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52 [칼럼니스트] 2018년 2월 1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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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라 '가거라 삼팔선' 세대여!” (양평 梁平)
양평 梁平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angpy



최근 들어 문재인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그것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투표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것과도 무관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 자체가 상서로운 일은 아니다.

나는 지난날 3당 야합을 한 김영삼을 지지하지 않았으나 그가 대통령이 되자 하나회를 숙청하는 등으로 지지율이 껑충 뛰었을 때 쾌재를 부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지지율 하락은 또 다른 점에서 충격적이다. 젊은 층이 특히 20대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현상이 새삼 놀라운 것이다.

문재인 지지율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60% 대로 떨어진 적이 있었으나 그 때는 느낄 수 없는 놀라움이었다. 특히 20대가 문재인을 부정평가 한 가장 큰 이유가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동시 입장’(25%)이라는 대목에서는 망치로 뒤퉁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젊은 세대가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여론조사 같은 것을 보고서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랬던 것이 막상 하나의 정치적 동향이라는 현실로 나타나자 너무 놀란 것이다. 그것은 내가 ‘틀딱’으로 낙인찍히는 심경이었다.

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틀딱’과 무관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틀딱이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충돌했을 때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을 싸잡아 씌어준 낙인이었다.

나는 그 어느 집회에도 참가한 적은 없었으나 마음은 촛불집회와 함께여서인지 ‘분수를 잊은 채’ 틀딱들을 냉소하기도 했다. 내가 우리 세대가 모인 자리에서 “한국의 장래는 우리 같은 6·25세대가 사라져야 희망이 있다”고 곧잘 말하는 것도 틀딱 비판에 가세한 셈이었다.

나는 한국전쟁과 거리가 먼 젊은 세대일수록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기대는 여론조사 기관의 간단한 발표 하나로 산산조각이 난 채 나 자신 새로운 틀딱이 돼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대학 시절 들었던 김상협(金相浹)교수의 강의가 머리를 스쳤다. 훗날 국무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독일 통일과 관련해 “막상 서독의 젊은이들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통일이 되면 동독의 그 가난뱅이들 뒤치다꺼리가 걱정돼서다”는 요지의 강의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 강의에 공감하지 않았다. 교수들 가운데는 뭔가를 침소봉대해서 센세이셔널한 주장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독일민족이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 도대체 상상이 되지 않아서였다.

우선 19세기 중엽 유럽 중부를 뜨겁게 달구었던 ‘대독일주의(Grossdeutschtum)’가 내 의식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대독일주의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프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소독일 통일을 위해 비스마르크가 쏟은 정열이 무색하게도 독일인들이 통일의 염원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뒤 세월이 흐를수록 나의 그런 생각이 어이없는 단견임을 깨달았다. 독일이야 말로 민족통일이 거의 불가능하고 그런 바탕에서 ‘피’보다는 ‘물’을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 것이다.

독일인이라면 떠오르는 ‘게르만족’이야말로 가장 종잡기 어려운 민족이 아닌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나왔다는 그들은 바이킹이 되기도 했으며 그들 가운데 앵글로 족과 색슨 족은 영국으로 진출하는가 하면 동쪽으로 간 분파는 슬라브족의 원조에도 합류했다. 그 복잡한 족보는 그만두고 오늘날의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만을 ‘독일민족’으로 보아도 통일은 너무 막연하다. 실은 비스마르크가 통일을 할 때도 프랑스에 앞서 오스트리아를 짓밟지 않았던가. 그밖에도 유럽의 잦은 전쟁과 그로 인해 요동치는 국경 때문에 게르만족은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해왔다.

독일 철학이라면 우선 떠오르는 임마누엘 칸트가 평생 150㎞ 이상 나가본 적이 없다 해서 너무 유명한 도시인 쾨니히스베르크(Koenigsberg)도 지금은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가 돼 있다. 그런 일은 어느 민족이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중부 유럽에 자리하고 있는 독일민족들은 동서남북 어느 쪽이나 조용한 곳이 없었다. 그 복잡한 ‘혈육’들을 어떻게 다 챙긴단 말인가?

