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기자가 날마다 쓰는 '그해 오늘은'을 소개합니다.
그는 날카롭게 역사를 도막내
몇 줄 안되는 짧은 문장 안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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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1세기 문화 문화인'에서는
그의 남다른 문화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칼럼니스트]

2000년 4월 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56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2~3회 발행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방명록 *의견함

[21세기 문화 문화인] 삼성출판사 김진용 사장


그를 대하자 컴퓨터가 처음 보급될 무렵 출판계에서 벌어진 논쟁이 떠오른다.

컴퓨터는 출판의 적인가 우군인가.

  최근 인터넷 월간지 '하우 인터넷'(How Internet)을 3월호로 창간한 삼성출판사의 김진용(金鎭用.44) 사장.

  컴퓨터 이전 시대에 기반을 잡은 대형 출판사가 컴퓨터 출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그에게 컴퓨터문화는 적도 우군도 아닌 새로운 환경일 뿐이다.

그리고 출판은 모든 현상을 문자로 수용해야 한다.

  "컴퓨터는 어느 분야나 뒤흔들고 있습니다만 출판의 경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같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출판은 금속활자에서처럼 또 한번 비약할 계기를 맞은 것입니다."

  독자들이 책을 사지 않고 인테넷으로 그 내용에 접하게 된 것도 출판의 위기가 아닌 발전이라고 했다.출판이 꼭 잉크로 뭔가를 그리거나 쓴 종이를 파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책이라는 종이뭉치가 없어졌을 뿐 그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출판은 있어야 한다.상식적인 소리면서도 '삼성출판박물관'을 거느린 출판사 대표의 말이어서 느낌이 다르다.

  이 박물관은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1300년간 우리나라의 출판이 걸어온 발자취를 한군데 모아논 것이다.1964년 창립된 삼성출판사의 출판 경향도 그 비슷했다.

한국학적인 것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나 세계문학전집이나 역사전집 또는 사상전집 등 무거운 책들이었다.어느 것이나 날렵하고 현대적인 컴퓨터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창업자인 김봉규(金奉圭)와 그의 아우인 현회장 김종규(金宗圭)를 거쳐 김봉규의 아들인 김진용에 이르자 그런 경향은 뿌리부터 바뀌게 된 것이다.그것은 출판계에서 흔히 보는 세대교체와도 다르다.대부분의 2세 출판인들은 경영방침까지 상속하여 점차 자신의 컬러를 도입하는 편이다.그러나 김진용의 경우 세대교체라기보다 세대를 단절하듯 방향을 바꿨다.

  그런 낌새는 김진용의 대학간판에서부터 비친다.그는 출판과는 연이 없는 서울공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다.그가 대학에 갈 무렵 삼성출판사는 굴지의 출판사로 터를 잡고 있었고 자신도 출판업을 이어 맡는 데 아무 저항이 없었으나 전공은 외도를 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뭔가 새로운 것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종종 사업가라기보다 예술가라는 말도 듣지요.

물론 예술적인 소양이나 안목이 있었다는 말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달동안 현대중공업에서 일했으나 군에 가면서 대학전공과는 이별한다.80년 군을 제대하자 자연스레 아버지의 회사인 삼성출판사에 몸을 담았다.그러나 3년뒤 출판과는 인연이 없는 회사를 차려 독립해 나갔다.

새로운 것을 찾는 그에게는 부친이 회장으로 숙부가 사장으로 있는 출판사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학생용품으로 유명한 아트 박스사를 차려 성공했다.

경영이 성공하여 회사가 이름을 날리자 매제에게 넘기고 자신은 10년만에 출판사로 돌아 갔다.선친은 은퇴하고 숙부와 함께 회사를 이끌게 된 것이다.

  "우선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먼 장중한 책들을 실용적이고 가벼운 것으로 바꿨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나 우리 경우는 회사 자체의 체질 변화를 필요로 했지요."

  전집 출판으로 기본을 잡은 삼성으로서는 단행본 출판사로의 성전환 수술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원래 삼성출판사는 '대양서점'으로 시작했으나 출판사로 전환하자 서점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무거운 책을 만들어 외판조직을 통해 팔았기 때문이다.김진용은 다시 서점판매에 주력하게 됐으니 40여년만에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출판 이외의 사업에도 나서는 점에서 더 '출판 이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가장 큰 전환은 컴퓨터 관련 출판에 뛰어든 점이다.그가 출판사에 돌아온 90년대 초에는 이미 컴퓨터 관련 잡지들이나 단행본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그러나 김진용은 망설임 없이 컴퓨터잡지 창간을 추진했다.

