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40 [칼럼니스트] 2017년 8월 3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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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 - 그 이상한 뒤안길(08):
'코리아 패싱'

양평 梁平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angpy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은 ‘우리말’인 셈이다. 영어 단어로 돼 있으나 영 미인들은 그 ‘뜻’을 모르는 반면 한국인들을 잘 알아먹는다. 그 뜻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이해 당사국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고 있다는 말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물론 그것은 한국인들이 영국인들보다 영어를 잘해서는 아니다. 영어 전문가들이나 영ㆍ미인들은 한국이 왕따 당했다고 하려면 Pass over Korea(한국의 존재를 묵살하여 건너뛰다)나 Cold-shoulder Korea(한국을 냉대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며 정 Pass를 쓰려면 ‘Korea has been passed over’가 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 왕따’ 정도로 해도 될 것을 굳이 영어로 된 말이 우리 사회를 휩쓰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것도 문법에도 맞지 않은 용어라면 더욱 심사가 뒤틀린다.

그 말이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더욱 그랬다. 지난 대선 TV토론회에서 미국 물을 먹은 안철수가 ‘된장 정치인’ 문재인에게 마치 면접시험 보듯이 ”코리아 패싱을 아느냐?“고 다그친 것이 ‘코리아 패싱’을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것은 정치적 의미를 떠나 별로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관심 밖이다. 지난날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우리 사회에서 판친 것이 한 두 번인가.

더 큰 문제는 코리아 패싱으로 말하려는 ‘한국 왕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래서 터무니없는 데 쓰이고 있는 점이다. 특히 보수세력이나 보수언론이 중도적인 새 정권을 공박하는 데 그것을 써먹는 것은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 자체가 코리아 패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온 것이라고 알 수 있다. 코리아 패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가장 큰 근거는 그것이 무슨 신조어처럼 비치고 있는 점이다.

한국 근대사를 들추어보면 ‘코리아 패싱’ 투성이지만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뿐이다..

예를 들어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뒤 그 마무리를 위해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톈진(天津)조약은 조선 문제를 다룬 것임에도 조선은 참가하지 못했다. 왕따 당한 것이다. 그 조약에서 청과 일본은 조선에 파병할 때 서로 통지한다거나 동시 출병하며 동시 철군한다는 등의 조항이 있어 10년 후에 청일전쟁의 단서가 되지 않았던가.

그 청일전쟁의 뒷수습으로 맺은 시모노세키(下關)조약도 청이 사실상 조선의 지배권을 포기한 것이어서 조선에게는 중대한 조약이었으나 조선은 참가하지 못했다.

그것이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면 1953년의 휴전협정을 미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 등 3개국이 당사국으로 조인하고 한국이 빠진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긴 임진왜란 때도 명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젖혀두고 정전협상을 벌였으니…

이렇게 말하다 보니 너무 까마득히 지난날의 이야기만 끄집어낸다고 말할지 모르나 실은 그 모든 것이 바로 오늘날 코리아 패싱과 밀착돼 있다.

톈진조약과 시모노세키조약 등을 거쳐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그들이 물러가면서 분단이 되고 그 여파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참전한 미군이 아직도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쥔 채 눌러앉아 있지 않는가.

그런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코리아 패싱을 벗어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휴전에 반대하던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은 그 ‘한국을 젖혀두고 패스하는’ 과정을 좀 멀게 했을 뿐 저지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2012년 4월17일까지 전시작전권을 환수키로 미국과 합의한 것은 그런 코리아 패싱을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국위’를 유난히 강조하던 보수 세력이 보인 반응은 어떠했던가. 그들은 노무현이 안보를 북한에 팔아먹었다고 방방 뛰었다. 당시 전직 국방장관들의 모임을 보여주는 사진이 새삼 눈에 선하다. 역대 병조판서들이 마치 사륙신의 모임을 떠올리게 하는 비장한 분위기에서 태극기에 경례를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전작권을 그 태극기 아래에 두지 말도록 탄원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들은 너무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다 4년 뒤인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나자 전작권 환수에 게거품을 물고 반대했던 이들이 또 한 번 방방 뛰었다. 그들이 왜 비행기로 북한을 폭격하지 않았느냐고 이명박을 비난한 것은 한국적인 걸작 트래지-코미디였다.

