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33 [칼럼니스트] 2017년 5월 1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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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 - 그 이상한 뒤안길(03):
‘血盟’- ‘종교’의 경지에 이른 짝사랑 외교

양평 梁平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angpy


‘태극기 집회’를 보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국기를 내세울 상황이 전혀 아닌 국내 문제에서 국기를 내세운 집단이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기 이전에 우리 국민들이어서다. 국기를 내세우는 것은 통상 대외적인 상황에서다. 전쟁이나 국제스포츠 경기처럼 외국과 대결하는 경우에 주로 등장하고 국제적인 친선모임에서도 쓰인다.

미국 국가도 1814년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하던 상황에서 영국군의 포격을 받고도 꿋꿋하게 휘날리는 맥헨리 요새의 성조기를 보고 법률가이자 시인인 프랜시스 스콧 키가 작사한 것이다. 그 성조기가 미국의 국내 대결에서도 쓰인 적은 있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이를 휘둘렀던 것이다. 다만 그 때는 남부연합이 성조기를 인정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남부연합기를 제정해 휘둘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당시 미국에는 일시적으로 두 나라가 생겨 제각각 자기네 ‘국기’를 휘두른 셈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탄핵 문제가 제기됐을 때 탄핵 찬반의 어느 쪽도 성조기를 휘두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근혜 탄핵이라는 순수한 국내정치 문제에 태극기가 동원됐으니 망연자실할 일이었다. 그것은 월드컵 같은 국제경기가 아니라 전국체전에 태극기가 동원된 것만 같다. 그렇다면 박근혜 탄핵을 주장한 사람들이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연합군 같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세력이어서 일까. 태극기 집회측은 촛불집회가 ‘종북 좌파’의 소행이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믿는 이는 거의 없다.

아무리 수구적 논조를 자랑하는 언론들도 이들 ‘종북 좌파’들이 태극기를 부정하고 남부연합기 같은 별도의 국기를 제정하려 한다고까지는 주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순수한 태극기 집회라면 망신이라도 집안 망신이니 크게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부끄러운 진짜 이유는 ‘태극기 집회’가 아니라 ‘성조기 집회’여서다. 이렇게 말하면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가 좀 끼었기로서니 그것으로 ‘성조기 집회’랄 수 있느냐는 항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학적 비례가 통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쌀밥에 모래가 1% 만 섞여 있어도 그것은 쌀밥이 아니라 ‘모래 밥’으로 불리거나 아예 ‘밥’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밥에 도저히 끼어서는 안 되는 모래처럼 한미친선모임이 아닌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가 끼어든 자체가 황당하다.

어떤 태극기 집회에서는 테니스코트처럼 널찍한 성조기를 수십 명이 붙들고 가고 그 주변에 자그마한 태극기가 들러리서듯이 나부끼기도 했다. 그것은 얼핏 미국의 ‘51번째 주’의 어떤 행사에서 연방기(성조기)와 ‘州旗’가 함께 어울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집안 망신’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미국인을 비롯한 모든 외국인의 눈에 그것은 어떻게 비쳤을까.

새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발끈해온 우리의 모습이 우스워졌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온 이유는 너무 어지럽지만 그런 것을 다 챙기고 싶지는 않다. 나는 태극기 집회가 끝난 뒤 찌부러진 태극기 쓰레기들처럼 어지럽게 널린 그 많은 말 가운데 ‘혈맹’이라는 말에 새삼 눈길이 끌렸을 뿐이다.

‘혈맹’-. 그 말은 실은 ‘성조기 집회’ 이전부터 나의 뇌리에 복잡한 파문을 일으켜 왔다. 우선 ‘혈맹’이라는 말뜻이 혼란스러워서였다. 굳이 한영사전 같은 것을 들추면 ‘혈맹’이 ‘blood alliance’라고 나오나 과문한 탓인지 영문에서 그런 말이 실제로 쓰이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혈맹’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 상황은 더욱 한심하다. 이론상 ‘혈맹’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을 부르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막상 ‘태극기 집회’, 아니 ‘성조기 집회’에 참가한 이들에게 ‘혈맹’이 누구를 지칭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미국’이라고만 할 것 같다. 다시 말해 '혈맹'은 미국의 별칭이 돼 있다.

