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38 [칼럼니스트] 2017년 8월 1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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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 - 그 이상한 뒤안길(07):
'광주민주화운동'- 아직 역사에 '접수'되지 않은 역사적 사건

양평 梁平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angpy


많은 사람들이 ‘광주사태’는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광주 현장을 지켜보았던 언론인 조성호(자유언론실천재단 감사)가 “…오월 이맘때가 되면 광주에 가 있었던 10일간의 체험이 슬픈 추억의 단편으로 잠재해 있다가 함성으로 되살아 난다” 고 회고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다만 어디서부터 규명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는 다소 답답한 느낌이다. 무슨 일이나 그것을 규명하는 첫 순서는 그 일의 성격을 말해주는 이름을 짓는 것임에도 ‘광주사태’의 제대로 된 이름을 짓는 데는 모두들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해서다.

그래서 ‘광주사태’는 30년 가까이 ‘5.18 민주화운동’이나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불리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이름에 길들여 순응하고 있는 기색이다.

하지만 내 눈에 그것은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다. 아니 모든 이름은 기본적으로 고유명사여야 하나 ‘광주민주화운동’은 우선 고유명사가 아니다.

민주화운동은 자유당 시절부터 서울은 물론이고 제주도나 울릉도를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있었던 현상이다. 민주화 운동이 꼭 거리에서 시위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광주사태에서처럼 총격적인 상황이 벌어져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자유당 독재에 맞서 뜻있고 유식한 이가 술자리에서 일반인들에게 독재의 부당함을 깨우치거나 교사가 넌지시 학생들에게 독재의 부당함을 강의하는 것도 민주화운동이다. 야학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광주에서도 그랬다. 광주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광주 학생 운동의 현장으로 자유당 시절에도 그 여세를 몰아 곳곳에서 다양한 민주화운동이 있었던 곳이다.

따라서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사람의 이름을 정해주지 않고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이를테면 광주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광주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인 셈이다.

아니면 5.18로 붙들려간 김대중을 감옥에서 ‘정치범’이라고 막연히 기록해 두는 것과도 같다. 물론 김대중을 ‘정치범’으로 기록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듯 광주민주화운동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김대중 사건’이라고 기록해야 제대로 된 역사지 ‘정치범 사건’이라고 할 수 없듯 광주사태도 ‘틀리지 않은 이름’이 아니라 ‘적합한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이란 말은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광주의 민주화 운동이 1980년 5월에 시작했다가 10여 일만에 끝났다는 말처럼 들린다.

민주화 운동만이 아니라 산업혁명이나 근대화처럼 역사상 장기적인 흐름을 특정한 이름으로 정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19세기에 영국의 요크에 거대한 신형 공장을 세웠다면 그것을 ‘요크 산업혁명’이라고 표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경부근대화운동’이라고 하거나 고속열차 설립을 ‘한국근대화운동’이라고 표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처럼 먼 사례를 들것도 없이 광주사태와 비슷한 ‘4.19의거’나 ‘4.19혁명’을 ‘4.19 민주화 운동’이나 ‘서울 민주화운동’으로 부르자고 하면 모두들 어떤 반응일까. 나아가 4.19의 서곡인 ‘2.28대구학생의거’나 뒤이은 ‘3.15마산의거’라는 명칭이 잘못됐다고 하면 또한 어떤 반응일까.

그러면 왜 광주사태에만 그런 두리뭉실한 이름 아닌 이름이 주어졌을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광주사태만이 그 운동의 대상이자 가해자가 건재해서다. 그 점에서 ‘대구학생의거’나 ‘마산의거’ 그리고 4.19로 그 운동의 대상인 자유당 세력이 몰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자유당 정권의 지지 세력이 뿌리 채 몰락한 것은 아니며 지금도 그 세력은 엄존해 있다. 그들의 계통을 굳이 따지자면 바로 광주사태의 대상 세력과 맥이 닿는다. 최근의 태극기 집회 등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자는 주장이 나돈 것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적어도 4.19 당시는 자유당 세력이 힘을 쓸 수 없던 상태였다. 반면 광주사태의 대상 세력은 아직도 건재하다. 얼마 전까지는 집권세력이었고 지금은 두 쪽으로 나뉘었어도 원내의 제1야당이다.

