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1 [칼럼니스트] 1625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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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 여진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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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 통신 33 일본 큐슈 사가현 지진 2016년

지난 4월 일본 지진 겪은 얘기를 하면 참 사람들이 흥미를 보였다. 마치 지진 경험담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처럼, 비록 돈을 받고 들려준 것은 아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여행은 몇 달 전 미리 예정된 여행이었다. 큐슈는 일본 남쪽이라 지진 안전지대로 알려져 있으며 누구도 지진을 예측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국민을 믿고 따르게 하는 일본 기상청도 나중에 이번 지진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우리 여행은 4월 13일부터 17일까지 남쪽 큐슈지방을 철도로 이동하는 여행이었다.

사가현을 택한 것은 임진왜란을 시작한 가라쓰, 끌려간 도공들이 모여 살며 도자기를 만들었다는 아리타, 이마리, 일본 도자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한국인도공 이삼평의 발자취를 보러 놀러간 여행이었다. 옆 현에는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있었으나 나는 나가사끼, 즉 유럽의 문물이 들어왔던 도시를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중간 쯤 갔을 때 어느 호텔방 화장실에 있는데 천장이 흔들리더니 저 구석에 있는 텔레비전이 흔들렸다. 나는 지진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래서 무슨 공사를 하거나 무슨 기계가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이들이 뛰는 줄 알았다. 그래서 피곤도 하고 해서 그날 밤 그냥 잤다. 호텔 프론트에서 일행을 만나니 전날 밤 지진이었다는 것이다. 집을 맡길 때 호텔 프론트 직원에게 일본어가 되는 사람이 물어보니 괜찮다고 그랬다. 일본인에게 지진은 일상처럼 느끼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날 구경할 동안 짐을 프론트에 맡겼다. 직원이 별로 귀중품도 없는 내 배낭을 꼭 껴안는 것이 보였다. 안심이 되었다. 몇 해 전 쓰나미 났을 때 시골 동회에서 주민들에게 끝까지 대피방송을 하고 자신은 미처 피하지 못해 죽었다는 해외토픽의 젊은 여직원이 떠올랐다. 구경을 하고 다음날은 내 주장대로 다른 조그만 도시의 일본 다다미 민박집을 갔다. 이층에서 자고 밤에 있는데 무슨 확성기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지신데스, 지신데스’ 큰 소리로 외쳤다. 지진하고 발음이 비슷해 나도 알아들었다. 옆 사람이 이거 지진 아니야, 우리 일층으로 내려가야된다고 말했다. 일본 다다미집은 움푹 가운데가 패어있기도 한데 이 집은 가운데 천장에서 내려오는 철제 난로줄 같은 것이 있었다. 잠결에 보니 이 철제 줄과 거기 달린 무슨 그릇 같은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덮고 있던 담요를 마치 망토처럼, 나중에 누가 우리 모습이 거적때기를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고 묘사했다. 아래층 사람들도 놀라 깨 텔레비전을 켠다.

나는 일본어 알파벳과 약간의 인사말 밖에 모른다. 그래도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안경 쓴 일본 기상청 과장이 나와 차분하게 무슨 말을 하고 자막이 나왔다. 옆 사람이 ‘이 지진이 진정됐다는 증거가 없다’라고 한다고 통역해주었다. 그리고 일본 수상 얼굴이 보였다. 곧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진을 피해 나온 사람들, 지진 현장이 보였다. 그런데 그 엄청난 사건을 보여주는데도 말하는 톤이 차분해서인지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한국에서 가족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또 왜 어느 전화에서는 확성기 소리가 나고 어느 전화에서는 톡이 안 되고 문자는 잘되고, 등등 각자 가지고 있는 전화가 왜 다르게 기능하는가에 대해 서로 묻기 시작했다. 나는 배터리 아낀다고 전화기를 꺼놨다가 불통. 그러나 같이 여행하는 사람 전화번호를 써놓고 왔다. 학교 다닐 때 비상연락망 교육을 받은 덕이다. 그 사람 전화로 내 소식을 묻는 문자가 왔다. 연락 좀 해달라고.

그날 밤 저녁을 먹어야하는데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다. 택시 운전사가 자기 전화로 여기저기 전화해 밥 하는 곳을 알아내 주었다. 고마웠다. 남편이 요리하고 아내는 아기를 업고 음식을 날라주었다. 배가 고파 잘 먹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기차역으로 가니 우리가 타야할 기차는 끊겼다고 한다. 그래서 나가사키는 포기하고 다음날 돌아오는 비행기가 뜨는 후쿠오카 공항으로 가자고 버스를 타자고 결정했다. 택시 기사가 말했다. 난니모 나이데스.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간이 버스 역에서 몇 시간 기다리느라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예정에 없던 후쿠오카에서 자야하니 숙소를 예약하려고 일행이 분주했다. 빈방이 없단다. 할 수 없이 비싼 방이 나와 있기에 그거라도 잡았다. 버스가 왔다. 타고 후쿠오카에 도착해 호텔 숙소에 오니 안심이 되었다.

그 다음날 시간이 남아 박물관 구경을 하는 데 날씨가 너무 화창했다. 나중에 공항에 가니 그 옆 온천지역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줄서 있었다. 유학생들도 짐을 싸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경험담을 들으니 지진이 참 무섭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행히 예정대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 후 계속 여진 소식이 들렸다. 구마모토 성이 무너졌다는 소식도 들렸다. 나는 여진이 무서운 줄 그 때 알았다. 그 당시 지진도 무섭지만 일단 금이 간 상태에서 건물에 여진이 오면 쉽게 무너진다. 그 때 사상자가 더 난다. 일본에서도 그랬다. 지진 전문가들의 집단인 일본 기상청도 백프로 맞히지는 못한다, 그래도 숨기지는 않는 것 같다. 밤중에 텔레비전에 나온 기상청 전문가의 말을 믿고 다시 잠을 잤으니…….

얼마전 경주 지진이 났을 때 근처에 사는 친구가 전화해 16층에 산다면서 무서워 저녁에 두 시간 동안 밖에서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여진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내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자기 집 밖에 물건 쌓아두는 일도 위험한 것 아닌가 싶다. 여름에 쓰던 선풍기 냉장고 등등 몇 달째 자기 문 밖에 두면 지진 나면 다 위험한 것 아닐까? 더구나 땅을 들쑤셔 만든 오십층 짜리 아파트에 산다면 말이다.

-2016.09.21

* 필자는 헤이즐넷 온라인 중고서적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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