그들은 왜 주한미군 사령관을 놔둔 채 전작권도 없는 이명박을 비난했을까. 그 뒤에도 전작권은 천덕꾸러기가 돼 박근혜 시절 2020년 중반으로 환수가 연기돼 사실상 보류된 상태다.

그런 국면에서 보수신문들은 코리아 패싱을 들먹이며 왜 문재인이 태평한 표정을 짓느냐고까지 몰아친다.

실은 최근 북한의 ICBM발사를 두고 우리 매스컴들이 법석을 떠는 것도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마치 북한이 대륙간 탄도탄을 개발함으로써 북한의 침공이 목전에 다가온 듯이 떠드는 것이 말이다. 매스컴들은 북한이 사정거리 1000㎞의 유도탄을 개발했을 때는 불안해서 어찌 살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옛날 학생잡지에 나온 ‘깔 깔 깔’이라는 우스갯소리 한 편을 떠올리게 한다. 전투 중 한 병사가 뒤로 내빼자 소대장이 왜 내빼느냐고 묻자 그 병사는 ”지구가 둥글다니까 뒤쪽으로 돌아가 적을 포위하려구요“라고 변명한다.

북한이 남한에 바로 단거리 미사일은 쏘면 휴전선의 철책에 걸리니 장거리 미사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공격해야 하는 것인가. 따라서 북한이 대륙간탄도탄을 개발함으로써 한국이 ‘갑자기’ 그들의 미사일 사정권에 들어왔기에 그처럼 호들갑인가.

아니면 전쟁이 터질 경우 남한은 아예 핵탄두를 장착한 단거리 미사일로 초토가 되더라도 자유세계의 보루인 미국만큼은 무사하기를 기원해 왔는데 이제 미국 본토마저 위험해져서 그러는 것일까.

그럼에도 보수신문들은 외무장관이 휴가를 가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까지 들이대며 공박을 한다.

그들은 북한의 ICBM 개발과 관련한 또 다른 ‘코리아 패싱’을 주목하지 않는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남한을 공격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런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북한의 공격목표가 남한을 벗어나는 것으로 또 다른 ‘코리아 패싱’ 아닌가.

따라서 그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 ‘장군’을 한 것이나 막상 ‘멍군’을 해야 할 미국 대통령은 골프장을 갔다. 그런 한편으로는 미국과 북한이 지난 수개월 동안 뉴욕 채널을 통해 꾸준히 비밀접촉을 해왔다는 미국 통신들의 보도가 나온다.

북한에 금방이라도 원폭을 투하할 것처럼 비치는 트럼프가 오히려 버락 오바마가 폐쇄하다시피한 그 채널을 복원했다는 것도 희한하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국제사회의 흔해빠진 허허실실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국제 사회는 낮의 요란한 행사에서보다는 밤에 역사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제사태는 공식회의에서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외무장관은 절대 휴가를 가서는 안되고 대통령은…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그렇지 않다. 트럼프가 휴가를 간 것도 ‘멍군’에 해당한다.

나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의 의미가 가볍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복잡한 ‘한반도 바둑’에서 회심의 한수일 수는 있어도 결정적 승수일 수는 없다. 그 바둑이 언제 끝날지도 기약이 없다.

따라서 코리아 패싱을 극복하려면 장관이 휴가를 갔는지 마느니 하는 근시안적인 냄비 현상을 벗어나 긴 호흡으로 분단 국면을 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코리아 패싱’은 문법상의 미묘한 오류가 아니라 장님들의 오류 같은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오늘날 북핵이나 북한 유도탄을 둘러싼 국제협상에서 한국이 물을 먹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South Korea Passing’일 뿐 코리아 패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논의의 한 가운데 북한이 앉아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북핵’식으로 북한을 ‘북’으로만 표기하다 보니 우리는 까마득히 그들의 본명(North Korea)를 잊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앞서 휴전협정 조인에 한국이 참가하지 못한 것을 코리아 패싱처럼 말한 것은 나의 오류다. 물론 남한이 불참한 가운데 북한이 참가한 그 협정조인의 의미는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그런 면을 떠나서 보면 휴전협정은 조선이 반쪽이나마 조선의 운명을 가리는 조약에 처음 참가함으로써 운명적인 코리아 패싱을 극복한 첫걸음이라 할 수도 있다.

-2017.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