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2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85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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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6.25는

50년전 배운 것 없이 오로지 일밖에 모르던 대다수 어머니들에게 6·25는 각양각색의 얼굴을 하고 쳐들어왔지만 그녀들은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폭음,이어 그대로 폭삭 주저앉은 집들과 종잇장처럼 날아가 전선에 걸리거나 웅덩이에 빠져 죽던 사람들,비명 같은 쇳소리를 지르며 머리 위를 나는 총알,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몰려 들어간 대형 방공호 속의 아수라장,논밭 또는 들과 산 으슥한 곳에 누운 시체들,산 채로 맞아 죽은 사람의 참상 등이 한꺼번에 밀어닥쳤지만 그녀들은 악착같이 헤치고 나갔다.

정글 속의 야생동물처럼 새끼들의 안전과 먹을 것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그녀들에게 그런 것들은 발걸음을 한 번 주춤하게 하는 놀라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생사의 갈림을 하루에도 몇 번씩 접하는 극한 상황이 닥치자 그녀들은 그렇게 독하고 강해졌다.

그녀들은 모성 발휘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해코지할 조짐에 대해서는 극도의 경계심과 두려움을 나타냈다.좌익이 뭐고 우익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고 알 능력도 되지 않았다.그래서 산허리에 교통호와 참호를 만드느라 작업하는 인민군들에게 달려가 겁도 없이 소리지르며 항의도 했다.새끼들하고 뭘 먹고 살라고 남의 밭을 이렇게 망치느냐고 덤비니 인민군들이 어이없어 하더라고 나중에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렇게 무섭도록 질기고 강한 모성이 말만 들어도 움츠러들며 벌벌 떠는 것은 오히려 전쟁이 좀 수그러진 다음에 나타났다.캄캄한 한밤중 쿵쾅거리며 골목을 뒤덮던 발자국 소리와 개짖는 소리들, 손전등의 강렬한 불빛이었다.그들은 어느 집이건 쳐들어와 노무기피 또는 병역기피자를 찾는다며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해당자가 없는 집도 고양이 앞의 쥐처럼 숨을 죽였다.폭격,시체,총알,화염,인민군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던 모성이 이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

노무자건 사병이건 나가면 곧 죽는다는 인식이 머리에 깊이 박혀 있던 때라 어머니들은 자식들 보호에 필사적이었다.그녀들에게 6·25는 곧 언제 살아돌아올지 모르는 자식의 입대였다.그래서 모여 앉으면 이제 갓 대여섯 살이 되는 조무래기들을 놓고 그렇게 말들을 했다.“설마 느이들까지야 군대에 가겠느냐.이제 곧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다” 근거나 논리 같은 것은 애당초 있을 턱이 없는 자기위안이자 소박한 희망들이었다.

그녀들이 말하는 평화로운 세상은 단지 자식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그러나 휴전되고도 한참 세월이 흘러 그 코흘리개들이 입대한 것은 물론 손자들까지 군대에 가게 되자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전쟁은 끝났다는데 왜 자식들은 군대에 가는가.그 세대는 이제 거의 다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거기에서라도 마치 통일이 눈앞에 닥친 듯한 요즘의 분위기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그녀들의 6·25,즉 분단은 자식들이 군대에 가는 한 종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식하는 평화는 무식하고 소박하지만 어느 석학의 논리에 못지 않게 정곡을 찌르고 있다.이보다 더 간명하고 명백한 평화가 어디 있는가.그런 사람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한 어떤 평화도 완벽한 것이 아니고, 6.25도 그대로 밀봉될 수 없다.

그 어머니들의 다음 세대로 나이 70을 눈앞에 둔 한 여인이 최근 어느 자리에서 오열하며 내뱉은 한탄에서도 6·25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6·25직후 남편을 여의었고 길거리로 나앉다시피 했다.슬하의 남매는 견디다 못해 각각 떠나가 버렸다.지금은 물론 당시도 이야기축에 들지 않았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흔한 일이었다.

40대 중반의 아들 딸들이 고생 끝에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자 이제야 어머니를 찾았다.그러나 그녀는 대견함보다는 지나간 세월이 원통해 통곡했다.집에서 키우며 제대로 학교 보냈으면 남부럽지않게 성공했을 거라며 가슴을 쳤다.가정과 인생을 파괴한 6·25가 아직도 곁에서 사라지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 외에도 전국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이 그럴진대 실향민,납북자 가족,50년 전 전쟁 부상으로 지금까지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이처럼 6·25가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 곳곳에 있다.

냉전시대 사고방식에 발목이 잡혀 55년 만의 남북 화해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다만 너무 들떠 아직도 전쟁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이는 북과의 화해 이전에 먼저 서둘러야 할 일이다.신중하지 못한 언사들이 현란할수록 그들의 그늘은 더욱 짙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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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mib.co.kr
국민일보 200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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