  "컴퓨터문화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계속 살아갈 환경이기에 선발이나 후발은 의미 없는 일이지요.

컴퓨터 환경 자체가 급속히 바뀌고 있어 얼마나 그 변화를 수용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봤습니다."

  기존 컴퓨터잡지들이 너무 영세한 점도 용기를 주었다.감각 있는 젊은이들이 벤처기업을 세우듯 책을 내놨고 간혹 성공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실패로 끝났다.첨단문화를 소재로 한 책도 그것이 제작되어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은 첨단과는 거리가 먼 출판시장의 메커니즘에 따르기 때문이다.

  그는 1차로 월간 '하우 PC'를 96년 6월호로 창간했다.당시는 컴퓨터 관련 기술적인 가이드북은 많이 보급돼 있어 초보자들에게 컴퓨터문화의 저변을 종합적으로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예상대로 그것은 너무 늦지 않았다.

처음부터 잡지는 수지균형을 웃돈 것이다.김진용의 아이디어라기보다 컴퓨터 이전의 활자시대 출판사가 쌓은 재력과 노하우 덕이었다.

  IMF로 다른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한숨만 쉬고 있을 때 그는 반가운 편지를 받았다.지방의 한 독자가 5도 넘는 두루마리에 쓴 편지였다.그는 직장을 잃어 PC방을 차리려 했으나 컴맹이어서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으나 잡지를 보고 점포를 냈고 경영도 잘 되고 있어 감사하다는 사연이었다.

  "그 독자 같은 컴맹만이 아니라 어느 수준에 이른 이들에게도 잡지는 나름의 기능을 합니다.

서점에서 '하우 인터넷'을 사는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으로도 그 내용을 볼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하우 인터넷' 창간은 '하우 PC'에 이은 당연한 수순이고 다음 수순은 알 수 없다.

컴퓨터문화가 어떻게 바뀔지 기다릴 따름이다.

  김진용은 앞으로도 컴퓨터문화와 출판문화는 서로를 발전시켜 가며 경쟁과 공존을 반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에게 컴퓨터와 출판은 따로 있지 않고 하나의 실체로 뭉쳐 있는 것 같다.

  김진용이 새로 만든 삼성출판사 사원들의 명함에는 '출판'이 없다.명함의 모양새도 그렇다.

어린이들의 카드같이 울긋불긋한 풍선그림이 그려져 있는 이 명함에서 출판박물관을 지은 출판사의 얼굴은 찾을 수 없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삼성출판사'라는 회사이름과 나란히 쓰여진 'NSF'라는 영문약자.풀어 쓰자면 'Network Samsung Future'으로 '삼성미래네트워크'이다.'삼성'은 남아 있으나 미래와 네트웍만 있는 것이다.

  그가 3월초 '하우 인터넷' 창간과 함께 인터넷 여행사를 차린 것도 그런 발상이다.출판사가 여행사 시장에 뛰어든 것이 낯서나 인터넷시대에 그것은 잡지 하나를 창간하는 것처럼 쉬운데다 전망도 좋다.

  "몇년 전 우리는 '세계여행 가이드북'을 내놨습니다.

세계 명소들을 역사적 의미부터 상세히 설명한 것이지요.

이 책의 내용을 콘텐츠로 해서 고객들의 여행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고객들은 인터넷으로 자신이 바라는 명소를 찾는 것은 물론 여행방법을 얻고 예약까지 마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여행사업에 접근하는 길도 여러 갈래며 외국에 관한 정보를 갖춘 출판사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지난날의 여행사처럼 공간과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아 출판사로서는 외도나 업종전환이 아니라 의자만 몇개 늘리면 되는 사업이다.

  "선친이 외판에 의존하는 대형 전집류를 출판한 것은 그 시절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더러 말썽도 있었으나 출판문화를 발전시겼습니다.

이제는 외판원이 아닌 인터넷이 그 기능을 하는 시대에 왔기에 저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우 인터넷' 창간호 표지에는 큼직한 특집제목이 눈길을 끈다.

'디지털 유토피아요람에서 무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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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 전문기자
* 세계일보 2000-03

양평의 역사 꺾어 보기 '그해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