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30 [칼럼니스트] 1614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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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의 일생 2015년 상반기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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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 모종을 봄에 심었을 때 될까 싶었다. 시장에서 너무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야채인데다 맛도 사실 크게 없다. 돈가스 집에서 바싹하게 튀겨 나온 돼지고기 옆에 채 썰어져 나온 것이 싱싱할 경우 그나마 제일 화려한 모습이다. 흔하고 저렴한 편이라 쉽게 보이지만 무겁기도 하고 막상 해먹으려면 할 게 없다. 볶아서 먹으면 고소하긴 하지만 양배추가 쉽게 숨이 죽지 않는다. 뻣뻣한 야채이다. 볶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손쉽게는 양배추를 쪄서 밥에 싸 먹으면 된다. 양배추 잎을 한 장 한 장 씻어 쪄 본다.


양배추 김치도 괜찮다. 배추 구하기가 어렵거나 배추 값이 뛰면 배추김치 대용으로 양배추 김치를 담그면 좋다. 소금에 약간 절였다 고춧가루 조금 휘휘 넣어 주물러 유리병에 담아 놓고 먹으면 야채샐러드 비슷한 약식 김치이다. 제일 매력적인 점은 양배추가 위에 좋다는 사실이다. 위장약 만들 때 양배추가 들어간다고 한다. 어쨌거나 입에는 땡기지 않아도 몸에 좋으니 먹어 둬야 하는 야채이다.

천원 어치 모종 세 개를 4월 7일 봄에 심어 7월 21일 수확했다. 경제적인 투자로 보면 정말 돈이 안 되는 일이다. 처음에 보니 이파리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벌레가 찾아와 잘도 먹는다. 6월 21일까지 그랬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처음 난 겉 이파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음에 나는 잎은 괜찮겠지 하고 보니 또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아, 안 되는 구나. 포기하기로 했다. 상추는 벌레가 먹지 않아 키우기 좋다. 농약도 안 치고 거름도 안 주고 햇빛과 바람과 물에 맡겼더니 양배추에는 벌레가 찾아와 포식한다. 알이 차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양배추는 단단해져야 하는데 구멍이 숭숭 난 채 겉절이용 비슷하게 자랐다.

그러던 중 7월 들어 양배추 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양배추 속 가운데가 단단해지는 듯 보였다. 가운데가 정말 단단할까? 상추, 치커리, 쑥갓 등 생명이 다한 야채를 다 뽑은 다음 양배추도 뽑기로 했다. 잘 뽑혀지지 않았다. 장마 오면 물러진다고 했다. 그런데 뿌리가 은근히 세게 박혀있다. 겨우 뽑았다. 집에 와 가운데를 칼로 잘라보니 속이 들었다. 다행이다. 씻어서 맛을 보니 괜찮다. 손쉽게 물을 넣고 찌기로 했다. 양배추를 쪄서 쌈으로 먹을 생각이다.

양배추 모종 심어 3개월 후 수확해 보니 경제적 가치는 별로 없다. 천원 투자해 몇 천원 만들면 돈으로 남는 건 별로 없다. 경비 생각하면 정말 남는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성취했다는 기쁨이 남는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동안 무사히 살았다. 햇빛도 쬐고, 메르스도 안 걸리고, 마스크도 안 쓰고 다니고…….

내가 텃밭 3년 동안 안 심어 본 것은 고구마이다. 고구마는 멧돼지가 좋아해 산에서 내려와 고구마만 파 먹는다고 했다. 멧돼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동물 발자국을 내 밭에서 본 적이 있다. 벌, 나비, 개미, 곤충은 낮에 보았다. 그러나 멧돼지등 산짐승은 인적이 없는 밤에 내려와 주말농장 밭을 공격한다. 키우던 오리도 산짐승이 먹었다고 한다. 멧돼지가 출몰하였으니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하는 방송을 서울에 사는 나는 들은 적이 있다. 멧돼지를 만나면 놀라지 말라는둥 대처법도 산길에서 읽은 적이 있다.

고구마는 심지 말라고, 멧돼지가 좋아해 산에서 내려와 파 먹는다고 얘기해도 처음 밭하는 사람 중 꼭 심는 사람이 나온다. 자기는 괜찮겠지, 아니면 흘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른다. 혹시 자기가 고구마 좋아하는지도.....

2015년 7월 23일
(*필자는 헤이즐넷 온라인 중고서점 운영
헤이즐넷 온라인 중고서적
http://www.yes24.com/24/usedshop/mall/hazelwoo/m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