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1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61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2~3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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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화 문화인] EBS 박수룡 카메듀서


  시베리아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물소설 '위대한 왕'의 마지막 장면에 비친 '왕대'(王大)의 모습은 처연하다. 시베리아가 개발돼 전에 없던 철로가 놓이는 등 풍경이 바뀐다. 그 위로 기차가 다녀 왕대의 포효가 가장 큰 소리였던 음향의 세계도 바뀐다.

  러시아 작가 바이코프는 왕대가 이를 보고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만 그렸으나 왕대의 느낌은 우리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다. 그 뒤 왕대의 처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소식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1998년 8월 EBS가 내보낸 '시베리아-잃어버린 동물을 찾아서'는 왕대를 다시 만나는 또 다른 방송이산가족찾기 프로였다. 이 프로를 만든 박수룡(朴壽龍.37)과 함께 교육방송의 '카메듀서'라는 새 직업군도 알려졌다. 카메듀서는 프로듀서와 카메라맨을 겸한 것이니 '프로메라'라고 해도 그만이고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프로듀서가 카메라를 들어 '카메듀서'니 '프로메라'니 하는 말이 생겨 났으나 프로듀서가 하는 일에서 카메라작업은 작은 부분이지요.그러나 직접 카메라를 들고 보니 작품 자체는 물론 제작의 실체에 한발 다가간 느낌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끊임없이 직업을 만들어 내고 또 없앤다. '카메듀서'도 그런 것이다. 카메듀서는 EBS가 '특집 자연 다큐멘터리'에 중점을 두면서 도입한 제도.

  기획의 성격상 여러 팀이 참가해야 하기에 막대한 예산이 들자 프로듀서까지 카메라를 잡게 된 것이다. 그들의 직함은 아직 프로듀서이니 '카메듀서'는 직종이 아니라 작업의 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옛날처럼 무겁고 사용이 어려웠다면 꿈도 꿀 수 없는 획기적 변화였다. 카메라의 발전에 끝이 없기에 카메듀서제가 어디까지 갈지는 알 수 없다.

   카메듀서제는 경비절감이라는 방송사의 집안사정을 넘어 작품 자체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프로듀서가 카메라맨보다 촬영기술이 나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최선봉에서 쏟은 땀과 열기가 작품에 배어 있는 것이다. '시베리아…'가 그 예다. 오랜 동안 동물의 생태에 관심을 가진 PD 박수룡이 직접 카메라로 호랑이를 잡아낸 것이다.

  "10년 가까이 동물프로만 맡아 왔으나 '시베리아' 같은 반응은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영물시하는 호랑이가 나와서겠지요. 그러나 동물프로를 맡다 보면 모든 동물이 사랑스러워집니다. 뱀들도 일가친척같이 다정해져 날로 바뀌는 환경에서 무사히 살아갈지 걱정되지요."

  경남 거창의 시골에서 자란 박수룡의 오늘은 1992년 EBS에 입사하던 날 사실상 정해진 셈이다. 그는 자연다큐멘터리 프로를 맡고 싶어 했고 이를 탐내는 경쟁자도 없었다. 그것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연다큐에 대한 관심이 그 동안 높아진 것은 시청자들의 차원이고 방송사에서 그 일은 너무 고된 것이다.

  "왜 동물이 그처럼 재미있었고 아직도 물리지 않는지 저 자신도 모르겠어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 갖가지 동물들을 보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타고난 인연이라고 봅니다."

  박수룡이 동물과는 인연이 먼 서울대 영문과 출신이라는 것도 그의 인연설에 무게를 더해 준다. 많은 대입생들이 타고난 취미나 적성보다 점수로 맺어지듯 그도 점수가 아까워 그 과를 선택했으리라.

  박수룡의 영문학과 시절은 '문학이냐 취업이냐,그것이 문제로다'하는 식의 고뇌에 빠지는 대신 왜 우리 TV들은 외국동물만 보여 주는가 하는 불만만 키우는 기간이었다.spEBS에 들어감으로써 그는 스스로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처지였으나 맨처음 맡은 동물프로는 겨우 '반디'였다.

  반디는 학문적으로는 동물이지만,통상적으로 '동물'은 포유류를 지칭하지 않던가. 적어도 등뼈동물인 양서류는 돼야 '동물 프로'일 듯했는데 그보다 하등이고 작은 반디를 맡은 것이다.

  "프로를 맡고 나서 두가지로 놀랐습니다. 반디라는 작은 동물을 작품으로 내놓기까지의 과정이 큰 동물에 못지 않거나 웃돈다는 데 우선 놀랐지요. 이 작은 동물이 갖는 갖가지 사연이 몸집 큰 동물에 뒤지지 않는다는 데 또 한번 놀라구요."

