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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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파는 소녀들/ 박연호

떡파는 소녀들

지하철역 출입구에서 떡파는 소녀들이 부쩍 생겨났다.행색을 보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아닌 듯한데도 추운 거리에서 떨며 고생하는 것이 의아스럽고, 한 상자쯤 되는 그 떡을 어디서 가져다 파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대개 2∼3명이 한조를 이루어 사라고 외치는데 불량식품 같아 미덥지 않고, 애들이 무슨 좋지않은 조직에 연계되거나 사이비 종교의 맹신도들이 아닌가 싶어 냉랭한 얼굴로 지나는 행인들이 많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이처럼 어두운 우려와는 다르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이들은 주로 여중생이며 서울시내에 수백명에 이른다는 것이다.집안이 어려워 그런 게 아니고 단순히 갖고 싶은 물건 사고, 먹고 싶은 것 사먹기 위해서라는 것이다.또 불량조직 또는 사이비 종교단체와 관련이 없다는 것만으로 우선 안심은 된다.

하지만 소비욕구만을 채우기 위해 거리에 나앉은 그들의 행위가 어쩐지 아슬아슬하다.큰 떡집들이 정보지에 낸 일할 사람 모집광고를 보고 연락하면 사람이 나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떡상자와 함께 이들을 내려주고 팔게 한다.판매액의 40%를 일당으로 받는데 일하는 날수와 판매량에 따라 한달에 20만∼8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보도다.

용돈이건 집안 살림에 보태려고 하건 이를 나무랄 것은 못된다.학교 밖에서 이런 기회를 통해 안목을 넓히고, 일하면서 흘리는 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런 뜻을 도와주는 것만은 아니다.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이들에게 뻗칠 위험요소가 훨씬 더 많다.먼저 앵벌이식 판매방법이 위태위태하다.물가 정도가 아니라 숱한 마수가 입을 벌리고 있는 위험지역에 젖먹이가 나와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떡을 사면서 이들에게 원조교제를 제의한 ‘못된 아저씨’들이 벌써 있다고 한다.이런 유혹에 한번 빠지면 그 뒤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눈여겨 둔 물건을 사거나 사먹을 정도 돈을 벌면 일을 그만 두었다가 돈이 필요하면 다시 나서는 행태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번 돈을 유흥비로 소비하고 떨어지면 길거리에 나서는 반복행위 속에서 아직 어린 그들이 정상적 학교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 뻔하다.

업소에서 일손이 모자라 이들을 고용한다면 잘못은 없다.그러나 판매 장소, 방법 등을 달리해서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그렇지 않고 만에 하나라도 앵벌이식 착취 의도가 있다면 가차없이 처벌해야 할 것이다.

학교, 학부모들도 이 점에 유의하여 대책을 세워야 한다.아무리 의도를 좋게 해석한다 해도 어린 여학생들이 몇 시간씩 물건 팔면서 지내도 좋을 만큼 밤거리가 안전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연호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민일보 2000년 0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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