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3 [칼럼니스트] 1603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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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건5 -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hazelwoo


돈이 있으면 무죄로 풀려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유죄가 된다는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 라는 말은 먼저 감옥 안에서 떠돌던 말이었다고 한다. 12명의 미결수가 호송 중 탈주했으나 마지막 남은 네 명은 탈주 9일째 결국 서울 북가좌동 가정집에서 경찰과 대치하게 되고 이들은 우리 사회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 국민에게 터뜨렸다. 1988년 올림픽을 연 자부심으로 들떠있던 한국은 이 범죄자들의 자살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듣고 법의 형평성 문제를 인지하게 된다.

이들 중 한 명인 지강헌은 긴박한 대치 중 영화처럼 경찰에게 팝송 테이프 ‘할리데이’를 요구한다. 이 슬픈 멜로디의 노래를 들으며 지강헌이 인질인 그 집 딸을 옆에 두고 결국 자신의 목을 긋고 만다. 그는 ‘돈 없고 권력 없이 못 사는 게 이 사회’라고 울부짖었으며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두 사람은 이미 다른 방에서 자살을 했다. 총소리가 났고 이 상황이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이들 탈주범들은 자신들처럼 돈 없는 사람들만 무거운 형기를 받고 감옥에서 청춘을 썩힌다는 울분과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치하던 네 명 중 세 명이 그 날 죽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제일 어린 강영일은 살아 19년 만기복역 후 출소했다. 인터뷰를 통해 유전무죄에 관한 얘기도 들을 수가 있다.

1988년 10월 8일 탈주한 뒤 강영일이 보낸 편지(신동아 2013년 3월 유일한 생존자 강영일 인터뷰 기사)를 보자. “나는 법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단다. 무식해서 한자는 잘 모르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우리나라 법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단다. ○○야, 방송에서 떠드는 만큼 우리는 흉악범이 아니란다…’라고 썼다고 한다.

이 사건의 사회적 파장은 컸고 2006년에는 이 영화 같았던 실화를 바탕으로 진짜 영화 ‘할리데이’도 만들어졌다. 영화 스토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좀도둑인 지강혁(이성재)은 빈민촌 대치상황에서 악랄한 형사에게 동생까지 잃고, 형량 7년, 보호감호 법에 의거 10년의 형량을 받아 도합 17년 동안 감옥에서 썩어야 할 운명이다. 감옥에서 만난 교도소 부소장(최민수)은 다름 아닌 동생을 총으로 쏴 죽인 형사. 지강혁은 호시탐탐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을 죽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김안석은 그런 지강혁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이미 소설로도 불공평한 형기 얘기가 나온 바 있다.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잡혀 징역 5년, 여러 차례 탈주시도로 모두 19년의 형을 살고 나온 장 발장(Jean Valjean)은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인물이다. 노동자가 가난과 배고픔, 가엾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를 다루고 있다. 주교의 집에서, 한밤 묵어가던 날, 은접시를 훔쳐 갔지만, 주교가 용서해주어 그 심성은 완전히 교화된다.

우리가 실제 인물 지강헌의 1988년 무전유죄 유전무죄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평범하고도 잘 알려진 사실이라 생각한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읽으면 돈 권력 말고도 인맥과 학맥으로 인해 형량이 결정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잘 알 수 있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을 때 사회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안타깝게도 범죄자들의 외침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 말은 지금 우리 사회가 고개를 끄덕이는 현상이 되었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왜냐하면 법은 약자가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한성대신문 11월 18일 발행
그 때 그 사건 다섯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