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36 [칼럼니스트] 2017년 7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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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 - 그 이상한 뒤안길(05):
'광우병 소동'-失政이 보검으로 둔갑하는 나라

양평 梁平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angpy


‘광우병 소동’은 원래 이상할 것이 없는 말이다. 2008년 이명박이 미국을 다녀오면서 광우병 위험성이 있는 쇠고기 수입을 허용함으로써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사건이다. 하지만 그 뒤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나오지 않자 ‘광우병 소동’은 ‘진보세력들이 근거 없이 일으키는 소동’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그래서 ‘광우병 소동’은 역사적 사건을 뜻하는 고유명사와 진보세력의 한 ‘속성’을 지칭하는 추상명사의 두 가지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다만 중도파나 진보세력은 ‘광우병 소동’이 아니라 ‘광우병 시위’나 ‘광우병 사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반면 수구세력은 ‘광우병 소동’을 더욱 비하해 ‘광우병 난동’이라고도 부른다. 아무튼 광우병 시위 당시에는 쩔쩔매던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보수 세력이 갈수록 광우병 소동을 보검 같은 무기로 사용하고 있어 어쩌면 국어사전에도 올려야 할 판이다. 박근혜도 그의 탄핵 국면에서 정규재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순실 사태를 변명하면서 그것이 광우병 소동처럼 근거가 약한 것이라고 써먹었다.

‘광우병 난동’은 박근혜를 옹호하는 태극기집회에 엄청난 활력을 제공하기도 했다. 거기서 촛불집회는 ‘광우병난동’과 동렬의 터무니없는 선동으로 매도됐다. 이제 탄핵국면은 끝났으나 ‘狂牛病 소동’은 ‘狂愚病 소동’ 같은 것으로 낙인찍힌 채 진보세력의 주장을 공박하는 주무기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살펴보면 수구세력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광우병 난동’은 참으로 우스운 무기다. 마치 수수깡으로 만든 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더욱 두렵다. 그런 장난감 같은 칼이 보도처럼 쓰일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이 논리가 먹히지 않는 풍토임을 반증해서다.

광우병 시위를 비난하는 근거는 초등학생들도 판별할 수 있는 문법상의 오류에 바탕하고 있다. 그것은 ‘광우병이 일어날 수도 있는 쇠고기’를 수입하겠다고 해서 일어난 것이지 ‘광우병을 (반드시) 일으키는 쇠고기’를 수입키로 했다고 해서 일어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광우병으로 인한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해서 시위의 정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환자들이 있는 병원의 야간 당직의사가 밤중에 친구와 술을 마시느라 자리를 비웠다 해서 반드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사실이 적발되면 그 의사는 문책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그 의사가 ”아니,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잘못된 환자라도 있었단 말이냐?“고 되레 공박을 하면 어찌될까.

그것은 전방의 초소에서 2인 1조로 경계를 서던 두 초병이 마을로 내려와 술을 마시고 올라간 것이 적발됐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에 어떤 사고가 났는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은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광우병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광우병시위를 공박하는 것은 그런 의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매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당시는 세계의 어느 고명한 의학자도 위험부위의 쇠고기를 먹을 경우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따라서 국민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편작이나 화타 같은 명의의 의술이 있거나 미래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는 메시아의 예언력을 갖추라는 것이 아니었다. 위험의 소지가 있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대처하는 성실성만 보이면 국민은 만족이었다. 광우병의 경우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의 위정자들처럼 겁먹은 듯 조심스럽게 나아가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에 간 이명박이 갑자기 천재적 명의가 됐던지 아니면 예언자가 됐는지 그 때까지 금수대상인 30개월 미만의 소의 뼈를 수입해도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조치만 취하면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수입하기로 합의를 해버렸다. 더욱 기막힌 것은 미국에서 광우병 사태가 발생해도 즉각 수입금지 조치를 취할 수도 없도록 한 것이다. 그쯤 되면 그가 한국 대통령인지 미국 축산협회회장인지 구분이 어려울 판이었다. 광우병이라는 의학적 문제를 떠나 당시 이명박이 보여준 일련의 태도도 국민을 실망시키거나 격분시키기에 족했다. 우선 문제의 캠프데이비드에서 그가 부시와 함께 탄 차를 운전한 것도 썩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의문을 자아내는 행동이었다. 그 때까지 캠프데이비드를 찾은 수많은 국가원수들은 그런 식으로 미국과 친교를 증진할 수 있는 ‘비법’을 몰라서 쓰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것이 국가원수로써의 격에 맞지 않는 일이어서일까.

그래도 정녕 국가원수가 운전을 해야 한다면 주인(부시)이 손님(이명박)을 위해서 하는 것이 정도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였다. 그가 귀국 후 광우병 사태가 일어나자 ”나는 미국을 믿는다“고 한 말은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열광적인 기독교도’로 알려진 이명박은 또한 독실한 ‘미국교’의 신자란 말인가. 아무튼 이명박의 ‘믿음’은 번 번히 국민을 놀라게 했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서울기독청년들의 모임에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 합니다“고 함으로써 물의를 일으켰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도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저 어렴풋이 서울을 닭장차처럼 하늘나라까지 끌어 올려 하느님께 봉헌하면 죄 많은 나도 서울시민이기에 천당까지 무임승차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스치는 정도였다.

그러나 서울시민 가운데는 불교신자도 있고 그 가운데는 부부의 한쪽이 먼저 극락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배우자가 천당으로 가게 되면 이산가족이 되는데도 그에 대한 ‘후속조치’를 발표하지 않은 것도 문제일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런 사고는 없었기에 이명박은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석에서 미국을 믿는다고 발설하는 것은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것이 국가 원수가 할 말인가.

미국을 믿는다면 마피아도 마약밀매상도 그리고 축산업자도 믿는다는 말인가. 그 말에 답하듯 2012년 미국서 광우병 환자가 또 발생해 적어도 미국의 축산업자는 믿을 수없게 됐다. 당시 대선을 앞둔 박근혜도 검역중단을 주장해 파란이 일기도 했다.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 같은 이명박의 모습을 색다른 각도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의 대선 과정에서 말썽 많았던 BBK사건 수사에 미국 사법 당국도 관여했다는 점에서다. 아무튼 광우병 사건은 주권을 지키려는 국민들로써는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광우병 환자가 나오지 않자 거꾸로 광우병 시위를 몰아붙이는 수구세력의 논리부재는 한편으로는 우스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무식은 힘이다“는 구절이 떠올라서다. 갑자기 소설 속의 나라 ‘오세아니아’에서 그런 국시에 길들여진 주민들이 튀어나오는 듯 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그것은 광우병 소동을 둘러싼 논란을 떠나서도 우리 사회에서 자주 비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광주 사태가 북한군의 개입으로 발생했다는 주장도 그렇다. 5.18기념재단이 최근 조사한 결과 성인의 11.9% 그렇게 믿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11.9% -. 그것은 작은 수치다.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좌우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숫자는 너무 크다.

아직 목격자들이 많이 살아 있어 너무도 생생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돼 우리 국민들 가운데 400만 이상의 인구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무식은 힘이다“는 표어만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집요하게 퍼뜨리는 세력의 존재를 확인케 한다. 문제는 그런 그릇된 인식이 어느 지역이나 어느 계층 사이에는 11.9%를 훨씬 뛰어넘어 ‘대세’를 이루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반영한 그 현상은 자칫 ‘국어’의 분열로 떠오르는 느낌이다. 남북한이 오랜 분단 끝에 ‘국어’가 달라지듯이…

-2017.07.13 작성

* 양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한국일보 견습 25기)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