하지만 보다 큰 문제는 미국인들에게 “당신들의 ‘혈맹’은 어느 나라냐?”고 물으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어리둥절해 할 것만 같다. 우선 ‘혈맹’이라는 말이 낯설어 그렇고 그 뜻을 알고 난 뒤에는 그들의 무수한 ‘혈맹’ 가운데 어느 나라를 내세울지 막연해서다.

20세기 이래 세계의 큰 분쟁 가운데 미국과 관계없는 분쟁이 거의 없었으니 미국의 혈맹들은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한국 동포나 기타 한국과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는 미국인이 한국을 ‘혈맹’이라고 내세울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혈맹’이라는 말이 통용되건 않건 미국이 그 말의 의미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 역사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에서 미국의 가장 큰 혈맹을 꼽는다면 독일군에게 가장 많은 국민이 희생당한 소련일 것이다.

그러나 2차 대전이 완전히 종결되기도 전에 소련이라는 최대의 혈맹은 ‘잠재적 주적(主敵)‘이 되고 태평양전쟁의 주적이었던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소련 등 공산세력을 막는 보루가 됐다. 한마디로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냉엄한 국제 정치의 진리 앞에 혈맹은 빛바랜 췌사일 뿐이다.

우리와 처지가 가장 가깝고 관계도 얽혔던 남부 베트남을 보자. 그들의 패망이 돌이킬 수 없게 되자 미국은 수상쩍은 파리평화협정을 남부베트남 정부에 강요하다시피 한 뒤 철군했다. 말이 평화협정이지 그것은 호랑이꼬리를 베트남의 ’혈맹‘에게 쥐어주고 줄행랑친 것이었다. 그래서 곧 패망한 이 ’혈맹‘을 위해 미국이 한 일은 보트피플들을 좀 후하게 받아준 정도였다.

베트남인들을 위해 한 가지 다행한 것은 그들이 무식해서인지 무심해서인지 ’혈맹‘이라는 말을 몰랐거나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배신감이 적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는 그들이 우리보다 한걸음 앞선 느낌이다. 하지만 혈맹이란 말을 모르거나 아는 것 자체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성조기 집회처럼 ’혈맹‘을 내세워 타국 국기를 거의 신앙의 대상처럼 떠받드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탁(神託)을 구하듯 혈맹을 찾는 것은 부끄러움을 넘어 현기증이 날 정도다. 기가 막힌 것은 평소 ’국격(國格)‘을 몹시 내세우는 이들이 강력한 타국에게 ’혈맹‘이라는 ’인연‘을 빌어 “우리나라 대통령 탄핵받지 않게 해달라”는 식으로 성조기를 휘두르는 정경이었다.

나라건 개인이건 상대가 별로 챙기지 않는 인연을 너무 강조하면 우선 남사스럽다. 이를테면 자신보다 훨씬 부자거나 권력이 있어 자신을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돈을 줄곧 '사돈'이라며 가까이 하려 들면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기 마련이다. 나라의 경우라고 다를 리 있는가. 그럼에도 일부 계층의 ’혈맹‘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그들은 박근혜가 탄핵에 이어 구속되자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의 선거운동에 성조기들을 동원하고 있다.

심지어는 트럼프가 한국에 사드 비용 10억 달러를 내라는 무뢰배 같은 요구를 해도 성조기 사랑, 아니 성조기 신앙은 시들 기미가 없다. 그러다 보니 새삼 ’혈맹 사랑‘의 공과가 궁금해진다. 다시 말해 성조기 집회로 한국이 미국의 한 주처럼 보이는 등 국격이 실추된 것은 도외시하더라도 그것으로 우리는 실속이라도 차렸을까 하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과의 사드 비용을 둘러싼 협상 등에서 성조기 집회는 어떤 작용을 할까. 트럼프는 물론 그 요란한 성조기 집회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사드 흥정을 할 때 그는 한국인들의 ’성조기 신앙‘이 갸륵해 낮추어 요구했을까. 다시 말해 원래 10억 달러를 훨씬 상회한 금액을 요구하려다 10억 달러를 요구했을까.

