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5 [칼럼니스트] 제1605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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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 십중팔구는 뜻대로 안 돼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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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좌석에서 한 친구가 자신의 우울증이 꽤 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너나없이 비슷한 상황이라는 말로 다른 친구들이 받아 넘겼다. 이렇게 어지럽고 정신없는 세상에 멀쩡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비정상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뉴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빈발하고,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이에 기인한다는 안타까운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트레스, 무한 경쟁, 우울증, 무기력증, 힐링이니 하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렇다고 쉽게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수많은 원인이 있지만 현실과 개인의 욕구가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만 그런 게 아니다. 일찍이 800년 전 중국 송나라 방악(方岳 1199-1262)도 그의 시 ‘별자재사령(別子才司令)’에서 “세상에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십중팔구고, 말이 통하는 사람도 두셋이 되지 않는다(不如意事常八九 可與語人無二三)”고 탄식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부딪치지만, 그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은 두세 명도 안 된다는 것이다. 외로움 속에서 홀로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병이 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관계전문가들은 흔히 무기력증이나 우울증 앓는 사람은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워 차근차근 달성해가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동료, 선배와 관계를 잘 유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자주 나누라고 한다.

말인즉 타당하고, 방법도 옳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 방악의 시에서 잘 드러난다. 일이 제대로 풀리기는커녕 갈수록 꼬이기만 하고, 앞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 세상 천지에 같이 얘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 구조가 그런 것이다. 방악이 이 시를 쓰던 시절은 지금보다 모든 것이 더 느슨하고 완만해도 그랬는데, 무한경쟁에 살인적인 속도로 내몰리는 오늘날에야 더 말해 뭘 하겠는가.

‘세상에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십중팔구’라는 말은 본래 중국 진(晉)나라 명장 양호(羊祜 221년 ~ 278년)가 처음 썼다. 삼국시대가 거의 막을 내리던 서기 276년, 진나라는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끝내기 상대인 오나라와 대치중이었다. 유비의 촉나라는 망했고, 조조의 위나라도 사마염에게 뺏겨 진나라로 바뀐 뒤 천하통일이 눈앞에 이른 때였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오나라와 협정을 맺자는 측과 이 기회에 밀어붙여 통일을 이루자는 측이 대립하고 있었다. 양호는 오나라 임금 손호가 포악하고 방자하여 민심이 그를 등지고 있으므로 정벌하자고 건의했다. 만약 손호가 자연사하고, 훌륭한 인물이 권좌에 오르면 통일은 물 건너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양호가 공 세우는 것을 시기한 세력의 반대로 이 계획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때 양호가 이렇게 한탄했다. “천하에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항상 열 가운데 여덟, 아홉이나 되는구나.(天下不如意事 十常居八九)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니 어찌 뒤에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한탄하지 않겠는가? ”<통감절요 제25권 한기(漢紀)>

양호는 지혜와 덕도 뛰어나 휘하의 병사들은 물론 일반백성들까지 존경했다. 그가 죽었을 때  백성들은 철시한 채 울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임금도 통곡할 정도였다. 그렇게 인심을 얻은 양호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 깊은 절망과 외로움을 느꼈는데 보통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이때부터 양호의 말은 전쟁뿐만 아니라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는 명언이 되었다. 그리고 방악의 시에서 이를 용사(用事. 인용하여 사용)해 세상을 진단할 때 반드시 등장하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란 2할이 될까 말까하니 그렇게 알고 살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다는 뜻이다.

야구에서 3할 타자면 우수한 선수로 꼽히는 점을 이와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왜 열 번 타석에 들어서서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다. 야구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도 그렇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이 인간인 한 욕구와 현실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마음속 깊이 새겨두지 않고, 자기 잣대로만 가늠하고 기대하며, 잘 안 되면 불평한다.

결산의 달, 섣달이다. 결과가 불만인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야구나 세상의 이치를 되새기며 자신을 달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에 집착해 속을 끓이면 자신의 몸과 마음만 상하게 할 뿐이다.

-국민일보 2013년 12월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