그런 독일이었지만 너무 어이없이 다가온 독일 통일로 김상협 교수의 지론은 일단 판단이 보류된 셈이었다. 더욱이 독일과 달리 단일민족이자 배달민족인 우리 민족이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의식조사에 비친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물보다 진한 피도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길 수는 없음을 실감케 한다. 그래서 새삼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런 일은 이미 우리가 역사에서도 경험한 바 있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당나라의 침입으로 고구려가 멸망해 만주를 잃고 반도 일부만 건진 것을 간단히 배우고 넘어간다. 그래서 그런 민족 비극의 과정에서 갈라진 피붙이들이 겪었던 고통을 무심히 넘기곤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한만국경 이북의 사람들은 우리의 피붙이가 아니라 크게 보아 중국인이고 조선조 때는 ‘야만인’이라고 부르다가 병자호란 때 혼이 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갔다는 것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에는 ‘나라(奈良)’라는 도시가 있고 우리가 ‘고을’이라고 하듯 일본인들도 郡을 ‘고오리’라고 부른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일본인은 ‘형제’가 아닌 ‘이웃’이고 그 이웃도 가장 저주스런 이웃으로 자리매김 돼 있지 않는가.

더욱이 우리의 분단 70년은 한국의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가 해체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형제들도 지난날처럼 ‘운명공동체’ 같은 존재가 아니다.

더욱이 남북이 가까운 세월에 통일될 전망도 오늘날 지평선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오늘날 시끄러운 핵문제가 전쟁으로 이어지는 재앙(catastrophe)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전제에서다. 하긴 북한의 경제난이 독일 통일 같은 방식의 통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박근혜 같은 지도자가 좀 더 강력히 ‘통일대박’을 추구할 경우 통일이라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나 아직 내 빈약한 시력에는 그 미조도 비치지 않는다.

그런 세월이 흐를수록 남북은 멀어지고 있다. 이제 남북은 언어도 크게 달라진데다 남북한 주민의 체격도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마저 들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 민족도 슬라브족에서 세르비아 족이 나오고 슬라브어가 남슬라브어와 달라지듯이 분화의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돌이켜 보면 우리들 자신도 그런 현상에 많이 길들여져 왔다.

한국전 직후 우리는 살던 지역이나 처지와 상관없이 모두가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렀다. <금순아 굳세어다오/ 고향꿈도 그리워진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이 가자 금순이에게 굳세어 달라고 했던 자신도 굳세게 버티지 못해 슬며시 꿈속에서 만난 금순이를 피해야 했다.

그래서 금순이 대신에 두고 온 산하를 찾기도 했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네 모양이 그립구나…> 그 세대마저 사라져 가는 이제 모란봉도 을밀대도 ‘멀고먼 나라’의 풍경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런 ‘아득한 먼나라’의 이야기나 듣고 자라난 젊은 세대가 통일을 외면한다고 해서 놀라면 영락없는 틀딱이 되는 것 아닐까. 그것은 문재인의 지지율이 다시 얼마쯤 회복되고 특히 젊은 세대의 지지율이 다시 올랐다는 보도로도 지울 수 없는 상념이다.

그러고 보면 민족 공동체는 동물이라기보다 식물성에 가깝다. 동물은 대부분 몸을 자르면 죽는다. 그러나 버드나무가 그렇듯 식물들은 가지를 잘라도 거기서 다시 뿌리가 나면서 나무의 틀을 갖춘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그처럼 몸통이 토막 나도 거기서 다시 머리와 수족이 나와 버젓한 나라 행세를 했던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 과정에서 네덜란드와 떨어져 나간 벨기에도 멀쩡하게 유럽연합의 수도 구실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휴전선이 국경선이 되는 것은 악몽이자 고작해야 가장 가혹한 현실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최근 현송월을 둘러싼 언론의 소동을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현송월이 무슨 핸드백을 들고 무슨 호텔에 들어 아침엔 무얼 먹고 점심에는 무얼 먹었다고 법석을 떤 것이 오랜만에 만난 동포에 대한 반가움의 표시였을까?

한국의 언론은 그 펜이라는 흉기를 휘둘러 현송월을 ‘총살’시킨 바 있다. 현송월은 운이 좋아 삼지연 관현악단장으로 남한을 방문할 수 있어서 총살을 받고도 살아날 수 있었으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흉기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도 못했을까.

그럼에도 한국 언론은 그처럼 죽인 현송월에게도, 그런 오보를 믿었던 남한 독자들에게도 일언반구의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앞으로도 펜이라는 장난감 흉기를 휘두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건 어찌 해볼 수 없는 ‘무서운 개구쟁이’의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이 통일을 염원한다면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은 우리 언론을 바로잡는 일이다.

- 20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