하물며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이 여야 간에 합의될 당시는 서슬 푸른 집권세력이었다. 그래서 1988년 10월 ‘5.18 국회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했으나 운동권이나 재야의 진보적 학자들은 ‘광주민주항쟁’이나 ‘광주의거’로 불렀다. 이중 ‘광주의거’는 1999년 5월18일 제19주기 5.18기념일을 맞아 김대중 대통령이 사용함으로써 이목을 끌었다.

나 자신도 개인적으로 ‘광주의거’가 오랜 세월 귀에 익은 ‘4.19의거’ 등과 맥이 닿는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뒤늦게라도 ‘광주의거’나 ‘광주민주항쟁’처럼 명확한 이름으로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도 광주사태가 정리되지 않은 역사여서다.

앞서 나는 광주사태가 ‘제대로 규명’이 되지 않았다고 했으나 정확히 말하자면 광주항쟁 자체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지난 5.18행사에서 6년 만에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자 관심있는 이들이 쾌재를 부른 것이 이를 말해준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 때까지 6년간 그 곡은 억눌려 제창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다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억눌렀던 보훈처장 박승춘이 정권교체로 물러나자 그 곡이 살아나듯 아직도 광주사태는 밀고 당기는 등 완결이 안 된 상태다.

그 곡을 싫어하는 사람이 박승춘 뿐일까. 나아가 그들이 사갈시하는 것이 ‘님을 위한 행진곡’만일까? 우리 사회에는 박승춘처럼 광주사태가 조용하다 못해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그리고 광주사태가 되도록 작고 희미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은 바로 광주사태가 여러 ‘운동’들 속에 뒤섞여 눈에 띄지 않도록 고안해낸 걸작이다.

그처럼 이름을 가지고 국민을 교란 시키는 수법의 맥은 5.16쿠데타에서 시작된다. 쿠데타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들은 현명했다. 교활한 독재자는 헌법만이 아니라 국어사전도 개정한다는 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킬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줄곧 국어를 ‘개정’했었다. 바로 국어를 써야하는 언론계에 있었던 우리는 그들의 하수인으로 국어를 바꾸었다. 예를 들어 유신 정부는 언론사에 ‘물가인상’은 ‘물가현실화’로 ‘데모’나 ‘시위’는 ‘학원사태’로 쓰라는 지침을 내렸고 언론은 충실하게 뒤따랐다.

그러고 보면 학원(대학)에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사태’속에 시위를 숨긴 수법이 광주항쟁을 수많은 ‘운동’속에 감춘 것과 맥이 같지 않은가.

광주항쟁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수십만 명이 제창했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무슨 북한 인민군의 노래나 아니면 큰 환란을 일으킬 마녀의 노래처럼 6년간이나 억누른 수구세력의 힘은 경탄할 만하다.

기왕에 있던 노래도 그처럼 못 부르게 억누르는 그들이 광주사태의 제대로 된 이름을 제정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할 것은 뻔하다.

하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세력에게는 유리한 점이 있다. 그것은 엄연한 상식의 문제이기도 해서다. 예를 들어 광주사태에 비교적 관심이 없는 ‘중립적’인 국민들의 눈을 빌릴 수도 있다. 광주 지역과 연고도 없고 딱히 그 문제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렇다고 기를 쓰고 광주사태를 백안시하지 않는 국민들의 눈에 ‘광주의거’나 ‘광주민주항쟁’이라는 말이 위험해 보이는가를 물으면 어떤 반응일까. 그것은 그들에게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중단시켜야 하는가를 물어보는 것과도 상통한 일이다.

물론 그런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아무런 말썽도 생길 수 없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이 6년간이나 억눌릴 리가 없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원용하자면 광주사태를 제대로 규명하려는 이들은 우선 제대로 된 이름을 지으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둔 채 그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어딘지 맹인들의 일을 떠올릴 수도 있다.

-2017.08.03 작성

* 양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한국일보 견습 25기)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