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2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83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3~4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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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올가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카지노에서 한국의 어느 탤런트 어머니가 단돈 6달러로 100억원이 넘는 큰 돈을 땄다는 돈벼락 소식은 월요일(19일) 아침 출근길의 시민들 표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지하철에서 그 기사만 골백번도 더 보는 사람에서부터 그 얘기로 내릴 정류장을 놓친 사람까지 여러 가지였다.겉으로 드러난 표정이 그럴진대 각자의 마음속까지 헤아릴 수 있다면 그 양상은 가관이었으리라.

한편 그런 기사를 크게 실어 사행심을 부추기는 언론은 제 정신이냐는 독자들의 비난과 불만 또한 적지 않았다.그 기사를 전혀 취급하지 않은 것이 정답인지,하면 어느 정도 크기가 적절한지 누구도 쉽게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비난하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보다는 도박 때문에 인생을 그르친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알면 좀더 신중한 태도로 보도해야 하지 않느냐는 충고 성격이 짙다 하겠다.그렇다.최근에만 해도 어느 대사가 도박에 빠져 본국으로 소환되고,미국 카지노에서 가진 돈을 잃고 그것도 모자라 빚을 내서 하다가 몽땅 털린 뒤 도망 온 한국인들의 명단이 나도는 등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그들의 불만도 일리가 있다.

LA와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한 미국 각 지역에서 카지노 등 도박으로 비참하게 망가진 교민들이 적지 않다.재산과 가족을 잃고 자살한 사람이 예사고,자기가 다니던 카지노에서 잡역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딱한 이도 드물지 않다.한국인의 ‘돈벼락’ 소식이 그같은 도박중독자 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됐을까 생각하면 우려되는 바 적지 않다고 한 독자는 걱정했다.

맞는 말이다.손이 잘리면 발로라도 한다는 도박중독자들은 이런 것을 자기 좋을대로 해석,왜 나라고 한 번 크게 따지 말란 법이 있느냐며 다시 덤벼들게 마련이다.대박이 터져 돈방석에 앉게 된 당사자들의 행운은 축하해 마땅하지만 이것이 가져올 부정적 파급효과를 차단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건 언론만이 할 일이 아니다.독자들도 자기 여과 과정을 정밀하게 거쳐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것이다.진짜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복권당첨이나 카지노 대박을 노리는 것은 자기 목을 올가미에 걸어놓은 것만큼 위험하다.따라서 이런 소식은 해외토픽의 별난 뉴스를 보고 웃어 넘기듯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도박은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든 정신질환이다.집착할수록 자기 영혼을 갉아먹는 것이다.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도박해서는 안 될 때가 일생에 두 번 있다.도박할 여유가 없을 때와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가 곧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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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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