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7 [칼럼니스트] 제1602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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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稀보다는 從心으로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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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사람들 상당수가 나이 70을 일컫는 고희(古稀)는 이제 90이나 100살로 상향조정하고, 종심(從心)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즘 70세는 너무 흔해 의미가 많이 퇴색했기 때문이다. 반면 70이 넘었는데도 사회 어른으로서 품위를 갖추지 못한 이들이 많다. 따라서 나이 자체보다는 그에 걸맞은 행동을 중시하는 종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고희는 두보의 시 ‘곡강(曲江)’ 중에 나오는 “술빚은 가는 곳마다 흔하지만, 인생 칠십년은 예로부터 드물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주채심상행처유 인생칠십고래희.行을 ‘항’이라 읽기도 함)에서 유래했다. 반면 종심은 논어 위정(爲政)편 4장에 나오는 “일흔 살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나이 70을 고희 또는 종심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고희는 알아도 종심은 잘 모른다. 종심은 공자가 한 말이라 너무 고원해서 보통 사람들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불편한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종심소욕불유구’는 자연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知天命) 50살과 상대방 말을 받아들일 줄 안다는 60살 이순(耳順)을 지났으니 이제는 세상 이치에 밝아져 법에 저촉되거나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 행동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나 그 경지에 이를 수는 없지만 노력하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이 대목의 핵심 메시지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보면 이와 달리 무례한 이들이 꽤 많다. 한 예로 지하철을 들 수 있다. 가능한 한 출퇴근 시간을 피해 직장인들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용해야 하는데 아랑곳하지 않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그 뿐인가. 차가 들어오면 자리를 노려, 승객이 내리기도 전에 밀치고 들어가거나, 경로석이 다 찼다는 이유로 일반석 앞에서 어정거려 젊은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딱하고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휴대전화 사용도 문제가 많다. 나이 들면 청력이 떨어지므로 목소리가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내 주변 어느 분은 음성통화보다는 문자메시지 사용을 늘려 남에게 주는 피해를 줄이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달리 안하무인으로 떠들고 통화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흘러간 명화를 주로 상영, 노인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하는 실버극장에서는 휴대전화를 끄거나 진동으로 해놓으라고 날마다 당부해도 일부 노인들은 쇠귀에 경 읽기다. 심지어 공자 맹자를 읽겠다고 오는 서당 사람들 가운데도 옆 사람이 도리어 민망할 정도로 뻔뻔하게 전화를 사용하고, 이를 나무라는 사람과 시비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경제, 건강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급증하고 있어 걱정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은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각자 조금만 노력하면 될 일이다. 거창하게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노인으로서 분수만 지켜달라는 것이다.

서울 어느 동네에서 나이 든 분이 여유가 좀 있어 집의 지하 공간을 노인들 사랑방으로 내놓았다. 사설 경로당인 셈이다. 누구든지 틈나면 와서 편히 시간을 보내라는 뜻이었다. 대부분 개발되기 이전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이들이 이용하므로 화기애애하게 즐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툭하면 싸우는데 언쟁의 내용을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공중도덕 결여 때문이었다. 대개 남을 배려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었다.

 “‘상놈은 나이가 양반’이라는 말? 천만의 말씀이에요. 그보다는 ‘세살 버릇 여든까지’란 말이 맞아요. 대부분 어려서 하던 못된 짓을 못 고쳤더라고요. 그런 이들이 지하철이나 극장에서 어떨지 뻔해요” 거길 드나들던 한 분이 혀를 차며 나이 70이 고희보다는 종심이어야 한다는 데 적극 동의하며, 자기계발이나 봉사활동 같은 것은 차치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데 신경 좀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분이 일부 극단적인 예를 들며, 과격하게 비난한 점이 없지 않지만 큰 줄거리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종심소욕불유구’는 바로 최소한의 예절을 지키는데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열쇠가 아닐 수 없다.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한,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추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일보 2013년 11월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