  한낱 '개똥불'에 꼬박 1년을 매달려 본 경험담이다. 다른 작업도 병행했다지만 6개월은 반디 보호지역인 무주 남대천에서 보내야 했고 6개월은 반디 공부를 비롯한 필름작업에 보내야 했다. 반디가 나는 모습만 보고도 그것이 먹이를 찾는지 짝을 찾는지를 알게 돼야 카메라를 댈 수 있는 것이다.

  "동물은 인간이 생각한 것보다 많은 대화를 하고 있어요. 물총새 프로를 맡으면서 보니 그들은 나무라는 소리,짜증내는 소리는 물론 화도 내고 귀엽거나 사랑스럽다는 소리까지 하는 거예요."

  암컷이 수컷에게 '빨리 먹이 가져오라'고 하면 수컷이 '알았어'하고 대답하기도 한다. 암컷이 수컷에게 '나 여기 있어'하는 정도는 기본이다.

  수리부엉이들을 살피자 동물도 인간처럼 종족유지와는 무관하게 쾌락을 찾아 섹스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박수룡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는 역시 호랑이를 내보낸 '시베리아'. 97년 1월부터 98년 6월까지 1년반이나 걸리는 작업기간이 그렇고 시베리아와 연해주에 걸친 발자국도 다른 프로와 달랐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추위와 고독과의 싸움이었다.

  4명이 1조로 작업했으나 막상 현지에 가서는 각자 아름드리 나무위에 높이 매달린 잠복텐트에서 몇달씩 사는 생활이었다. 100㎞ 사방에는 인가가 없었고 동료들과도 수십리씩 떨어진 곳에서 호랑이를 기다려야 했다. 상자같은 텐트는 한 사람이 눕기에도 빠듯하나 여기서 배변과 식사를 해결해야 하며 좀체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변을 치우는 것도 호랑이가 냄새를 맡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식사도 불을 피워 조리하면 냄새가 나기에 날로 먹을 수 있는 미숫가루나 육포 등으로 견뎌야 했다.

  "그런 곡절끝에 만나 본 호랑이들의 삶은 더 참담했어요. 시베리아를 포함한 동북아 일대의 호랑이가 이제 200마리도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호랑이들도 날로 척박해지는 환경 탓에 동물의 왕다운 모습을 잃어가고 있지요."

  비단 호랑이만이 아니라 이 지역 동물들의 살이가 모두 어려워지고 있다. 극지방이나 아프리카에 비해 개발이 빠르고 인구가 조밀해 동물들은 숨가쁘게 쫓겨 가고 있으나 퇴로도 변변치 않은 것이다. 따라서 호랑이들은 인가와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지난날의 승냥이나 오소리처럼 가축을 축내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으로 치면 '장군의 아들'이 양아치나 잡범으로 타락한 꼴이다.

  "호랑이가 개를 잡아 건초창고에서 먹다가 창고문이 닫기는 바람에 붙들리기도 했지요. 그 밖에 다른 가축을 축내는 바람에 러시아에서는 마을에 나타나는 호랑이는 사살할 수 있게 됐어요."

  한국에서 영물로 치는 호랑이가 그곳에서는 한낱 해로운 동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수룡은 작품제작 못지 않게 호랑이 지키기에 바빴다. 러시아 동물보호협회와 협력하여 호랑이의 가치를 알리는 일은 물론 현장에서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호랑이를 촬영하는 일과 보호하는 일은 엇갈립니다.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면 촬영기회는 많아지나 그들을 노리는 사냥꾼에게도 기회가 늘어나지요. 그래서 호랑이를 촬영하자마자 내쫓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호랑이가 다니는 통로에 좋아하는 먹이를 두어 먹는 장면을 찍은 다음 공포탄을 어지럽게 쏘아 다시는 마을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야 했다. 호랑이가 먹고 남겨둔 짐승의 고기에 맛없는 약을 뿌려 다시 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산중의 왕인 호랑이가 그처럼 민가를 얼씰거리는 자체가 비극이다. 호랑이는 1년에 발굽 동물 30마리 이상을 먹어야 하나 동북아에서 아무리 조건이 좋은 곳도 27마리 이상은 얻을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동북아의 동물들이 전반적으로 멸종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운 만큼 한시라도 빨리 알리고 싶어 안달나 있다. 그 점에서 카메라를 직접 치켜든 카메듀서제는 박수룡에게 걸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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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0.03

양평의 역사 꺾어 보기 '그해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