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613 [칼럼니스트] 2015년 6월 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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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라는 공룡을 어찌해야 할까
-[영어교육의 인문적 전망](김길중 외)을 읽고-

박강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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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영어 강박증은 심하다. 국민병에 가까울 정도인데, 증상이 실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교육열 높은 학부모 중에는 자식이 영어 배울 때 혀를 잘 굴릴 수 있도록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가기 전에 혀밑을 수술해 주어야 할까 어쩔까를 고민하는 이도 있다고 들린다. 우리 사회 분위기는 마치 ‘영어를 잘하는 자는 살 것이요, 못하는 자는 죽으리라.’는 정도의 비장감마저 준다. 우리 국민은 학생 시절 사생결단하다시피 영어를 공부하지만, 대부분 사회에 나가 업무를 수행하게 될 때 보면, 기능적인 영어 실력이 허무하게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잘못된 것이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능란하게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영어가 안기는 심신에 대한 압박, 의식의 혼란, 가계 부담, 국력 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개인에게는 상급학교 진학과 취업에 그치는 것일까. 국가가 국제적 경쟁력을 지니려면 모든 국민을 영어에 능숙하도록 가르쳐야 할까. 영어를 왜 배우는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영어를 왜 가르쳐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책이 2014년 가을에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나온 『영어교육의 인문적 전망』(김길중 외 13인)이다. 집필자는 대학의 영어교육과 및 영어영문학과 교수들, 그리고 중등학교의 영어 교사들이다. 이들은, 영어를 왜 가르치는가와 영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하여 여러 해 동안 집담회를 열어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었으며 집필을 체계적으로 분담했다. 국어 및 영어 등 언어 환경에 관해 관심을 지니고 저널리스트로서 몇 편의 짤막한 글을 썼던 내게 이 책의 등장은 아주 반가웠다. 우리 사회의 이상한 영어만능주의, 터무니없는 영어섬기기, 기능주의에 편중된 영어교육 등에 대하여 정작 관련 학계와 교육계에서 담론이 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까를 내심 기이하게 여겨온 터였다.

한국의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파고들고 반성하는 이 책은 교육자들에게 관점과 시야를 넓히는 울림이 될 것이며, 대학생은 물론이려니와 관심 있는 일반 독서가에게 유익하고 흥미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게 할 교양서로서 받아들여질 만하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왔던 문제들을 끄집어내 보이기도 하고, 영어와 관련해서 처지가 우리와 비슷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이기도 하는데, 읽기에 재미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영어교육의 현실에 대한 검토와 비판이다. 영어를 왜 가르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제2부와 제3부는 영어교육의 원칙을 중등학교 및 대학의 영어교육 현장에서 탐색하고 적용하기다.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궁리한다.

영어교육자들은 두 가지 갈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인문적 가치냐 기능주의냐, 다른 말로 하면 교양성이냐 실용성이냐다. 이 갈래는 곧 이상과 현실의 간극과 비슷하다. 물론 이 책의 저자들은 인문적 가치 쪽을 중히 여기고 이를 실제 학습지도에 적용하려 한다. 이 책의 대표 저자 김길중은 기능주의 영어교육을 ‘유혹’이라 부르며 그 매력과 폐해를 지적한다. 영어학습자를 언어기술자로 만들려는 기능주의의 강조가 영어 수준의 전반적 제고에 공헌한 만큼 그 맹목성이 교육문화의 파행과 왜곡의 심화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한 예로 ‘원어민’ 담론을 꼽는다. ‘원어’란 ‘모국어’인데 남의 모국어는 모시면서 정작 내 모국어는 더욱 외면하는 역설을 꼬집는다.

김길중 저자의 말을 더 들어 보자. “우리나라에서 영어 강박이 더욱 심한 까닭은 실제 현실에서나 사람들 사이의 통념에서나 그 자격이 외국어인 것이 분명한 영어를 제2언어로 생각하는 착각과 혼동에서 비롯한다.” 그는 국가의 영어 역량 키우기가 필요하지만, 보통교육 수준에서 전국의 청소년을 강박하지 말고 그 이후의 단계에서 필요와 의욕을 동원하여 사회의 영어교육 서비스 기관이나 대학 일부가 그 과제를 맡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아이들을 무차별로 고생시키며 영어 기능인으로 만들려 하지 말고 나중에 일부 대학이나 학원에서 필요한 사람만 집중적으로 더 배우게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말한다. “보통교육에서는 언어를 통한 인문 소양에 좀 더 집중하는 책략이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시민을 배양하는 길일 것이다.”

신문수 저자는 ‘영어만능주의’를 비판한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날로 높아가고는 있지만, 그 인력의 확보만으로 국제 경쟁력이 향상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국제 경쟁력 강화에는 영어 능력 못지않게 창의적 사고를 통한 기술 혁신과 상품 개발, 금융제도의 합리화, 경제 활동을 원활하게 할 사회 인프라의 구축, 법과 제도의 정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외화 위기, 한미 자유무역협정, 쇠고기 파동 등으로 국제적인 협상을 할 때 한국의 대처가 미흡했던 것은 영어 능력 부족보다는 관련 전문 지식 결여에 있다는 주장에 그는 동조한다. 영어만 잘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영어만능주의의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누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나 대화의 정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어 그 목표가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무역과 통상의 현장에서 국가 경쟁력을 드높일 수 있을 정도의 영어 대화 능력이라면 공교육을 아무리 강화하더라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간단한 인사말 정도의 영어 능력을 상정했다면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막대한 비용과 사회적 노력을 지불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신문수는 복거일 등의 영어공용화론을 거부한다. 복거일이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고 주장한 데 대해서, 국립국어원 계간지 『새국어생활』(2000.봄)에 반론을 썼던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대목이 아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불고 있는 영어강의 붐에 대한 신문수의 부정적 의견에도 공감한다. 10년 남짓 대학 강의를 맡았던 내 경험으로는 한국어로 설명해도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학생도 많은 여건에서 영어로 했을 때 얼마나 강의 내용이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교수의 전달 능력도 문제다. 이 문제와는 좀 다르지만, 나는 초ㆍ중등학교 교사가 되려면 이수해야 하는 교수법 및 교육평가 과목을 전혀 수강하지 않고도 교수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교사들의 영어 수업 방안들을 읽으면서는, 내가 중ㆍ고교 국어 교사를 한 경험해서인지, 재미있는 대목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영문 이름은 Toward a Humanist Reorientation in English Language Education in Korea.

- [敎育評論] 2015년 6월호(통권2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