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5 [칼럼니스트] 1610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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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얻어야 한다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어느 추운 날이었다. 야채가게에 과일을 사러갔다. 이른 아침이었다. 만원어치 과일을 사가지고 돌아올 때 눈발이 날려 버스를 타고 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눈발이 날리자 그 버스 정류장은 지붕이 달린 새 정류장인데도 눈발이 옆으로 날려 들어왔다. 싸라기 같은 정도라 맞을만한 정도였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던 꼬마가 손으로 의자를 닦았다. 그 정류장에는 그 꼬마 외에는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과일 산 보자기가방을 눈을 치운 그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옆 자리를 또 닦는다. 나는 비로소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거 나 때문에 하는 거니?’ 사실은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랬더니
‘네, 맞아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앉았다.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말이 걸고 싶었다.
‘이쪽으로 가면 학교가 있니?’
‘네, 있어요!

버스가 오자 나도, 그 아이도 버스에 올라탔다.

얼마 전 케이블에서 ‘가위손’ 영화를 틀어주어 다시 보았다. 또 울었다. 가위 손으로 눈 조각을 하면서 눈발 같은 얼음이 휘날리자 소녀는 그 눈을 손으로 만지며 춤을 춘다. 늙어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눈이 오면 그 생각을 한다. 눈 조각을 하고 있을 가위손을…….

그래서일까 버스 정류장에서 날더러 앉으라고 의자 위 눈발을 손으로 닦아 주었던, 어깨에 가방을 메고 등교하던 아이가 생각난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아이를 위해 그 초등학교에 가서 영어 자원봉사라도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백만 원의 연금이 보장된 사람들이 유학으로 돈을 다 날리고 온 고학력자에게 자원봉사 운운하면 토가 나올 것 같아 한 번도 하고 싶지 않았던 자원봉사 일이다. 나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먹고 살려고, 안 잘리려고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 상대가 장관 아버지 재벌 아버지 장관 할아버지 재벌 할아버지를 두고 태어났다 하자. 설사 대기업의 임원이 되어 수백 명이 탄 비행기를 돌리고 수백 년 왕궁 옆에 여학교 옆에 초고층호텔을 짓는다고 하자. 또 백화점에 가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써서 소위 말하는 VIP 로서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을지언정 마음은 차갑다. 그 비싼 xxxx 백을 들고 외국 단체 여행에 참가하여 그 비싼 백을 왠지 수건으로 칭칭 감고 다니는 사모님이 여행지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아무도 그 테이블에서 밥을 함께 먹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 사모님은 백은 얻었어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사모님에 대한 사회의 미움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전 인터넷 김 여사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동영상을 보니 사모님들이 운전하는 행태에 관한 것이다. 그 여파로 정말 필요해 운전해야하는 주부들은 ‘쌀사러 나왔습니다'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고 해 웃은 적이 있다.

나는 대형마트에 잘 가지 않는다. 차를 몰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주차장이 좁아 사람과 차가 뒤엉켜 난리이다. 주차장 입구에서 허리를 굽혀 절하는 어린 청년은 걸어가는 나에게도 절을 한다. 민망하다. 백화점도 안긴다. 화장안한 사람에게는 대꾸도 안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다음부터 가지 않게 되었다. 또 무슨 조사한다고 집전화로 전화 걸어 연령대를 물어봐 대답했더니 끊었다. 구매력이 없는 연령대인 것이다. 집에서 대답하는 사람들은 구매력이 없는 연령대가 많아 다른 연령대가 필요하다 한다.

한 번은 식당에 갔다. 식당 옆자리에서 주부 두 명이 밥을 시켜놓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우리 남편 똥밟았대. 아무도 안 받는다는 40대를 불쌍해서 받았더니 일도 못하고…….내가 받지 말라고 했는데도 받더니…….’
그 남편이 정말 고위직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혹시 김 여사로 인터넷에 동영상이 뜨는 것이 아닐까?

또 나는 주위에서 xxx톡 안한다고 민폐라는 소리를 듣는다. 자기들 공짜로 잡답하거나 모임 공지할 때 나에게는 자기 돈을 내고 문자로 따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잘라라 라고 말했다. 구매력이 없는 계층, 즉 VIP가 아닌 사람들은 사람도 아닌 사회, 돈이면 대필시켜 책도 내고 박사학위 논문도 쓰고 아이 숙제도 대신해내고 그 사람의 능력을 서류로 완벽하게 꾸밀 수 있는 사회이다. 그러나 정작 배가 가라앉을 때, 착하게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은 서류는 완벽해도 능력이 없는 지도자 때문에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가 흔들릴 때 농사짓던 농부가, 절에서 수행하던 승려가 창을 들고 나가 적을 무찔러 나라를 구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지도자가 자기는 살고 다리를 끊어 버리고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 이제 돈으로 현재의 사회적 강자가 된 VIP는 돈으로 나라를 구할까 아니면 안전한 외국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갈까? 정말 기분이 꿀꿀하다. 그럴 때면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다가 서 있는 나를 보자 옆 자리 눈을 치워 만원어치 과일 장바구니를 들고 서있던 나를 앉으라고 하던 그 아이의 마음을 떠올린다. 앞으로 살아갈 동안 나도 무언가를 붙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2015년 1월 8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