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35 [칼럼니스트] 2017년 7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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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유미와 이유미…그 다음은 ‘?유미’
양평 梁平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angpy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런 사건이 나면 나는 곤혹스러워진다. 그 사건들이 너무 비루하고 가증스러워서는 아니다. 대선과 관련된 일이라면 세상이 큰 일 난 것처럼 떠들썩함에도 나 자신은 왠지 놀랍지 않아서 곤혹스러운 것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어떤 중대한 진실을 못보고 있어서 그처럼 놀랍지 않은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내가 저승에 갈 날이 너무 가까워 놀라움이라는 반사 신경도 마비된 것 아닌가?”하는 불안감도 한 몫 하는 듯하다.

그럴 때는 엉뚱하게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라 브뤼에르의 “인생이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다”는 말을 떠올리며 자위하기도 한다. 물론 ‘인생’과 ‘정치현상’은 다른 말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그것 아닌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내고 사는 인생이니 정치가 곧 인생이고 따라서 정치도 생각을 하면 희극이 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 문제는 아무리 정색을 하고 생각을 해봤자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닌 것으로 다가온다. 마치 아파트 정문 앞의 눈에 익은 쓰레기통을 볼 때 분노도 희열도 느끼지 않듯 무덤덤한 잿빛의 무관심이 엄습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유미 사건은 눈길을 끄는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그 ‘유미’라는 이름이다. 그 이름이 1987년의 KAL기 사건의 범인 ‘마유미’라는 이름을 떠올려서다.물론 마유미는 이유미 식으로 성이 ‘마’씨고 이름이 ‘유미’였던 것은 아니다. 본명이 김현희(金賢姬)였던 이 북한 특수요원은 KAL기 폭파라는 특수임무를 위해 하치야 마유미(蜂谷眞由美)라는 일본식 가명을 사용했을 뿐이다.그럼에도 당시 매스컴은 ‘마유미’로만 부르다시피 해 ‘하치야’라는 성을 아는 이가 드물 정도였다.

이름 가운데 ‘유미’라는 두 글자 외에는 나이도 출신도 그리고 화제의 인물이 된 배경도 전혀 딴판인 두 여성의 일이 왜 눈길을 끌까. 둘 다 대선과 관련이 있어서다. 이유미가 대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아예 말할 것도 없는 일. 그러나 북한 공작원 마유미는 대선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그는 사건 당시 아마 ‘대통령’이나 ‘대선’이라는 말도 생소했을 것 같다.그럼에도 마유미가 1987년 12월16일의 대선을 하루 앞두고 처음으로 모습을 보일 때의 모습은 국민 모두의 머리에 각인돼 있다. 혀를 깨물어 자살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입에다 ‘재갈’ 같은 것을 물린 채 그는 나타났던 것이다.

사람이 혀를 깨물어 자살 할 수 없다는 것을 전문가들은 잘 안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전문가들이 ‘겸손하게도’ “혀를 깨물어죽는다”는 속설에 따라 줌으로써 마유미는 재갈이 물리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아마 별 것을 가지고 다 귀찮게 하니 앞으로 취조과정에서 고생문이 훤하게 됐다고 치를 떨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아니다. 마유미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던 바레인에서 조사가 끝나야 한다며 그를 놔주지 않자 그를 대선 전날까지 입국시키기 위해 거국적인 수단이 총동원된 것은 나름대로 잘 알려진 일이다. 아무튼 그런 노력으로 마유미는 본의 아니게 기득권 세력이 그처럼 갈구하던 ‘북풍의 여신’으로 나타났으니 그들에게는 얼굴도 아름다운 그가 ‘미의 여신’으로도 비쳤을 것이다. 자신이 이룩한 그 ‘위대한 공적’을 까맣게 몰랐을 마유미는 대선의 멋진 ‘소도구’였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일은 물론 그 ‘죄악성’까지 알고도 나선 이유미와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이유미도 대선의 소도구 같이 비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한국에서 대선이, 아니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갖는 절대성 때문일 것이다.그 엄청난 절대성으로 대선과정에서의 어지간한 부정은 철지난 대선 벽보처럼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그런 속에서 ‘소도구’ 같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공을 세우려 무리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사건들은 중국의 오랜 황권 다툼의 역사에서 있었던 “이기면 관군(官軍), 지면 적군(賊軍)”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중국 역사상의 수많은 격변에서 ‘정의’는 따로 없었다. 이기면 정의인 것이다.

