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8 [칼럼니스트] 제1597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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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와 한문해독력
박연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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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한자는 꽤 알았어요. 명심보감 수준이지만 한문도 좀 읽었고... 그래서 서예를 해도 큰 무리가 없겠다 싶어 퇴직 후 배우러 다녔는데 얼마 되지 않아 대단한 착각이란 걸 알았어요” 서당을 6년째 다닌다는 한 분이 어느 날 허탈하게 웃으며 심정을 털어놓았다.

서예를 배우러 서실에 나가 글씨 쓰는 법을 열심히 배웠다. 예전 습자시간에 괜찮게 쓴다는 칭찬도 더러 들었던 만큼 생각보다 빨리 늘어,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면서도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늘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건 다름 아닌 쓴 글의 내용이었다. 자신이 충분히 해독하고, 소화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준 글을 그대로 쓰는 건 별 문제가 없는데 그 해석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풀이를 해주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유명 문장일 경우 관련 서적을 보면 되지만 그건 해독력과 별개였다. 서실의 다른 동료들도 비슷했다. 한 마디로 내용은 모르고 글씨만 그리다시피 베끼는 꼴이었다.

그는 ‘선생 자신도 모르는 글을 회원들한테 쓰도록 하는 게 싫어서’ 서실을 떠나 서당을 찾아 온 것이다. “한 6개월 다니면 자유자재로 한문을 읽게 되리라 믿었어요. 그러면 다시 글씨를 쓰리라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6개월은커녕 6년이 지나도록 문리(문장해독력)가 나지 않으니 한심하군요.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거지요.”

그 분처럼 서예를 하다가 같은 이유로 서당을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며 고민들을 한다.

이에 대해 서당 선생님 한 분이 진단했다. 즉 한문에서 글을 읽고 짓던 文과 글씨를 쓰던 書가 분리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것이 일원화돼 한문 읽으면 으레 서예를 하고, 서예 하면 당연히 문장을 지을 줄 알았다. 최근까지도 원로 한학자들은 그냥 붓으로 쓰면 그 자체가 서예작품이었다.

그러나 어문환경이 바뀌면서 서예 따로, 한문 따로가 되었다. 한문으로 문장 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예작품을 보면 본문만 ‘그려놓고’, 이를 짧게 설명하는 방주(傍註)를 붙인 경우는 드물다. 대신 쓴 날짜나 자기 호 정도를 겨우 써놓는다. 심한 경우 자기가 쓴 작품을 한참 지난 뒤에는 못 읽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반면 한문만 읽으러 다니는 우리 같은 경우는 활자로 인쇄된 글만 읽지, 붓으로 쓴 글은 깜깜하다. 암호 같은 초서는 말할 것도 없고 행서, 전서도 까막눈이다. 서당 선생님, 한문 교사, 교수들도 한문과 서예를 겸한 이가 드물다. 한문교육 전통이 무너진 탓이다.

서당 수강생 가운데 한문, 서예 양쪽 다 능한 인간문화재 같은 이들이 더러 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서예를 포함한 한문교육을 받은 덕이다. 정규교육의 미비점을 가정에서 보충한 복 받은 이들이다.

선생님 진단에 따르면 내용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고, 글씨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스승 조광진이 어느 날 새벽,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흥이 일어 새벽 새라는 뜻의 ‘曉鳥’를 썼다. 그러나 鳥자 밑에 넉 점을 싸는 치킴이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축 처진 게 마음에 거슬려, 내던져두었다가 누가 달라 하니 줘버렸다.

10년 뒤 중국을 갔는데 어떤 귀족 사랑방에 자기 작품이 걸려있었다. 그는 몰래 치킴을 바짝 올려놓았다. 나중에 주인이 들어와 보더니 화를 벌컥 냈다. 조광진이 사연을 말하며 용서를 비니 주인은 ‘글씨를 쓰기만 하지 내용은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찢어버렸다. 새벽 새의 꼬리가 처진 것이 너무 잘 표현돼 비싼 돈 들여 샀는데 원작자가 버려놨다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감정에 따라 잘 썼던 글씨를 일반적인 단순 기준에 맞추려다 망친 것이다.

이처럼 글씨란 쓴 사람의 감정과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요즘 작품들을 보면 스승의 것을 맹목적으로 베껴 획일적인데다, 내용을 알지 못해 오자 탈자가 많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개선될 문제가 아니라서 서예 하는 이들의 고민이 많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여행에서 어느 전시회를 갔더니 거기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다. 중국도 간자를 쓰면서부터 한문 읽는 사람이 줄어, 내용도 모르고 쓰는 작품이 적지 않게 나온다는 것이다. 동경에서 여러 해 공부했던 이가 일본도 그런 경향이 조금씩 나타난다고 했다.

씁쓸하지만 다소 위로가 된다 했더니 그런 문제점을 알고 한문해독력을 기르려는 이들이 있는 한 괜찮다고 했다. 반면 그런 것을 고민하지 않고 대가 행세를 하는 이들이야말로 서예계의 진짜 고민거리라고 입을 모았다.

-국민일보 2013년 10월1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