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46 [칼럼니스트] 2017년 10월 3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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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至公無私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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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晉나라 고급관리 양설적, 양설힐 형제가 죽게 되었다. 이복동생이 반역죄를 저질러 그에 연좌된 것이다.

대부 낙왕부는 평소 양설형제와 가까이 하고 싶었으나 그들이 곁을 주지 않았다. 이 기회를 틈타 동생 힐한테 “사면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임금 平公은 낙왕부를 총애해 평소 그의 말이면 다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힐이 대꾸도 않자, 낙왕부는 무안해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가문이 멸족할 위기인데 실세의 호의를 물리친 동생을 형은 이해할 수 없었다. 힐이 대답했다. “우리를 살릴 사람은 기해(祁奚)대부 밖에 없습니다.” 형이 반문했다. “기대부는 은퇴해 낙향했고, 낙대부는 늘 임금 곁에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유리한가.”

기해는 원수건 자기 아들이건 능력위주로 벼슬에 추천했다. 철저하게 국익 우선이었다. 그래서 ‘기해지천(祁奚之薦)’이 공평무사를 대신하는 말이 되었다. 양설형제를 현직에 추천한 이도 기대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퇴직했다.

동생이 설명했다. “낙대부는 임금이 옳다면 그냥 옳고, 그르다면 무조건 그르다(君可亦可 君否亦否)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우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기대부는 진정으로 지공무사(至公無私)합니다. 그러니 기대부 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소신 없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는 법. 힐은 처음부터 낙왕부의 그 점을 꿰뚫고 있었다. 분을 이기지 못한 낙왕부는 임금에게 도리어 양설형제를 모함했다. 반면 형제의 처지를 알게 된 기대부는 곧 바로 상경, 나라를 위해서 훌륭한 인재를 살려야 한다고 임금께 간청했다.

형제가 풀려나자 기대부는 그들을 만나보지도 않고 시골로 내려갔다. 힐 역시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대부는 그 형제 아닌 나라 장래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형은 그제야 동생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했다.

동생인들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윗사람 말은 무조건 옳다는 무소신과 냉혹할 만치 공을 우선하는 지공무사의 영향력 차이를 예리하게 읽어낸 것이다.

낙왕부가 진심으로 그 형제를 좋아했다면 기대부처럼 말없이 나서야 했다. 그러나 거절당하자 모함으로 앙갚음하는 소인배 기질을 드러냈다. 예상외로 임금 평공은 총애하는 측근의 모함을 물리치고, 은퇴한 신하의 충심을 받아들이는 현명함을 발휘했다. 임금이 끝내 어리석었으면, 그런 극적 반전 없이 조정에는 거센 피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공무사다. 관공서나 웬만한 사무실 곳곳에 필수품처럼 걸려있어 누구에게든 매우 가까운 글귀다. 그 말이 좋은 줄을 우리 사회 누구나 안다는 뜻이리라.

-아주경제 2017년 10월1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