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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24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96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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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칼럼,나도 쓴다 *방명록 *의견함
사형제도

우리나라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가장 먼저 주창한 사람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다.즉위 5년째인 1460년 “어찌 백대(百代)의 인주(人主)가 있으며,인주가 유충(幼沖)할 때 항상 이윤(伊尹),주공(周公)이 있으랴.그러므로 사형을 대전(大典)에서 뽑아버리는 것이 어떠냐?”며 사형폐지안을 대신들에게 내렸다.

언제나 도덕 높은 임금이 어디 쉽게 있겠느냐,또 임금의 판단이 미숙할 때 이를 보좌해 줄 이윤,주공 같은 현명한 신하가 항시 있을 수 있느냐,때문에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람이 있을 지 모르니 아예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이 어떠냐고 한 것이다.

좋은 예가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이다.몰락한 왕가 후손으로 가난에 찌들어 살던 명복(고종의 어릴 적 이름)이 동네 애들과 연날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국왕으로 발탁돼 취임한 뒤 첫 지시가 누구를 죽이라는 것이었다.12세밖에 안 된 임금이 사형하라고 지목한 사람은 그의 동네 군밤장수였다.사먹을 돈이 없어 언젠가 좀 달라고 해도 주지 않자 벼르고 있다가 임금이 되자마자 그의 목을 베라고 한 것이다.

지엄한 상감의 어명이므로 그대로 시행하면 그만이던 시절이었다.그러나 대신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래서는 안되니 분부를 거두어 달라고 거듭 빌었다.임금이면 못 하는 게 없다는데 무슨 소리냐며 강경하던 고종도 신하들이 하도 말리니 포기는 했지만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세조의 걱정은 이럴 때 신하들이 말리지 못하고 그대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었다.성삼문,박팽년 등 많은 신하를 사형하고 조카 단종의 목숨을 빼앗는 등 잔혹한 피잔치를 열며 정권을 잡은 그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언행이다.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사형제도의 오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그런 참극재발을 제도상으로 막자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그러나 신하들이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세조도 뜻을 굽히고 말았다.

민주당 정대철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무기징역으로 대체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지난해 말에도 유사한 움직임이 있었고 개신교,불교,천주교 등 종교단체에서도 지금까지 꾸준히 전개해 오는 운동이다.

세조가 지적한 대로 사형을 결정하고 집행할 사람들이 오류를 범할 경우 회복이 불가능하고,권력자가 정치 보복 등으로 남용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그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은 신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이다.세계적으로도 사형제도가 폐지되는 추세다.우리도 이를 적극 개선해 신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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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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