아니면 한국의 그 성조기 신앙에 자신을 갖고 원래보다 더 많은 액수를 더 당당하게 말한 것일까. 물론 그것은 가상이다. 그러나 사드 비용만이 아니라 다른 외교 현안에서도 성조기 집회는 은연중 미국의 대한 외교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셈법으로는 그 결과가 비관적이다. 한국이 한국전쟁 당시처럼 원조물자를 받아야 하는 처지도 아닌데다 10억 달러 수준으로 국가 부도가 날 상황도 아니라면 트럼프는 국내 생색용으로라도 더 많이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성조기 집회와 정반대의 상황을 가정해보면 쉬이 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1960년 미일안보조약 파동으로 일본 전역이 반미열풍으로 끓어올라 당시 일본을 방문하려던 아이젠하워가 발도 못 붙인 채 한국으로 날아왔던 상황이라면 ’사드 비용‘이라는 말도 꺼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극한적 상황이라지만 그런 경험만 있어도 자세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것도 ’혈맹 사랑‘의 한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다. 나는 혈맹 사랑의 가장 큰 걱정은 그것이 우리의 안보 자체에 손상을 줄까 이익을 줄까 하는 의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모두들 혈맹을 다지는 것이 어찌 안보에 손실을 줄 수 있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우리는 안보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보다는 ’혈맹 타령‘만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혈맹 타령에 마비돼 우리의 안보 현실을 잊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반증으로 우리는 북한보다 몇 배나 잘산다고 으스대면서도 막상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 기가 꺾인다. 그것은 북한이 핵무기 실험을 하기 전부터 전해진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 것에 대한 변명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북한은 오직 침략 전쟁 준비만 해서 상대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인구가 두 배인데다 경제력이 몇 배나 되는 쪽이 국방에 자신을 못 갖는 것은 좀체 보기 드문 중병이다. 그러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배경에는 ’혈맹‘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군복무를 외면한 사람들이 대통령을 할 수 있는 ’별천지‘가 되기도 하고…

한국전쟁 당시 태어난 ’혈맹‘이란 단어는 이제 회갑이 지나 고희를 바라보게 됐으나 우리는 안보 미성년자처럼 ’혈맹‘타령만 한다. 그 철석같은 혈맹 신앙은 베트남이라는 미국의 혈맹이 사실상 버림받아 보트피플이 전 세계 바다를 떠다니는 것을 보고도 식을 줄 몰랐다. 아니 우리는 더 목청 좋게 ’혈맹‘이라는 주문을 외웠다.

그 뒤 올림픽도 개최하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도 가입했으나 혈맹 타령은 여전하다. 그것은 국격이 손상돼 창피하기 이전에 손실이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남에게 몸을 기대듯 떠맡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우방이 없듯" 천사도 자선가도 없는 것 아닌가.

마침내 대선이다. 5명의 후보가 모두들 나라를 때 빼고 광내겠다고 목청을 돋군다. 나는 그들의 그 현란한 공약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조그마한 부탁을 하고 싶다. 그것은 한국이 67세가 넘은 만학도로서 ’혈맹‘사랑과 신앙을 졸업하도록 하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우리는 혈맹 시대와 타국 국기 신앙을 지양한다면 그것은 OECD에 가입하는 것 못지않게 국격을 올리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는 그것으로써 국제사회의 '성년'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대통령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우리 국민들 모두가 지난날의 '혈맹'이었던 베트남을 '선진국'으로 삼아 혈맹을 졸업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2017.05.07 작성

* 양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서울경제신문 문화부장,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한국일보 견습 25기)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