것은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같이 저질인터넷문화에 물들어 있다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현상을 방치하거나 외면했다가는 우리사회는 그야말로 공해물질에 오염돼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와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접하는 사이버세계라는 것이 아무리 가상공간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세계와 관계없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의 일부분(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인터넷상의 여러 가지 적절치 못한 「사회적 행태」는 바로 현실세계의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들은 산업사회에서 이미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미풍양속이 오염될 대로 오염된 상태에서 아무런 대책이나 처방 없이 정보화사회로 이행하다보니 이 같은 현상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사이버세계에서도 우리들이 예사로 쓰는 언어, 그것도 폭력적 언어가 그대로 함께 통용되는 혼돈사태를 빚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이런 현상을 「인터넷 아노미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올바른 행동의 룰이 없는 사회적 상황은 그것이 적절한 시기에 극복되지 못할 때 결국 우리는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된다"고 우려한다. 그는 "산업사회에서의 윤리부재와 법질서 실종이 정보화사회로 이행하면서 연장되고 있거나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가 인터넷선진국이라고 믿고 있다. 인터넷에 관한 한 이용자수라든가, 도메인보유자수 등에서 미국이나 영국, 일본에 못지 않을 정도로 수적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인터넷인구가 많다고 해서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천만에 말씀"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하겠다.

선진국이 되려면 적어도 선진국수준에 걸맞는 도덕관념이 있어야 하고 법질서가 확립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의 인터넷공간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현상은 오히려 우리나라가 인터넷후진국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호소해온 사이버공간에서의 언어폭력사례는 1천3백건 가량이나 된다. 올해는 인터넷이용자수가 지난해 보다 2배이상 늘어났음을 감안할 때 그 수가 3천건을 넘을 것으로 짐작된다.

너무나 심각한 수준에 이른 사이버언어폭력을 더 이상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사이버범죄에 대해서는 처벌규정을 강화하고 범법자들에게는 엄격한 심판을 해야 한다. 사회단체들도 올바른 인터넷문화의 정착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것들에 앞서 요구되는 점은 네티즌 스스로가 문제의 심각성을 똑바로 인식하는 일이다. 이와 함께 기성세대와 청소년들이 힘을 합해 우리들의 생활공간이나 놀이마당이 되다시피 한 사이버세계를 올바른 문화적 공간으로 가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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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
200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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