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28 [칼럼니스트] 2016년 12월 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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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國共合作
양평 梁平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angpy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 좋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날 때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럴 때 나는 별도의 생명을 부여 받은 것처럼 기껍다.

이렇게 말하면 현직대통령이 피의자로 낙인찍힌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기 십상이나 그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과 연관은 있다. 지난 19일(2016년 11월)의 시위에서 나타난 장면이 그랬다. 다만 그것은 광화문일대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친 60만 군중의 시위가 아니다. 그곳과 멀지 않은 서울역 광장에서 박사모 등 수구단체들이 가진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시민의 외침’에서다.

그 모임의 참가자들이 “조선일보는 빨갱이”라고 외쳤다는 소식이 내게는 이승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것은 “히틀러는 빨갱이”라고 외치는 소리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히틀러가 빨갱이라고 외쳐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나치(Nazi)’가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zialismus)’의 약자로 처음에는 ‘나조(Naso)’로 출발하려다가 이름에 힘이 없다 해서 ‘나치’로 정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사회주의자가 ‘빨갱이’냐 아니냐 하는 어려운 논쟁은 그만두자. 다만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기간을 통해 빨갱이 소탕에 종사하던 이들에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하는 눈은 없었다는 사실만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빨갱이를 엮을 수 있는 새끼줄은 없다. 해방 전에는 일본의 파시스트적 군국주의를 찬양했던 이 ‘민족지’는 그 뒤 반공을 내건 군사정권에 가장 든든한 우군이기도 했다. 그런 조선일보에게 빨갱이라고 외쳤으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이날 조선일보가 시위 군중들의 입살에 오르내린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서울역 시위대와는 반대편의 시위 군중 가운데 한 중학생은 “조선일보는 일제하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기여했다”고 비난했다.

그러고 보면 이 날은 조선일보의 날이기도 하다. 양쪽에서 모두 정반대 성격의 비난을 받은 셈이니 그 위상이 새삼 증명된 것 아닌가. 달리 말하면 그것은 조선일보가 ‘안팍 곱사등이’ 신세가 됐다기보다는 오늘날 한국에서 조선일보가 차지하고 있는 막대한 비중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최순실의 비리가 확연히 드러나 보수신문들이 더는 가려줄 수 없다고 판단하자 조중동도 일제히 이를 들쑤셨다. 그러자 이 신문들의 댓글부대들은 모두 ‘자기네’ 신문들을 향해 빨갱이라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서울역 광장 모임에서는 조선일보만이 ‘대표’로 그 비난을 받은 셈이었다.

이날 조선일보가 받은 이 두 가지의 상충된 비난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열쇠를 함축한 셈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지난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1등 공신이었던 이 신문이 오늘날 청와대를 향해 가장 강력한 포화를 날리고 있다. 그것은 ‘결자해지(結者解之)’로 봐야할까?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중학생은 왜 조선일보의 ‘먼 과거’만 이야기했을까. 바로 4년 전 그 독신 여성정치인을 마치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독신의 여걸 엘리자베스 1세처럼 치켜 올려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점을 왜 지적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 중학생의 일만도 아니다. 이번 시위의 참가자들은 왜 박근혜·최순실에게만 포화를 집중하고 그를 당선시킨 1등 공신들을 외면했을까. 그 ‘백만 대군’은 기억력이 4년 미만의 공룡이란 말인가. 그들은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앞장서 박근혜를 공격하는 등 ‘전향’을 한 데 감격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 그날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청와대를 향해 엄청난 포화를 쏟아 부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박근혜 정권의 종식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반갑고도 또 한편 두려운 모습이기도 했다. 그들의 오랜 친구인 진보 언론보다도 수구 언론들의 화력이 몇 배나 센 데서 느끼는 두려움인 것이다.

나 자신도 최근의 최순실 소동을 맞아 처음으로 종편의 주파수를 알게 됐고 조중동을 인터넷으로 읽게 됐다. 그런 나의 눈에 수구 언론이 진보 언론보다 화력이 훨씬 세게 보이는 것은 선입감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젠 기억도 희미하지만 지난날 수구 언론은 보다 높은 보수룰 주며 보다 많은 인원을 고용했으니 전력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진보 신문보다 우세했다.

그런 형세는 아직도 바뀌지 않아 최순실 국면을 맞은 보수신문들과 진보신문들의 화력 차이는 현대식 소총과 화승총의 차이까지는 아니어도 연발총과 단발총의 차이는 되어보였다. 여기에다 보수 신문들은 TV까지 있으니 그 전력 차이는 아예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긴 그 우열이 지난 두 차례의 대선을 통해 이미 입증된 바는 있다. 그래도 이 국면에서 ‘다행’인 것은 진보 언론과 수구 언론은 ‘국공(國共)합작’을 하고 있다. 어디가 ‘국’이고 어디가 ‘공’이냐고? 그야 물론 수구적 댓글부대들로부터 오래전부터 그칠 뉘 없이 ‘좌빨’로 불리는 진보 언론이 ‘공(共)’이고 박근혜의 당선을 위해 진력을 하다 최순실 국면을 맞아 ‘일시전향’한 수구 언론이 ‘국(國)’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루어졌던 두 차례의 국공합작은 처음부터 깨질 운명이었고 마침내 처절하게 깨졌다. 1924년의 1차 국공합작은 군벌들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 이듬해 쑨원(孫文)이 사망하자 그 다음해 장제스(蔣介石)의 배신으로 공산당은 광동 일대에서 큰 피해를 입은 채 양측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기 시작했다. 1937년에 이루어진 2차 국공합작은 일본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것도 1941년 국부군 8만 명이 홍군인 신사군(新四軍) 1만 명을 기습해 괴멸적인 타격을 입힘으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 언론의 이 국공합작도 깨질 운명이다. 그 시기도 멀지 않았다. 박근혜는 가도 새누리당과 이를 뒷받침하는 보수 세력들은 남아 있기에 내년의 대선 이전, 보다 정확히는 보수진영의 대선 후보가 나오기 전에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은 갈라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한동안 억울하게 ‘좌빨’로 매도되던 수구신문들은 본연의 모습으로 또 한 번 전향을 할 것이다. 따라서 그 모양새는 중국의 국공합작이 결렬되는 것처럼 ‘국’쪽이 ‘배신’이나 ‘전향’을 하는 듯 비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도덕적으로 따질 일은 아니다. 수구 신문들이 일시 헤매다가 '초심'으로 돌아간 것은 환영해야할 일이다. 그럼에도 기분이 요강으로 물을 퍼 마시듯 개운치 않은 것은 광화문에 모였던 그 ‘백만 대군’의 박약한 기억력 때문이다.

신문들이, 그것도 ‘유력지’이자 ‘민족지’들이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하듯 마음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언론링크’는 언제나 바뀔 수 있을까. 그래선지 이번 두 차례의 대형시위에 집결한 ‘백만 대군’보다도 조선일보의 과거를 문제 삼은 어린 학생의 모습이 더 대견스럽다.

그것은 어딘지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이 발가벗었다”고 외치는 어린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중학생들이 커나가면 우리나라 언론의 링크도 한 언론이 멋대로 ‘묘기’를 부릴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급격한 전향을 하는 게 겁나서 처음부터 지나친 ‘우회전’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남아있는 수구 댓글부대들이 “조선일보 빨갱이”라고 외치면 그것은 우리 역사의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이다. 국공합작이 깨져도 중국이 통일되듯 한국 언론이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영원한 국공합작’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싶으니 염라대왕님이시여….

-2016.11.23 [마르코 글방]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