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37 [칼럼니스트] 2017년 8월 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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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 - 그 이상한 뒤안길(06):
’화냥년‘과 ’위안부‘- 異名同人의 異顔異生

양평 梁平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angpy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최근 김군자 할머니가 89 세로 별세하자 신문들은 “이제 남은 분들은 37명뿐”이라고 했다. 살아있는 실물 역사의 소멸을 안타까워하는 제목이다. 그것은 너무 흐뭇한 정경이다. 일제침략으로 많은 이들이 비극을 겪었지만 가장 상징적으로 고통을 받은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니 그래서 다른 한편에서 떠오르는 단어 하나가 있다. ‘화냥년’-. ‘화냥년’이라는 말이 병자호란 당시 청군에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환향녀와 위안부는 너무 닮은 역사의 피해자들이다. 둘 다 외국의 침략에서 비롯된 비극인 것이다. 이 땅의 남정네들이 못나서 죄 없이 죽음보다 심한 고통을 받은 여인네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위상은 너무 다르다. 우선 ‘화냥년’은 특수한 역사적 비극을 겪은 여성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가장 천박한 여성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같이 돼 있다. 여성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모독적인 욕으로 통한다.

그 점에서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위안부’나 ‘위안부 할머니’와는 천양지차다. 위안부들이 후일에라도 동포들에게 ‘위안’을 받았다면 환향녀들은 줄곧 죄인취급을 받아가며 삶을 마감하고도 욕으로 남았으니 너무 억울한 일이다.

그 내역을 들여다보면 환향녀들은 더욱 억울한 대목이 있다. 무능한 왕과 신하들은 남한산성에 몸을 피하고 도성은 이민족 군대가 점령한 상황에서 그들의 손에 걸리는 것은 오직 운명이었다.

경위가 그럼에도 ’환향녀‘와 ’위안부‘의 어감이 딴판인 것은 웬일일까. 우선 집히는 것은 당시와 오늘날의 ’순결‘의 가치에 대한 관념의 차이다. ’은장도‘라는 추상적이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인습의 칼날이 여성을 겨누던 그 시절에 순결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의무였다. 그러나 불과 4세기 미만에 그처럼 정조관이 바뀐다고는 보기 어렵다. 우선 ’화냥년‘이라는 욕이 아직도 통하는 풍토가 그것을 말해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화냥년과 위안부의 그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위안부의 가해자가 일본이어서라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다. 일본은 패전으로 물러가 일제 강점기는 과거가 됐으나 그 시대의 병폐는 청산되지 않은 현재로 남아 있어서다.

타이완에도 위안부들은 있었고 중국 대륙에는 그런 류의 여성 피해자들이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나 중국에는 소녀상 하나 없다. 지난해 상하이의 상하이 사범대 구내에 한중합작의 소녀상이 건립됐지만 중국인들이 자체적으로 건립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중국인들이 쓸개가 없어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반대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본토와 타이완이 이념적으로 대결은 했을망정 일제의 잔재인 친일파들을 단죄하는 데는 일치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경우 친일파들이 수난을 당하는 것은 TV의 3.1절이나 광복절 특집 드라마에서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 출신이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을 뿐 아니라 죽어서는 반신반인으로 궁전 같은 기념관에 동상이 버틴 채 기념우표를 발간하려 하는 것 등은 실은 표면적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난 사례일 뿐이다.

친일파들이야 말로 집도 부유해 많은 자손들이 해외유학 등으로 탄탄한 교육을 받아 그 여세로 출세도 많이 해서 이제는 그들이 조상을 애국자나 자선사업가 등으로 미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비친다.

우리 사회가 소녀상을 내세우는 배경에는 그런 추세에 대한 반발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그 소녀상이 나이가 들어 위안부 할머니로 하나씩 사라져 가도, 친일 세력들은 기가 죽거나 반성하기는커녕 갈수록 뻔뻔스럽게 조상들을 미화하기에, 그 할머니들을 대하는 기분이 더 한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위안부들은 한국 현대사의 2중 비극으로 마치 순국선열 비슷한 위상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화냥년이라는 말을 사전이나 일상용어에서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너무 늦은 ’교열‘이고 너무 늦은 치료는 안하느니만 못할 수 있다. 다만 오늘날 우리에게 ’화냥년‘은 완전히 극복된 역사적 과거일까. 다시 말하면 다른 류의 화냥년들이 생겨날 소지는 없을까?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화냥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화냥년‘은 우리 국민들의 비논리성과 동포의 비극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그 상처를 건드리는 가학성의 소산이다.

병자호란으로부터 4세기 가까이 지난 오늘날도 우리 사회가 비논리적이라는 실증은 최근의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의 대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처럼 극명한 흑과 백의 거창한 대결은 논리가 통하는 사회의 풍경이 아니다.

물론 논리가 배제된 대결은 맹목적 증오도 수반해 동포의 상처에 아픔을 느끼기보다 고소해 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그 대상이 여성이면 거침없이 ’화냥년‘이란 딱지를 발부할 소지가 있다.

-2017.08.03 작성

* 양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한국일보 견습 25기)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