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1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45호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2~3회 발행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방명록 *의견함
바닥쇠들의 증오

1950년대 초반,초등학교 조무래기들한테 인적이 드문 먼 바닷가는 공동묘지보다 더 무서웠다. 처참하게 살해된 송장들이 파도에 떠밀려 오고 갈치,낙지 등이 거기에 시커멓게 달려들어 뜯어먹는다고 어른들이 수근거렸기 때문이다.밤이면 그 원혼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는 사람도 있어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꼬마들은 그래서 낮에도 혼자서는 한적한 바닷가를 지나가기 꺼렸으며 날씨가 흐리거나 어두워질 때 파도 소리는 귀곡성처럼 들려 공포에 질렸다.

그 많은 사람을 누가 죽였을까.당시 우리들이 배운대로라면 쳐부숴야 할 것은 북한 빨갱이와 중공군이고 막아야 할 것은 일본이었기 때문에 그 세 집단 중의 하나여야 하는데 어른들이 귓속말에 가깝게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걸 보면 아니었다.그 세 집단보다 더 무서운 바닥쇠가 그랬다는 것이다.

조무래기들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북한, 일본, 중공보다 더 못된 것이 있다니 이해되지 않았다.어른들의 말을 나름대로 종합해보면 같은 동네에서 사이좋게 살던 사람들 가운데 인민군이 들어오자 갑자기 달라져 앞뒤 안 보고 마을 사람들을 끌어내 죽이고,심지어는 머슴이 주인네 식구를 몰살한 사례도 적지 않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바닥쇠였다는 것이다.전국이 비슷했다.도대체 바닥쇠는 어떻게 생겼는가. 빨갱이는 붉은 얼굴에 뿔이 나 있는 걸로 돼 있으니 짐작이라도 하지만 바닥쇠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바닥쇠가 어느 곳에 오랫동안 살아온 이를테면 토박이임을 알게 된 것은 나이를 좀더 먹은 다음이었다. 인구이동이 적던 그 시절에는 누구나 토박이였으니 너나 없이 바닥쇠고, 집안식구 못지않게 붙어살던 이웃이었다.그런데 그 바닥쇠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동네사람들은 처참하게 살육했다.이웃이 이웃을 죽인 것이다.좌익이니 그동안 맺힌 한 때문이었느니 하고 이유를 댔지만 그래도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말끔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그 근본 바닥에 깔린 원한과 증오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이해가 가능했고 그 무서운 실체를 더욱 절감했다.민족 최대의 비극이라는 6·25전쟁 자체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증오에서 발단됐다.정치적으로는 외세의 대리전이지만 그 심층에 우리끼리의 증오와 원한이 없었다면 전쟁은 성립할 수 없었다.평소 이웃간의 갈등이 거기에 편승해 무자비한 살육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제 50년이 지났으니 그런 식의 증오와 살기는 박제되어 유물전시실에 안치되어 있어야 마땅하다.아니 그런 것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있다.그렇다면 정말 흘러간 시절의 한 장면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다.요즘 선거판을 보면 분명히 느낄 수 있다.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반세기 전의 그것과 유사한 증오가 잠복하여 출구를 찾고 있음을. 너무 예민한 문제라서 지역감정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쓰고 있지만 실제는 지역간의 증오고 원한이다.이것이 만약 폭발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나친 가상이며 상황을 너무 절망적으로 보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그런 사람들은 인터넷에 들어가 보라.같은 지역사람들 모임의 대화도 마찬가지다.다른 지역에 대한 비방의 정도를 넘어 곳곳에서 살기가 묻어나고 있다.철없는 일부 네티즌의 장난을 가지고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역사상 대부분의 참극은 철부지들의 어처구니없이 작은 광기에서 비롯됐다.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일반 주민들이 이에 많이 부응하는 점이다. 흔히 정치인들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한다고 비난하는데 ‘조장’ 이나 ‘부추긴다’는 말은 이미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주민들이 갖고 있는 증오감을 정치인들이 대리전 무기로 내세우고 있을 따름이다.따라서 주민들 사이의 증오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지역감정의 근본치료는 불가능하다.

대리전이 끝나고 나면 승패는 그들의 것이 되고, 각 지역 주민들 가슴에는 증오심만 남을 것이다.그것은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때를 기다리는 바닥쇠들의 그것처럼 깊숙이 숨을 따름이다.이 위험물질이 폭발했을 때의 피해는 누구겠는가.

그렇게 되어도 좋은가.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내가 미워하는 상대의 실체를 곰곰이 따져보자.이웃 지역 사람들이 이 땅에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인가, 막연히 싫은 것인가.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이를 생각해보자.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뭔가 뚫리는 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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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년 0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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