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18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72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2~3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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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화 문화인] '골드북닷컴' 임명철사장


   "첨단산업시대에도 서점은 전근대적이었습니다.한국인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들 하지요.그러나 한국인들은 분명 책을 좋아하고 서점도 수지맞는 장사가 될 수 있습니다."

  대표 임명철(林明哲.41)은 교보 등 대형서점의 사원과 소형서점의 주인으로 일해본 경험이라고 한다.

  그가 신대방동에 1300평 규모의 '골드북 보라매점'과 인터넷서점을 차린 것은 큰 서점에서 일해본 경험에서다.소형서점들을 묶어 프랜차이즈를 차린 것은 서점주인의 경험에서다.

  프랜차이즈는 전국의 작은 서점들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묶어 독자들의 주문에 응하는 것이다. 본사에 주문이 오면 독자와 가장 가까운 서점에 알려 배달하게 하고 독자가 지방서점에 책을 주문하면 본사에서 즉시 책을 보내주는 방식.

  이것을 너무 뻔한 소리라고 하는 것은 서점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공간문제라는 것을 몰라서다. 최근 들어 운동장같은 서점들이 생겨나고는 있어도 출판종수는 더 빨리 늘어나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모든 책을 매장에 내놓을 수 있는 기능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

  인터넷은 여기에 하나의 돌파구를 마련해 주고 있다. 서가에 책이 없어도 인터넷으로 책의 성격을 알아 주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소형서점들은 어지간한 매장면적의 차이보다 인터넷의 활용능력에 따라 성패가 갈릴 판이다. 도매상이나 출판사의 창고를 매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인터넷시대 서점의 매력이다.

  임명철은 어릴 적부터 밥상머리에서 책을 보아 부모보다 동생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책이 반찬으로 얼룩져서다.

  대학졸업후 메가스포츠 상사에서 일하던 1년만이 책과 멀었던 기간이다. 그러나 애인이 교보문고에서 일했기에 담을 쌓은 것은 아니었고 그나마 님찾아 드나들던 끝에 사원으로 주저앉았다.

  "아내 때문에 서점으로 옮긴 것은 아니었어요. 대우도 스포츠용품사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다만 메가스포츠는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저는 그 속에서 한낱 부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반면에 서점은 허술해 할 일이 많아 보였구요."

  그러나 임명철은 총무과로 배치받아 1년 남짓 책이 아니라 서류나 뒤적거렸다.그러다 외서파트에서 사고가 나 결원이 생기자 그는 지원했다. 그것은 만용에 가까운 일이었다. 외서파트는 다들 꺼리는 곳으로 "외서파트에 가느니 사표 낸다"는 말이 있었다. 외서는 주문부터 까다로운데다 납품하려면 대학도서관이나 연구소를 쫓아다녀야 한다. 우선 책내용을 아는 것부터 진땀 났다.

  "다들 외서파트가 싫다고 하자 더 호기심이 생기데요. 메가스포츠 시절 외국바이어들을 상대한 경험이 있어 두려움도 없었구요."

  그는 도서유통의 메커니즘을 한국것부터 배우고 일본과 서구의 것을 배워나간 것이 아니라 선진유통부터 배웠다. 선진유통을 익히고 난 뒤에 본 한국의 그것은 너무 원시적이었다.대형서점이라고는 해도 선진 운용체계는 없어 대형 잡화전이었다.

  임명철은 고작 '주임'이 되기 바쁘게 책의 재고를 종별로 파악할 수 있는 단품관리의 전산화를 추진했으나 좌절됐다.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불가'로 판정한 것이다.

  "마침 91년 영풍문고가 창업했고 같이 일하던 소설가 양문길(梁文吉) 선생 등이 먼저 가서 저를 끌어주었어요. 과장으로 스카우트됐는데 승진보다 제 목소리를 한단계 높일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영풍으로 옮긴 임명철은 숙원인 전산화를 이룩한다. 삼미전산과 함께 일본의 도서유통방식과 미국의 물류방식을 한국의 현실에 적용해 미국의 ISBN(국제표준도서번호) 같은 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가 전산화에 집착한 것은 그것이 서점의 눈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하루 100종 이상의 신간이 들어오는 대형서점에서 그것은 필수적이다.

