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24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74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2~3회 발행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칼럼,나도 쓴다 *방명록 *의견함

맥주 땅콩은 승차거부해야

단체손님을 태운 전세버스 기사들이 꺼리는 것은 승객들이 술과 노래,춤으로 광란의 도가니를 이루는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반갑지 않은 것이 맥주와 땅콩이다.그것이 끼치는 피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큰 소리로 노래하고 쿵쿵 뛰지 않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그렇지만 그걸 못하게 하면 영업이 되지 않으니 도리 없이 견디지만 맥주와 땅콩은 좀 참아주면 고맙겠어요.그 뒷감당이 너무 힘들거든요” 대부분 전세버스 기사의 절절한 호소다.

보병은 3보 이상 구보,수송병은 3보 이상 승차라더니 한국인 단체 나들이는 3보 이상 음주가무다.버스를 전세내 단체관광에 나서거나 결혼식 등 여러 가지 모임에 오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가 출발하자마자 술잔이 돌고 노래와 춤이 난무한다.

버스 기사들은 위험한 줄 알지만 이를 말릴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만약 그걸 못하도록 했다가는 손님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때문에 아예 포기하는 것이다.대신 먹고 마실 거리로 맥주와 땅콩만은 좀 자제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엄밀히 말하면 캔맥주를 비롯한 캔음료와 껍질이 나오는 안주라 하겠다.

그것이 어느 정도 심각한 문제인지 궁금한 사람은 단체로 나들이갔을 때 한 번 남아서 버스 청소를 직접 해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된다.그러면 알 것이다.기사들이 왜 맥주와 땅콩을 그렇게 기피하는지.

승객들이 내린 다음 45인승 버스를 청소하려면 기사를 포함,두세명이 해도 보통 1시간이 넘는다.제대로 하려면 2시간도 모자란다.유난히 많이 마시고 떠들지 않은 평균 승객들의 경우가 그러니 좀 별난 경우는 예측불가다.

분리수거하는데 완전히 마신 캔맥주,캔음료는 드물다.꼭 얼마큼씩 남아 있어 줄줄 흐르므로 버스 바닥은 물론 쓰레기봉투도 엉망이다.무슨 심사인지 다 마신 깡통은 또 바닥에 내동댕이치거나 틈새에 끼워두는 통에 이것도 치우려면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다.찢어지게 가난한 살림도 이사가려면 구석구석에서 뭐가 나오듯이 버스청소를 해보면 없을 것 같은 데서도 일회용 종이컵,담배꽁초,휴지 등 웬 쓰레기가 그렇게 나오는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거기에다 땅콩 껍질까지 여기저기 물기에 젖어 붙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청소해도 깨끗해지지 않는다.1주일이 지나도 어디선가 나온다는 것이다.승객들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저녁 먹고 놀다가 잠이 들면 그만이지만 기사는 그때부터 청소하느라 긴 시간 고생해야 한다.

“흔히 음주가무 때문에 기사들이 피곤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맥주 마시고 화장실 가겠다며 아무데서나 세워달라고 고함지르는 것,이처럼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은 청소입니다.맥주와 땅콩만 없어도 피로도가 훨씬 낮아질 거예요”

그래서 만약 규정을 만들 수 있다면 물기있는 음식,껍질 나오는 안주는 차에 싣지 못하게 하고 소주와 다 먹어치울 수 있는 안주만 허용하고 싶다는 것이다.술에 취해 광란의 도가니 만드는 것은 불가피하니 차라리 적은 양으로 빨리 취하고 쓰레기 덜 나오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버스 안의 소란과 긴 시간 청소로 시달리고 나면 잠이라도 제대로 자야 하는데 자기들 나름대로는 호의라며 술 마시자고 밤늦게 찾는 승객들 또한 다음 날 안전운행을 방해하는 위험요소다.특히 미남형 운전기사는 가정을 벗어난 해방감을 즐기는 아주머니들 등쌀에 또다른 고생을 해야 한다.

그래서 분별있는 숙박업소에서는 기사가 자는 방을 비밀에 붙이고 철저히 보호해 준다.이른바 기사방 보안이다.단체승객 집행부의 필수요원 외에는 누구에게도 기사 방의 위치,전화번호 등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충분히 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그럼에도 기사를 불러내 같이 한잔해야 한다며 아우성치는 승객들 때문에 치르는 곤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사가 충분히 자는 것은 자기들한테도 필요하잖아요.피로가 덜 풀린 채 운전하면 그 피해가 어디로 가겠어요” 한 숙박업소 종업원의 하소연이었다.

본격적인 행락철이다.버스에서 음주가무를 삼가거나 내릴 때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한다면 약간의 술과 안주를 왜 마다하겠는가.그러나 그건 현실적으로 과분한 바람이니 맥주와 땅콩만이라도 자제해주길 바라는 것이다.지금까지 무심코 이런 것을 싣고 다녔던 사람들은 이 부탁을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자신들의 안전은 물론 환경오염방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ynhp@kmib.co.kr
국민일보 2000.05.24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여기 꼭 보십시오.
양평의 역사 꺾어 보기 '그해 오늘은'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한 언제든지 해지하실 수 있습니다.

E-mail
구독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