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43 [칼럼니스트] 2017년 9월 2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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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엔 애걸, 낮엔 갑질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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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name-dropper는 ‘남의 이름 흘리고 다니는 사람’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이는 입만 열면 유명인이나 권력실세를 형님동생하며 지내는 사이라고 허풍떠는데, 우리 식으로 ‘떠버리 마당발’쯤 될 것 같다. 이른바 인맥이라는 건데, 굳이 부정할 건 없다. 풍부한 인맥을 공적으로 잘 활용하면 자신과 조직 및 사회에 여러모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마당발은 몰래 여기저기 줄을 대고 애걸하여 어쩌다 성사되면 남이 모르는 줄 알고 기고만장이다.

한(漢)나라 말엽 조기(趙岐)는 “지금 부귀를 구하는 자들이 모두 부정한 방법으로 어두운 밤중에 애걸하고, 대낮에는 남에게 교만하게 군다.(昏夜乞哀以求之 而以驕人於白日)”며 개탄했다. ‘맹자’ 이루(離婁) 하편 33장에 나오는 어설픈 초보 name-dropper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인데 날마다 밖에서 술과 고기를 포식하고 돌아왔다. 아내와 첩이 누구와 그렇게 마셨느냐고 물으면 언제나 부자나 고위 관리를 거명했다. 하지만 그들이 한 번도 자기 집에 온 적이 없어 이상하게 여긴 아내가 하루는 남편 뒤를 밟았다.

미행한 결과 그는 종일 혼자 공동묘지에서 이 무덤 저 무덤 찾아다니며 제사 음식을 얻어먹었다. 기가 막힌 아내는 ‘남편은 평생 우러러 보며 살아야 할 사람인데 이 꼴’이라며 첩과 함께 울었다.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집에 돌아와 역시 처첩한테 온갖 폼을 잡았다.

맹자는 ‘부귀를 구하는 자들이 모두 이 사람과 같으니, 그 처첩이 보면 부끄러워 울지 않을 자가 적다.’고 평했고, 조기가 이에 덧붙였다. 고대 중국의 일화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각계각층 실세나 유명인과 막역한 사이라고 허풍떨고 다니며 몰래 한자리 구걸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도 정권초기에는 그런 이들이 더욱 많아진다고 한다.

공직뿐만이 아니다. 일반기업 등 보통 직장에도 흔하다, 그러다 한자리 얻으면 아랫사람은 물론 주변에까지 허세부리며 갑질을 해댄다. 가장 심한 곳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이들이 들끓는 정치판이다. 아무리 감춰도 금방 들통 나는 인터넷 세상인데 설치고 나대며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맹자는 한자리 구하는 것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많은 연봉, 높은 자리는 사양하고 가족을 부양할 생계비 정도의 보수와 낮은 자리를 얻도록 권한다. 그 시절 야경꾼이나 문지기가 이에 해당한다. (맹자 만장<萬章> 하편 5장) 그건 속세와 거리를 둔 은자들이 기꺼이 맡던 자리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느 가족이 이런 가장을 부끄러워 할 것인가. 오히려 그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고맙게 여기며 사랑할 것이다.

-아주경제 2017년 9월1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