중국의 수양대군 격인 명나라의 영락제가 황제인 조카에게 반란을 일으켜 성공에 이르렀던 과정이 좋은 예다. 주원장의 넷째 아들(본명 朱체)로 베이징 부근을 다스리던 연왕이었던 그는 조카인 건문제를 치러 당시의 수도인 난징으로 진격했다.그 과정에서 주체가 거쳐 지나가야 했던 수많은 제후들의 관심은 건문제와 주체의 어느 쪽이 옳으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이길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공식이 통용돼왔다.1979년의 12.12사태라는 쿠데타 상황에서 ‘적군(賊軍)’으로 분류돼야 할 쿠데타 참가자들은 그 뒤 ‘개국공신’으로 영화를 누린 반면 쿠데타에 저항한 참된 군인들은 죽거나 부상당하지 않으면 ‘적군’ 신세가 돼 감옥에 가야했다. 따지고 보면 ‘혁명’으로 포장된 5.16쿠데타 상황에서도 그 비슷한 일들은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이 일어났다.

그런 관점에서 이유미 사건을 보다 샅샅이 살펴보면 그 사건은 얼핏 보기처럼 간단치 않고 따라서 싱겁지도 않다.만일 이유미의 ‘폭로’작전의 영향으로 문재인이 아슬아슬하게 낙선했으면 그 사건의 귀결은 어찌됐을까.우선 그 조작사건 자체가 이번처럼 쉬이 알려질 수 있을까도 의문스럽고 알려져도 그 사건이 제대로 처리될 수 있을지는 더욱 의문이다.

여기에다 그로 인한 승자가 이유미가 바랬던 대로 국민의당의 안철수가 되느냐, 아니면 이번 대선에서 2등을 한 홍준표가 되느냐를 가상해보면 그 답은 커다란 블랙홀같은 고차방정식으로 빨려들어 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답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도 세상의 모습은 내다보인다. 지금까지 수많은 대선이 있었고 그 때마다 부정 시비가 없었던 경우는 드물다.그러나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식으로 부정선거라는 소리는 있어도 청와대에는 들리지 않아 대통령은 임기를 마쳤다.

박근혜도 국정원 댓글 사건 등으로 물러난 것은 아니다.그가 물러나기 오래 전에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을 파헤치려던 특별수사팀장이 좌천당한 것으로 그 사건은 매듭이 지어졌다.그 뒤 정권이 바뀌어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자 언론들은 “사필귀정!”이라면서 마치 드골 장군이 파리에 개선한 것처럼 찬사를 보냈지만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미국의 1972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선됐으나 대선과정에서 공화당 당원들이 민주당 시설에 도청장치를 하려다 들통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권좌를 물러나야 했던 것이 기억나서다.정당의 당원들이 당을 위해 그릇된 충성을 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도 당선된 대통령이 물러난 것이다. 만일 미국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CIA나 FBI가 그런 사건에 개입됐다면 미국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아마 남북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난리가 나거나 적어도 링컨이나 케네디가 암살당한 사건처럼 나라가 들썩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약 30년 전 마유미에게 재갈 쇼를 부린 정보기관이 댓글 쇼를 부려도 대통령은 ‘관군 총수’로 건재했다. 그런 마당에서 보면 마유미나 그 30년 뒤의 이유미나 흔히 보는 ‘대선 소도구’들일 뿐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기보다는 차라리 쓰레기처리장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라”는 식으로 말하자면 둘 다 쓰레기 장미 밭에서 자라라는 장미 대신에 솟아나온 잡초 정도로 보면 될 일이다.

이유미 사건이 적발돼 당사자들이 처벌됨으로써 이제 그런 사건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될까. 그래서 우리 대선의 역사가 쓰레기더미에서 벗어나 장미 넝쿨 속을 달리게 될까. 왠지 고개가 흔들린다. 우리나라에 성씨가 워낙 많은 데다 ‘유미’라는 이름도 흔해서 또 무슨 ‘유미’가 나올지 몰라서다.

또 한 가지 회의는 그 모든 것은 국민의 수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5년만에 국민수준이 환골탈태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대선과 관련된 시비를 보면 마음속에는 잿빛의 무관심이 자리 잡는다.

2017.07.07 작성

* 양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한국일보 견습 25기)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