  큰 서점에서 독자가 찾는 책이 없는 것은 책의 종별동향을 미리 파악해 대처하지 못한 결과다.전산기에서 영수증을 처리해 매출액은 알고 있으나 어느 책이 몇권 남아 있는지를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책의 종별관리가 되자 출판사들이 더 반가워했어요. 그때까지는 책광고를 내도 그 효과를 감으로나 느끼던 것을 수치로 알게 됐으니까요."

  그러나 2년뒤 임명철 영업과장은 영풍을 그만두고 '사장'의 길을 걷는다. 그때는 유능사원으로 이름이 나 있었으나 경영자로서의 자신도 시험하고 싶어서였다. 연고가 전혀 없는 대전으로 간 것도 그런 것이었다.

  마침 빌딩지하에 30평짜리 매장이 비어 있어 빌리려 하자 안내하던 서적도매상보다 빌딩주인이 더 놀랐다. 지하서점이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였다.

  "매장이 오래 버려지다시피해서 인분은 물론 본드껍데기 등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었어요. 그러나 권리금이 없고 집세가 싼 것만 반가웠지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는 바로 독서클럽을 조직하는 등 독자들을 찾아나섰다. 찾았다기보다 만들었다. 여성잡지나 사려고 들렀던 한 주부가 문학서적을 사더니 역사서와 과학서까지 즐기게 된 것이 그런 것이다.

  '지하서점(청솔문고)'은 곧 명물이 돼 1년만에 전국최고의 평당판매율을 기록하게 됐다.

  임명철이 2년째 사장수업을 쌓던 97년 강남역에 신설된 진솔문고는 영업부장을 찾았고 그는 다시 올라왔다. 그에게 청솔문고 주인은 종착역이 아닌 간이역이었다. 물론 진솔문고 영업부장도 간이역이었다. 종착역은 대형서점 경영이었다.

  마침내 인터넷서점을 차리려던 대형 벤처회사가 대표를 맡아달라고 접근해 왔다. 그래서 지난해 진솔을 떠나 대형서점을 여는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릴 때 회사측의 계획이 취소되어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전화위복이었다. 회사가 독서사업을 청산하라며 보낸 마케팅담당자에게 사업 가능성을 설명하자 청산책임자인 손탁희(孫琢熙)가 같이 사업을 하자고 한 것이다. 임명철의 사업을 청산하러 온 그는 자신의 사원직을 청산하고 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공동대표로서 손탁희의 자본과 임명철의 경영이 만난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점 프랜차이즈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저의 경험을 살릴 수도 있지만 서점주인 시절 그런 기능이 너무 아쉬웠기에 그 갈증을 풀고도 싶었어요."

  임명철의 예상대로 프랜차이즈 회원서점을 뽑는다는 광고가 나가자 반응은 뜨거웠다. 전국의 수많은 서점들이 회원을 신청했으나 그는 9개 가맹사로 시작했다. 가 목표로 하는 회원서점은 50개고 이미 신청은 이를 훨씬 웃돌고 있으나 심사를 하고 있다.

"프랜차이즈의 회원서점은 기존의 서점과는 다릅니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독서를 선도할 수 있는 교양과 용모 등 오프라인상의 요건도 필수적이지요." 청솔문고 시절 독서클럽을 이끌던 경험이 묻어나는 말이다.

  이제 서점은 늙은 할아버지가 졸고 있거나 몸뻬 입은 아주머니가 비빔밥을 먹고 있는 공간일 수 없다. 그는 회원서점에서 입을 품위있는 유니폼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런 오프라인의 변화는 본부격인 보라매서점에도 찾아오고 있다. 매장에 20명의 독자들이 책을 펴놓고 읽을 수 있도록 4개의 스탠딩데스크를 설치한 것도 그런 것이다. 어려서 서점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책을 읽었던 쓰라린 경험에서 온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잠재고객이기에 서점이 그들의 '고향'이 되면 그 장래에는 걱정할 거리가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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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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