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1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71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2~3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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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육부에 그 교장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올해는 그런대로 무난히 지나가나 했더니 다시 동티가 났다.교육부의 지나친 염려 때문이다.

서울초등학교 교장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스승의 날 휴교를 결정했다.촌지 등 각종 문제로 스승의 날이 지저분하게 얼룩진 탓에 교사들로서는 이꼴저꼴 안 보고 하루 쉬는 것이 낫고,학부모들도 은근히 부담스러운데 학교가 쉬면 거기서 해방되므로 적극 찬성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가 안된다고 긴급 지시한 것이다.이유는 최근 교사들이 공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으므로 ‘학교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취한 조치라는 것이다.교장회는 이에 따라 곧 휴교방침을 바꿨다.

그러나 스승의 날 휴무가 공교육 포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현재 과외성행과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공교육 붕괴 위험의 본질은 교육내용에 있다.다 알다시피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고 학원 등 학교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인력과 재원 부족,대학입시정책의 난맥상 등이 이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교육 문외한도 다 아는 일이다.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당국이 고심하면서 여러 가지 처방을 내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런 것들은 실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서 너나없이 걱정하는 것이지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승의 날 하루 휴교했다고 해서 공교육 포기 인상을 준다는 교육부의 설명은 너무 엉뚱하고 궁색하다.이유를 내세우더라도 좀 그럴 듯해야지 이건 도무지 비슷하지도 않다.그야말로 탁상공론이요 전형적인 무사안일의 발상이다.

스승의 날 의미를 새롭게 규정한 교장회의 결의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렇다.재학중인 학교 선생님보다 옛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날로 되어야 한다는 교장선생님들의 견해는 타당하다.무릇 감사의 마음은 즉석에서보다 세월 따라 곱씹어보고 정이 익어가면서 발효됐을 때 숙성하고 진정이 우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하루 쯤 쉬면서 찾아오는 옛 제자들과 시간을 갖는 것이 취지에 맞는 것이지 교육부 지시에 따라 휴교하지 않고 각 학교 실정에 맞는 행사를 하는 것은 억지 춘향이에 불과하다.마지못해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학교와 교사들에게는 스승의 날이 아니라 고통의 날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휴교취소를 지시했고, 교육계 어른들로 구성된 교장회는 이에 맞춰 자기들 결정을 번복했다.그 교육부에 그 교장회가 아닐 수 없다.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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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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