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89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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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과 장물아비의 도(道)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도둑놈과 상인의 신 헤르메스(Hermes)는 제우스와 마이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그는 올림포스의 12신 가운데 가장 젊고 날렵한 몸매로 세련된 모습을 과시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양과 달리 하는 일은 고약했다.물건을 원가도 안 되는 헐값에 사다가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통해 비싸게 팔아치웠다.이들이 곧 상인으로 영어의 merchant가 여기에서 유래했다.로마에서는 헤르메스를 머큐리(Mercury)라고 불렀고 그가 돌보는 사람들을 merchant라고 한 것이다.

그들은 이도 모자라 나중에는 아예 남의 고장의 사람과 물건을 약탈해다가 다른 고장에서 처분했다.상인과 도둑의 구별이 어려워져 버렸다.그렇게 도둑놈과 상인의 수호신이 된 것이다.

유대교 어느 신비주의자는 일반인들도 도둑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했다.즉 밤늦도록 일하며,목표를 하룻밤에 달성하지 못하면 또다시 도전하는 것,함께 일하는 동료의 모든 행동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적은 돈에도 목숨을 거는 것,반면 값진 물건에 집착하지 않고 몇 푼에도 가볍게 처분하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분명히 아는 것 등이다.

장자(莊子)도 도둑의 5가지 도(道)를 거론했다.귀중품이 어디 있는가를 아는 성(聖),훔치는데 앞장서는 용(勇),남보다 나중에 나오는 의(義),훔쳐야 할 때를 아는 지(知),장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인(仁)이 바로 그것이다.헤르메스가 자신의 도둑들에게 이런 예절을 시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둑질의 도를 거론하는 것은 이외에도 많다.

그러나 훔친 물건 처분에 관해서는 공평한 분배 외에는 별로 언급된 바가 없다.장물을 팔아치울 때는 자신들과 다른 일반인들이기 때문일까.눈치 코치가 뛰어난 자신들과 달리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것도 속여서 판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행복한 시절이 온 것 같다.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장물이 숱하게 올라온다는 것이다.중고시장의 으슥한 곳에서 수사기관의 눈을 피해 은밀히 거래하던 괴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사이버상에서 거래되므로 물건이 오가는 현장이 있을 턱이 없다.따라서 수사관들이 이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헤르메스도 탄복할 방법이 라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이트 운영자들만은 경매장 운영의 도(道)를 최대로 지켜 일반 소비자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장물아비들한테 그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절차가 귀찮고 어렵다고 해서 방치하면 인터넷 경매 전체가 불신을 당해 피해가 결국 자신들에게도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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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mib.co.kr
국민일보 200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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