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2 [칼럼니스트] 1601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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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건4 - 봉고 신화
우혜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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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요즘도 봉고차라고 불리는 승합차는 원래 기아자동차가 만든 승합차 이름이었다. 승용차보다는 크고 버스보다는 작은 12인승 차가 봉고라는 브랜드로 처음 선을 보이자 몇 가족이 함께 놀러갈 때 한 차에 탈 수 있는 이 봉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 마을버스 같은 크기 비슷한데, 자그마하면서 모두 다 앉아서 가는 이 이동 차량은 자영업자들의 사업용으로도 유용했다. 그런 승합차가 국내에서 처음 나온 것이다. 당시 기아산업은 1981년 누적적자가 5백억에 달해 망할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 정도였다. 그러나 봉고차 출시로 1년 만에 1982년 39억 원의 흑자로 돌아서 위기의 기아산업을 살렸다. 그래서 봉고신화라고 명명되었다.

하나의 물건이라도 시장이 원하는 대로 제대로 만들어 내놓으면 죽어가는 회사도 살린다는 예이다. 기아산업은 1944년 삼천리 자전거에서 출발했다. 설립자 김철호는 두발로 가는 자전거를 만들다 세발 삼륜차 소위 딸딸이를 만들어 한국에서 기술의 기아라는 기업정신을 세웠다. 국산승용차 브리사도 만들어 한국의 자동차문화를 주도하게 된다. 그리고 1958년 공채 1기로 들어온 기계과 출신의 김선홍이 기계를 만지며 일하다 1987년 최고경영자가 되는 등 자본과 경영을 분리시켰다.

또 기아산업은 우리사주라 하여 기아산업 주식을 사원이 액면가 5백 원에 살 수 있도록 하였다. 기아가 위기였을 때 액면가 5백 원이던 기아산업의 주가는 2백5십 원이었다. 사원들마저 주식이 휴지가 될지 몰라 팔 것을 고민할 정도로 봉고차가 나올 당시 기아는 위기였다.

1981년 정부는 자동차공업합리화조치를 발표했다. 여기저기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아는 승용차 부문에서 탈락하고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전문생산업체로 지정된다. 당시 승용차 생산을 하던 기업이 승용차 생산을 하지 못하게 되자 봉고를 만들어 팔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원래 기아는 마쯔다와 포드가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도 했지만 초창기 기술을 마쯔다로부터 배워와 발전시켰다. 브리사도 그랬고 이 봉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동차는 그냥 들여올 수가 없고 새 제품을 내려면 몇 년의 준비가 필요하다. 기아는 이 봉고를 몇 년 전부터 준비하고는 있었다 한다.

문제는 이 봉고라는 이름이 마쯔다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한국에서 봉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봉고라는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다른 이름으로 변경해 발전된 승합차를 선보였으나 다들 봉고라고 불렀다. 1986년 베스타가 봉고후속으로 나왔다. 그러다 1987년에는 프라이드를 내놓는다. 6년 만에 승용차시장에 복귀한 것이다. 마쯔다, 포드와 힘을 합쳐 만든 모델인 이 프라이드를 타면서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좋아했다.

또 위기가 닥쳐왔다. 김선홍 사장이 떠나고 1998년 국제입찰에서 포드가 안 되고 결국 한국의 현대가 기아자동차를 품게 되었다. 먼저 시작했고 잘 만든다고 기업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경쟁상대와 정권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1944년 설립된 기아가 공중분해 되지 않고 아직도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이 자동차를 만들지 못하던 시절 남의 나라 자동차를 들여와 뜯어서 설계도를 만들었던 엔지니어들의 긍지와 기술이 DNA로 흐르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한성대신문 2013년 11월
그 때 그 사건 네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